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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Aug 07. 2016

강 따라 빛 따라 흘러흘러

방비엥 카약킹

개인적으로 타이트한 스케줄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일정이 짧고 꼭 받아야 할 투어가 있을 때는 부지런히 움직일 수밖에 없다. 광란의 밤을 보낸 여파로 피곤이 온몸을 감싸 안았지만 카약 투어를 받기 위해 일찍이 일어난다. 숙소를 통해 예약한 지하강 투어와 카약킹!! 벤을 타고 한참을 졸면서 실려가다 보니 도착. 지하강 투어를 받기 위해서는 도보 이동을 꽤 해야 하는데 가는 길이 우리의 시골과는 다른 묘한 풍광을 보여준다. 방비엥에서 느낀 자연의 신비는 산세였다. 산의 모양이 뾰족하지가 않고 네모반듯한 느낌? 낮고 안정적이었다. 처음 보는 자연경관에 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았다.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속한다는 팔라완의 지하강도 가봤지만 개인적으로 지하강에 대한 매력은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팔라완은 보트를 타고 구경하는 거라 편하기라도 했지~ 방비엥은 튜브를 타고 밧줄을 잡고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튜브에 엉덩이를 끼운 채 손으로 밧줄을 잡아당기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도 내 마음처럼 잘 움직여지지도 않는다. 동굴에 뭘 보러 들어갔는지도 잘 모르겠고~ 밧줄을 끌다가 사람들과 부닥치며 물살에 휩쓸리고 몇 번의 비명을 지른 것 외에는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다. 밧줄 하나에 내 몸을 의지하느라 손과 팔이 아팠을 뿐.

덕분에 밀려오는 허기로 차려준 점심은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보기에는 별거 아닌 거 같은데 저 꼬치가 어찌나 맛있던지~ 2개는 더 먹고 싶었다. 빵 한입, 꼬치 한입, 볶음밥도 떠먹고~~ 넘나 맛있는 것!! 물놀이 한 뒤니 얼마나 맛있겠는가. 웬만하면 음식 가리지 않고 밀가루를 좋아하는 나는 사실 뭘 줘도 맛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저 꼬치의 소스는 정말 내가 먹어본 꼬치 중 손가락 안에 꼽히며 인생 꼬치 중 하나로 기억된다. 지하강보다 기억에 남는 점심식사.

이제 카약 타러 가자!! 사실 튜빙이 너무나 하고 싶었다. 튜브 타고 둥둥 세월아~ 내월아~ 하고 싶기도 했고 다녀온 친구가 카약 말고 꼭 튜브를 타라고 당부했지만 펄럭이는 얇의 귀의 소유자인 나는 민박집 아주머니의 튜브는 너무 오래 걸리고 이 뙤약볕 아래서 3~4시간 떠내려가다간 화상을 입을 거라는 말에 카약을 예약하고 말았다. 줏대 없는 나란 인간. 모험심이 100인거 같다가도 어떤 땐 0으로 떨어지는 나란 인간.

튜빙은 중간중간 원하는 곳에서 쉴 수 있지만 카약은 쉼터가 정해져 있다. 우리가 생각했던 다국적 사람들이 모여 마시고 춤추고 북적이는 느낌의 쉼터는 아니었지만 맥주 하나 사들고 앉아 산과 물과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 또한 즐겁지 않은가.  일에 치여, 삶에 치여, 도망치듯 간 여행. 이런 작은 여유가 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 들게 해 주었다.

셋이서 한 배를 탔던 나는 내내 중앙에 앉아 노를 저을 필요가 없었다. 등 대고 누워도 보고 허밍도 내보고 오로지 눈으로 모든 걸 담고 손과 발로 물을 느끼고 이런 게 신선놀음 아닐까 싶었다. 단지 조금 아쉬웠던 점은 물이 부족해서 수심이 상당히 얕았다는 점. 그리하여 스릴 있는 카약은 즐기지 못했지만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기고 흘러흘러 그렇게 종착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카약을 탔음에도 내 한쪽 팔뚝은 시뻘겋게 익었으며, 악마가 깃든 것 같은 상어 같은 멍에 이어 붉은 화상을 또 하나 얻었다. 이걸 보니 튜빙을 하지 않은 게 잘한 일인 거 같단 생각도 들었다. 나름 피부를 생각하여 그날 저녁 마트에 가서 알로에 젤을 사다 듬뿍 발라줬다.


다음 날 루앙프라방으로 이동해야 하기에 저녁 먹기 전 차표를 예매하러 먼저 나온 나는 잠시 동네 구경을 하고 있었고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보니 하늘이 핑크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뭉뚝한 산봉우리들을 배경으로 핑크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은 아름다웠고 잠시 나를 멍하니 서 있게 만들었다.

유명하다는 아덜사이드에서 저녁을 먹고 싶었지만 사람도 많고 답답해 보여서 우리는 옆집으로 갔다. 사실 가보면 알겠지만 이 집이나 저 집이나 인테리어는 비슷비슷하다. 그래서 아덜사이드는 아~ 프렌즈 틀어준다는 그 집!! 이렇게 눈도장만 찍고 쓰윽~~ 지나간다.

참 한결같은 사람들. 또 팟타이에 쌀국수. 왜 아무도 밥을 시키지 않는 것인가. 6명이서 한결같이 누들만 고집하는 우리란 사람. 보기에도 형형색색 맛깔스러워 보이고 맛도 나쁘지 않았다. 단지 양이 적다는 점. 왜 우리는 다양하고 많은 음식을 시키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날이 더워 그런지 식욕이 부진한 탓도 있었으리라.

요 근래 우리나라 날씨가 동남아 못지않은데 기후는 비슷한데 왜 음식값은 다른가요. 슬픈 현실. 먹고 싶다. 팟타이, 쌀국수 그리고 맥주.

방비엥의 둘째 날이자 마지막 밤. 우리는 어김없이 저녁식사 후 사쿠라바로 향했고, 둘째 날도 광란의 밤을 보냈다. 놀고 나니 배고픔이 찾아왔고 찾고 잴 것도 없이 어제 갔던 그 식당에 가서 또다시 국수를 먹었다. 그리고 바게트 샌드위치를 하나 사서 나눠 먹었다. 이것저것 많이 들어간 걸 주문했는데 아주머니가 불판에 재료를 올려두고 자리를 비우셨다. 치킨과 베이컨이 탈까 봐 조마조마했던 우리는 잠시 아주머니의 뒤집개를 빌려 요리조리 굴리기도 했다. 다행히 재료가 타기 전에 아주머니가 돌아오셨고 또 한 번 바게트의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약간의 피로와 취기, 더위가 몽롱하지만 편안하게 해주었고, 내일이면 서로 다른 길로 갈 우리들은 마지막 밤을 비어라오와 함께 깊은 대화로 마무리지었다. 아침 일찍 루앙프라방으로 향하는 벤을 타야 했지만 새벽 3시가 넘도록 우리들의 대화는 끝날 줄을 몰랐다.


예전에 어딘가에서 읽었던 글에 여행에서 만난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가 일상에서의 스트레스를 감소시켜 준다는 내용이 있었다. 참 맞는 말인 거 같다. 낯선 곳에서 나에 대해 전혀 모르는 누군가에게 때로는 조금 더 진지하게 조금 더 진실되게 나를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다시 만나게 될지 스쳐가는 인연이 될지 모르는 서로에게 던지듯 내뱉은  방비엥의 후덥지근한 밤, 노곤한 그 날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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