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에서 교사로 근무할 때 컵스카우트 대장을 8년이나 맡았다. 아내와 내가 만난 것도 컵스카우트 지도자 연수 때였으니 스카우트는 내 교직 인생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아내는 나와 결혼하고 스카우트 복장부터 버렸다. 하지만 나는 스카우트에 남다른 애정이 있어 결혼을 하고도 각종 연수에 다니면서 지도자 활동을 했다. 결국 내 30대 교직인생의 대부분은 스카우트와 함께 보냈다. 스카우트의 꽃은 야영이다. 흔히 '뒤뜰야영'이라 부르는데 학교 운동장이나 노지에 텐트를 치고 밥을 하고, 잠을 자며 각종 기능을 익히는 행사이다. 나는 8년이나 이 행사를 진행하며 캠핑의 고수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2018년 제주도에 이주한 첫해, 캠핑을 다시 시작했다. 스카우트 지도자가 아닌 진정한 캠퍼로서 제주도의 자연을 누리기로 했다. 제주도는 캠핑의 천국이다. 편리한 오토캠핑장이 곳곳에 있고, 예약도 그리 어렵지 않다. 여름 성수기를 제외하고는 어디든 텐트를 칠 수 있고 쾌적한 화장실이 곳곳에 있어 노지캠핑에도 최적화되어 있다. 서울에 살 때 어마어마한 리빙쉘텐트를 사서 후회했던 경험이 있어 나는 미니멀하게 캠핑을 시작하기로 했다. 텐트와 타프는 저렴한 버OO 돔텐트를 샀고, 테이블과 체어는 집에 다행히 남아있었다. 침낭, 손전등 등 몇 가지만 보완하여 제주도 첫캠핑을 떠났다.
시작은 좋았다. 우리가 처음 찾은 캠핑장은 성산읍에 있는 '모구리 야영장'이었다. 이곳은 저렴한 가격에 비하여 넓고 깨끗한 시설로 유명한 곳인데, 운영도 제주도청에서 한다. 전기와 온수를 마음껏 쓰고 가족 4명이 자는데 든 비용이 하루 8,000원! 뭐 이거는 공짜와 같았다. 언덕을 야영장으로 꾸민 곳이라 주차장에서 리어카를 끌고 가는 것은 불편했지만 그정도는 괜찮았다. 어차피 노동하러 다니는 것이 캠핑 아닌가?
가격이 착한 오토캠핑장- 모구리 야영장
'너무 좋아!'
오랜만에 설레는 감정을 느끼며 캠핑을 시작했다. 그러나 설렘은 오래 가지 않았다. 문제는 바람이었다. 제주도는 동쪽이 바람이 센 편인데, 그 날 유난히 바람이 세게 불어 도저히 텐트를 칠 수가 없었다. 아내는 무늬만 전직 스카우트 대장, 철저한 서울여자였다. 아내에게는 아이들 보라하고 혼자 텐트를 치려니 힘들었다. 어렵게 폴대와 스킨을 체결해 텐트를 완성하면 바람이 불어 작은 돔텐트는 데구르르 굴러갔다. 바람과 맞서 팩을 박고, 스트링을 연결해 텐트를 완성했다. 다음은 타프 차례, 캠핑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바람이 불면 혼자 타프를 치기 어렵다. 아내의 도움이 필요했다.
"기둥 한 번만 잡아줘."
바람은 불지, 아이들은 징징대지, 남편은 헤매지.... 아내에게서 짜증이 느껴졌다.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 좀 도와주면 안돼?"
기어이 나도 감정을 분출했다. 아내는 화가 나면 말을 하지 않는다. 냉랭한 분위기 속에 세팅을 마쳤다.
"미안해. 화내서."
"괜찮아."
휴전을 한 우리는 저녁을 먹고, 맥주 한 잔을 하며 캠핑을 즐겼다. 잠시 옛날의 감정이 느껴졌다.
'아, 이 맛에 캠핑하지~~'
하지만 진짜 악몽은 밤에 시작되었다. 캠핑장 바닥은 파쇄석인데 녹색 뽁뽁이 매트만 가져온 바람에 등이 아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리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당최 알 수 없는 제주도 날씨는 그날밤 억수 같은 비를 뿌렸다. 싸구려 버OO텐트는 이 비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바닥과 스킨 사이로 비가 스며드는데 침낭이 젖어가는 만큼 내 마음도 눈물로 젖어갔다. 아내는 한숨만 쉬었다.
