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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teacher Jun 22. 2021

내가 헬스장에 갈 줄이야...

제주도에서 만난 문선생

  지난주 일요일, 헬스장을 등록했다. 내가 헬스장에 마지막으로 간 것이 결혼하고 신혼 때였으니 11년 전 이야기이다. 그때 아내와 나는 헬스장을 6개월 등록하고 신발만 맡겨 놓은채 술만 마시러 다녔다. 6개월 후에 우리는 도둑처럼 몰래 헬스장에 들어가서 신발만 가지고 나왔다. 참으로 비싼 신발 보관소였다. 그리고 결론내렸다.

  '헬스는 지루한 운동이야. 나하고는 안맞아.'


  그랬던 내가 헬스장에 내 발로 걸어 들어갔다. 나를 헬스장에 가게 한 사람 두 명이 있는데 한 사람은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하품도사'였고, 한 명은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젊은 총각 선생인 문선생이다. 문선생은 30대초반의 체육전담교사인데, 나도 3학년 체육전담을 맡고 있어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교직경력과 나이가 10년이 넘게 차이가 나서 친해지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일단 내가 철이 없어 나이든 교사보다는 젊은 교사들과 잘 놀고, 이 친구도 나이는 어리지만 절대!! 젊지 않다. 일단 취미부터가 그렇다. 낚시, 축구, 탁구.... 40대들이 좋아하는 문화를 벌써 즐기고 있다. 그다지 공손한 성격은 아니어서(이건 장점으로 말하는 것이다.) 내가 나이가 많다고 어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나도 이 친구가 편하고 좋다. 학교에서 동료교사들과 불편하게 지내는 것이 나의 직장생활 방식인데, 유일하게 이 친구에게만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주말에 있었던 이야기, 아내와 있었던 이야기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이 친구에게 다 한다. 이 친구는 확실히 남자 초등교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큰 차이가 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남자 초등교사의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쪼잔하고, 꼰대같고, 선생 김봉두가 떠오르는...그런... 세상이 많이 변해서 꼭 그렇지는 않지만 별로 부정하고 싶지 않다. 나도 그런 초등교사의 이미지를 싫어하니까, 아직도 그런 교사들이 있고, 어찌되었든 나는 아니니까.

  한 번은 내가 이 친구에게

  "너 사람들이 교사라고 하면 놀라지?"

라고 묻자
  "저 교사인지 아무도 몰라요. 한 번은 헬스장에서 운동하는데 관장님이 "하는 일은 있고?"라고 묻던데요?"  
하며 웃어넘긴다. 확실하다. 나는 교사라고 얼굴에 써놓고 다니는 사람은 싫다. 교사같지 않은 교사가 좋다.


  문선생은 모든 운동을 다 잘한다. 축구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했고, 지금도 거의 매주 축구모임에 다닌다. 탁구도 수준급이라 내가 이 학교에 오자마자 탁구부터 가르쳐 주었다. 그덕에 나도 어느 정도 탁구를 치게 되었다. 헬스장도 2년 넘게 다니고 있어 몸도 장난 아니다. 한 마디로 운동이 생활화되어 있는 체육인이다. 본인만 운동을 열심히 하면 되는데, 운동을 전파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막중하다. 자연스럽게 첫 타켓이 내가 되었다. 처음에는 운동을 하면 좋은 점만 이야기를 하더니 한 달 전부터 출근만 하면 나를 압박했다.

  "선생님, 헬스장 다니세요. 다른 세계가 열려요."
  "헬스장 등록하셨어요?"
  "언제부터 시작하실 거예요?"

  "아직 등록 안하셨어요?"

  매일 이렇게 물어댔다.

  "어~ 하려구.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아직 안했어. 할거야."

  이렇게 말하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점점 오기가 생겨났다. 운동, 이게 뭐라고. 까짓 것 하면 되지.

  "에잇! 알았다, 한다 해!"

  내가 졌다. 일요일에 헬스장을 등록하고 월요일부터 헬스장을 다니고 있다.   

헬스장 앞에서.... 기어이 꼭 뒤에 있는 사람처럼..... 할...수.. 있을까....? 있...겠...지...?  저 사람도, 나도 사람인데.....

  오늘로 운동 2일차, 딱 이틀 했는데 벌써 변화가 있는 것 같다. 숨어 있던 근육이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이려나? 운동을 하니 삶의 질이 한 단계 올라간 것 같다. 퇴근후에도 알차게 시간을 보내는 내가 기특하다. 운동후에 마시는 맥주는 더 기가 막힌다.(운동을 하고 술이라니...) 어찌되었든 뿌듯하다.

  11년 전 운동을 할 때는 어떠한 목표도 없었다. 워낙 젊었기에 운동에 대한 간절함이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는 지금

  나이가 들어도 배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바디프로필을 찍을 것이다.
  다른 곳은 몰라도 복근만큼은 완벽하게 만들 것이다.


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다. 왠지 이번만은 지킬 것이라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40이 넘어 나이가 들어가며 이삼십대의 젊은 사람들에게 배울 것이 오히려 많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나는 수업시간에는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멋진 체육선생님, 고등학교 친구들과 매주 축구를 하는 의리파, 하루도 빠짐없이 헬스장을 다니며 관리하는 의지인, 학교에서 외롭게 혼자 지내는 40대 교사와 놀아주는 착한 후배인 문선생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운다. 남자답고 멋지다.

방과후에 여자축구를 가르치는 제주 문선생... 이럴 때는 영락없는 교사이다. 아이들도 선생님을 엄청나게 따른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후배보다 인생을 더 살았기에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타일러야 하는 것이 인생 선배의 역할일까? 아직 내가 나이가 들었다고 하기에 애매해서인지 모르겠지만.... 40대에 들어서고 한 살, 두 살 먹을수록 아직 아무 것도 모르겠다. 40대를 불혹의 나이라고 흔들리지 않는 시기라더니 나에게 가장 흔들리는 시기는 40대이다. 단지 내가 아는 사실은 나이가 더 많다고, 직장생활을 더 오래 했다고 자신보다 젊은 사람을 가르치려고만 든다면 나중에 그 사람은 분명히 혼자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생각해 보면 나는 참 복이 많다.

  정기적으로 나를 보고 싶어 서울에서 내려오는 10살 차이나는 서울 후배교사도 있고

  https://brunch.co.kr/@5c88599d157244a/33 (서울 후배교사의 이야기는 아래 글에 있다.)

  탁구도 가르쳐주고, 헬스장까지 다니게 만든 10살 차이나는 제주 후배교사도 있으니

  제주도에 있어도 외롭지 않다.

  

  공손한 스타일은 아니지만

  남자답고 의리있는 제주 문선생은

  내일 내 얼굴을 보자마자 물을 것이다.

  

  "선생님, 어제 운동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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