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성장의 시간, 성장 호르몬 70% 성장 중
에너지 합주 연주곡!
회사에 김 과장과 이 대리 두 명의 후배가 있다. 이 둘의 에너지는 전혀 다르다. 자세히 관찰하고 있으면 각자의 장단점이 존재하지만, 이들은 서로를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김 과장은 이 대리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약간은 무시하는듯한 어조와 태도로 이 대리를 대한다.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했을까? 김 과장은 활력이 넘친다. 주위에 이런 사람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눈이 반짝반짝하고 모든 일에 속도감이 있다. 주어진 일뿐만 아니라 남의 일까지 도맡아 한다. 김 과장 “에너지가 너무 넘쳐 주최가 안 되나 봐” “실행력도 빠르고 그런데 남들도 신경 써줘” “김 과장이 너무 빠르게 일 처리 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조급해하잖아” 김 과장은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조금 천천히 하죠! 하지만 김 과장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에너지가 넘쳐나는 기질로 태어난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성공해서 임원에 오를 확률이 높다.
반대로 이대라는 조용조용한 성격이다. 존재감이 전혀 없어서 사무실에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른다. 에너지가 떨어지니 사람들에게 강한 존재감을 뿜어내지 못한다. 이 대리조차 회사에서 크게 성공하고 싶어 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 대리의 강점은 꼼꼼함이다. 김 과장은 빠르지만 꼼꼼하지 않아 실수가 잦다. 하지만 이대라는 느리지만 실수한 적은 손에 꼽힌다. 둘은 상극이지만 그 이면을 잘 관찰하면 에너지의 크기가 다르다. 서로의 에너지를 인지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김 과장은 특히 이 대리의 느림의 미학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회사는 이 둘이 필요하다. 열정적인 사람도 필요하고 느리지만 꼼꼼하게 자기 일을 묵묵히 하는 직원도 필요하다. 이 둘이 서로의 에너지에 대해 이해를 하고 장점을 인정해줬다면 팀은 더 발전하게 되지 않을까?
사람에게는 에너지 파동이 존재한다. 보이지 않지만 각자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각기 다르다.
자신의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잘 활용하고 통제해나가는 사람이 있지만 자기 자신의 에너지가 있는지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고유의 에너지가 존재하기 때문에 서로의 에너지를 이해하고 그 사람의 단점을 찾아내기보다 장점을 찾아내려 노력할 때 원만한 관계로 지낼 수 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도 여러 에너지가 존재한다. 아빠의 에너지, 엄마의 에너지, 아이의 에너지 그리고 가족이 모두 융합된 에너지가 보이지 않지만, 서로의 마찰로 인해 발생하고 없어지며 왜곡되기도 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산되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서부터 아이를 돌보면서부터 에너지가 상호 작용하고 밥을 먹이면서 서로 웃으면서 서로 안아주며 서로 대화하면서도 가족의 에너지는 융합되고 발산된다. 가족이 되고 아이를 기르다 보면 서로의 에너지에 대해 어떻게 해석하고 발전해 나가냐에 따라 그 가족의 분위기는 전혀 다른 가족이 탄생한다.
예를 들면 집안에서 가장 활발하고 신선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건 아이다. 아이는 TV에서 선전하는 에너자이저와 같다. 온종일 쉬지도 않고 활동한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살이 전혀 찌지 않는다. 먹는 것도 많지만 종일 빨빨대며 무언가 해나가니 살찔 틈이 없는 것이다.
어느 날 조카가 힘든 언니를 위해 아이를 3시간가량 아이를 봐주겠다는 것이다. 아이고!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나! 모처럼 자유라고 외치며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왔다. 얼만 만에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인지 기억이 안 날 정도다. 영화를 보고 집에 들어오는데 조카가 버선발로 나와 마중 나온다. 매형 “저 좀 살려주세요” “아이가 지치질 않네요” “왜 엄마들이 매일 힘들다고 하는지 이해가 돼요” 조카는 아이가 보는 일이 살면서 가장 힘들었다고 이야기했다. 1시간을 잘 놀아줬는데 2시간쯤 돼서는 지치지 않고 따라다니며 놀아달라는데 내 에너지가 고갈돼서 놀아주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건 맞는 말이다. 아이들은 쉬지 않는 에너자이저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이는 집안에 가장 에너지가 높은 존재다. 반면 엄마는 종일 아이를 돌보느라 에너지가 고갈되어 있다. 배터리를 보면 마지막 한 칸이 남아 에너지가 방전되기 전에 모습이 엄마의 모습이다. 아빠는 직장에서 온종일 업무를 보고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로 집에 들어온다. 그나마 남자라서 에너지가 한 칸 정도 더 남아있다. 집에 문을 들어오는 순간 아버지가 목도 하게 되는 건 에너지가 거의 방전된 엄마, 그리고 에너지 게이지가 충만한 아이가 나를 마주한다. 나는 현재 두 칸의 에너지가 남아있는데 아이와 잠깐 놀아주는 시간에 남아있는 에너지 한 칸을 소모한다. 그리고 엄마, 아빠는 에너지가 방전된 체 아이와 저녁을 보낼 수밖에 없다.