"이럴려고 온거야?" 아내의 말에 누군가 내 옆구리를 콕 찌르면 바로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한 가지 고마운 것은 피곤했는지 비바람 속에서도 아이들은 쿨쿨 잘 자고 있었다. 나는 그날 밤 한숨도 자지 못했다. 얼른 아침이 오기만을 바랐다.
'내가 미쳤지. 편안한 집 놔두고. 내가 다시는 캠핑을 하나보자.'
변덕스러운 제주 날씨는 아침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창했다. 그나마 철영할 때 날씨가 좋아 다행이었다. 철영할 때마저 날씨가 안 좋으면 대책이 없다. 대충 아침을 라면으로 떼우고 나는 얼른 집에 갈 준비를 했다.
"왜 그렇게 서들러? 이제야 좋은데."
커피 한 잔을 하며 의자에 앉아 따뜻한 햇빛을 쬐던 아내가 말했다.
"집에 가고 싶은 것 아니야?"
"어제는 그랬는데 날씨가 좋으니까 괜찮네. 공기 좋다~~" 아내의 말에 얼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 나도 잠시 앉아 커피를 마시는 여유를 누렸다. 아이들은 일어나자마자 모구리 야영장에 있는 놀이터에 가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아침에 캠핑장에서 마시는 커피, 이 맛에 캠핑한다.
'그래도 나 캠핑 안해. 장비 다 팔아버릴 거야.'
어제의 고생이 생각이 나서 다시 다짐했다. 짐을 모두 싸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차안에서 아내가 갑자기 나를 보며 말했다.
"우리 다음주에 또 올까?"
'이게 무슨 말이야....?'
"불편하지 않았어? 난 너 잠도 못자고, 싫어할 줄 알았는데."
아내는 다정스럽게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난 우리 가족의 제주도 첫캠핑이 안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이 싫어. 우리 장비 잘 갖추어서 다시 오자."
여~~보~~~!!!!(감동주의보)
문제의 주인공 버OO텐트와 녹색 뽁뽁이- 이제는 안녕했다. '그동안 즐거웠어~'
속깊은 아내에게 나는 감동을 느꼈지만, 아내는 아마 이 말을 한 것을 후회할 지 모른다. 아내의 이 말 한 마디에 나는 지름신이 되었으니까. 집에 돌아오자마자 당장 텐트를 180만원 주고 바꾸었다. 에어매트를 50만원 주고 구입했다. LED등을 사고, 롤테이블을 사고, 릴렉스체어를 사고... 나의 구매는 멈추지 않았다. 밀크박스, 큐브버너, 가스렌턴, 블랙타프.... ! (지금도 진행중이다.)
"또 캠핑장비야? 그만 사~~!" "내가 뭐 나 위해서 사냐? 가족들 편하라고 사는 거지."
나의 쇼핑 합리화에 아내는 한숨만 쉬었다.
나의 주력 텐트 Jeep 실베스터2 - 차는 비록 Jeep는 못 타도 텐트는 산다. 저 광활한 공간~~ 뭐든 질러야 한다.
모든 일에는 양과 음이 있다. 가계 경제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캠핑장비 구입이지만, 지금 우리 가족은 캠핑을 가면 아주 편하게 지내다 온다. 180cm의 키도 머리가 닿지 않는 커다란 리빙쉘텐트는 지금 생각해도 잘 산 것 같다. 뭐든지 지를 때는 과감해야 한다. 정한 것이 있을 때 그 아래로 타협하면 안 된다. 반드시 후회한다. 장비가 많아진 탓에 차에 싣는 것도 한참이 걸리고, 설영과 철영, 장비세팅이 몇 배 힘들어졌지만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내가 이 일을 멈출 수 없는 것은 나 하나 고생하면 아내와 아이들이 편안하게 캠핑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3년 전, 첫캠핑 후 그대로 포기했으면 어땠을까?
아마 지금과 달리 주말이 오는 것이 설레지 않고,
제주도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구입한 다양한 텐트들... 요즘은 차박텐트의 욕망이...
얼마 전에 퇴근해서 보니 커다란 택배 박스가 도착해 있었다.
"이거 뭐야?" 아내의 물음에 나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아, 이거~~ 우리 텐트 우레탄창! 겨울에 캠핑가면 밖 풍경을 볼 수가 없잖아. 그래서 주문했지."
아내의 따가운 시선을 느꼈지만 모른 척 했다. 나는 캠핑장비를 구입할 때 항상 이 명언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