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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teacher Jul 11. 2021

매일 금주선언

알았고, 이제 그만 좀 하지? 누가 뭐래~~?

  오늘 하루의 절반이 사라졌다. 토요일 밤, 옆집과 마신 술 때문이다.

  "우리 이번 주말은 가족끼리 조용히 보내자. 옆집에서 전화오면 받지 말고, 나중에 몰랐다고 하는 거야."

  금요일 퇴근 후, 아내와 암묵적인 약속을 하고 최대한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술을 안 마신 것은 아니다. 아내와 간단하게 맥주 한 캔씩만 마시고 금요일 밤을 모처럼 여유롭게 즐겼다. 토요일이 되자 집에 아무도 없는 듯이 쥐죽은듯이 지내며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무사히 하루가 지나가는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문제였다.

  "아빠, 왜 이번주는 안 놀아? 옆집이랑 술 안 마셔?"

  타운하우스 아이들은 주말이면 당연히 옆집과 저녁식사나 술자리를 하는 것으로 안다. 토요일 저녁이 되도록 아무런 움직임이 없으니 아이들이 심심해서 안달이었다.

  "이번주는 안 놀 거야."

  나와 아내가 움직이지 않자
  "그럼 우리 옆집에서 놀다온다~!"

  말리기도 전에 아들과 딸이 옆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고 5분 후, 전화기가 울렸다.

  "형님, 왜 이리 빨리 받아요? 기다렸던 거 아니야?"
  옆집 동생의 말에

  "아니거든! 나 할 일 많아."

라며 살짝 튕겨보았다.

  "에이~~ 할 일도 없으면서, 얼른 넘어오세요. 술 한 잔 하셔야죠."

  나와 아내 성격의 가장 큰 문제점, 둘 다 거절을 못한다.

  "난 오늘 논알코올 맥주 마실거야."

  언제 저런 것은 사다 놓았는지 아내는 냉장고에서 알코올 0%맥주를 3캔 꺼냈다. 

  "나도 오늘은 맥주 딱 두 잔만 마실 거야."

  이렇게 서로 다짐하며 옆집으로 넘어갔다.

아내가 사다놓은 이상한 맥주, 알코올이 0%면 보리차 아닌가?

  그래서 나는 맥주 두 잔, 아내는 논알코올을 마셨냐고?

  나와 아내 성격의 또 다른 문제점, 둘 다 의지가 약하다.

  우리가 가져간 맥주와 논알코올은 따지도 않았다. 옆집 동생이 끊이지 않고 내오는 고량주, 꼬냑의 유혹에 빠져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장면은

  "얼음 드릴까요? 양주 희석해서 드셔야죠."

라는 옆집 동생의 말에

  "아니에요. 저는 스트레이트만 마셔요."

라고 대답하는 아내의 모습이다.

  너.... 논알코올 마실 거라며??


  어떻게 집에 왔는지 언제 잠이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내가 먼저 들어왔고, 아내는 옆집 부부와 더 있었다는 것이다. 역시 아내는 나보다 뭐든 잘한다. 오늘 나는 하루의 절반을 누워있었는데 아내는 멀쩡하게 일어나 책을 읽고, 집안일을 하고 점심 때가 되자 또 다른 타운하우스 동갑내기 친구와 맥주 한 잔을 했다.

  "나 내일부터는 술 안 마실 거야. 주중에는 안 마시려고."
  저녁이 되자 아내가 이렇게 말했지만, 그 말을 귀담아 듣는 사람은 우리 식구 중에 아무도 없다. 아내는 분명히 내일도 퇴근하자마자 맥주 한 잔을 들이키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뭐 마시고 싶어서 마시는지 알아? 다 일하기 힘들어서 그래."

  알았고, 그만 좀 하지? 누가 뭐래~~? 

  

  아내도 문제이지만 나도 문제이다. 제주도에 내려와서 술만 늘었다. 이렇게 하루를 기어다니고, 더 이상은 안되겠다. 

  "이제 나도 술 좀 줄이려고. 운동도 하는데..."
  아내에게 진지하게 이야기했지만 듣는 시늉도 없다.

  "진짜라고, 이제 안 마신다고!"

  대꾸도 없이 나를 쳐다보는 아내의 눈빛에서 속마음을 읽었다.

  

  알았고, 이제 그만 좀 하지? 누가 뭐래~~?


  제주도에 살며 마음대로 안되는 일이 술이다. 

  정말 끊을 수 있을까?

  그....그.... 그....럴 수 있겠.....지....?

  

  제주도에 사니 매일이 금주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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