아이의 에너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가정에 왜곡이 생긴다. 위에 이야기한 것처럼 부모는 항상에너지가 차 있지 않다. 하지만 아이의 에너지는 줄어들지 않는다. 에너지의 차이가 발생하면서 부모와 아이의 이해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내가 지쳐있으면 아이의 에너지 발생이 귀찮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온종일 따라다니면 낮잠도 안 자고 나를 괴롭히는 존재하고 착각하게 된다. 몸이 피곤하고 정신이 방전되면 생각을 100% 올바르게 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괜히 아이에게 짜증을 부리고 화를 내며 명령조로 아이게 이야기 시작한다. 엄마도 알고 있다. 내 이쁜 자식인데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나면 내가 왜 이럴까 회의감마저 든다. 하지만 몸이 피곤하고 정신이 피곤하니 아이의 에너지를 받아줄 여력이 없다. 아빠도 회사에 지쳐 집에 들어오면 마찬가지다. 하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잘못된 습관이 계속 아이에게 발현된다면 아이는 점점 주눅이 들고 가지고 있는 좋은 에너지가 축소되게 될 것이다. 알고 있지만 바뀌지 않으면 문제는 발생한다. 반대로 아이의 에너지를 받아주기 위해서는 부모도 에너지 게이지를 한 칸씩이라도 올리려고 노력해야 한다. 분명한 건 아이와 함께 종일 에너지 100%로 받아 줄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 에너지를 바닥에 놔두고 아이를 돌볼 수는 없다. 아이의 가능성이 줄어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아이의 에너지를 받아줄 힘을 부모도 길러야 한다. 그리고 에너지의 배분을 적절히 해줌으로써 아이게 집중할 수 있을 때 내 에너지도 쏟아부어야 한다. 에너지의 주파수가 맞아떨어지면 아이와의 관계가 좋아지고 놀아주는 것도 창의적으로 변한다. 아이가 옆에서 귀찮게 하는 게 아닌 사랑스럽고 즐거움의 대상으로 바뀐다. 예를 들면 부부 모임 3가족이 모였다. 그중에서 유독 아이들과 정말 즐겁게 놀아주는 아빠가 있다. 이 아빠는 아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다른 아빠에게는 오지도 않는다. 아버지의 에너지가 아이들과 놀아주는 순간 아이들의 에너지와 일치해지기 때문이다. 표정을 보면 전혀 가식적이지 않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 자체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옆에 있는 다른 엄마들도 감탄한다. 어떻게 저렇게 놀아주지.
하지만 아빠는 하루의 에너지를 적절히 분배해오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것이다.
왜 아이들에게 유독 힘이 넘쳐날까? 그건 성장을 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몸의 성장도 이루어지지만, 생각의 성장 속도도 빠르게 일어나는 게 아이들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몸이 성장하면 몸이 간질거린다. 옆에서 위로 에너지가 폭발하고 몸이 커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부모도 성장이 필요하다는 이유이다. 아이들만큼의 폭발적 성장은 하기 힘들지만, 의미 있게 정체된 시간을 떨쳐내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창의적인 것 남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 의미 있는 성과가 날 수 있는걸 찾아 나가면 작은 성취가 이루어지면 에너지 게이지도 조금씩 올라간다. 피곤하지만 뿌듯하고 행복해진다. 에너지가 조금씩 증가하면 가족 전체가 에너지 레벨이 올라가면서 서로의 에너지의 합동 연주가 시작된다. 항상 웃는 가족, 항상 해맑은 가족, 항상 발전하는 가족, 서로를 응원하는 가족, 미래가 기대되는 가족으로 바뀐다.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충만하다. 오늘부터 무심코 서로의 에너지를 지나치고 지냈다면 서로의 에너지를 올려줄 수 있게 성장하는 가족이 돼보자.
그리고 긍정 가족 에너지의 합주를 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