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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ubless Nov 08. 2018

What’s your room number?

내가 지금 어디에 있더라??

어느 순간부턴가 나는 나 스스로를 ‘어제는 여름에, 오늘은 겨울에, 내일은 가을끝자락에 사는 여자’ 라고 정의했다. 비행 스케쥴에 따라 움직이는 나는, Siri에게 날씨를 묻는 것이 다반사이며, 핫팬츠를 빨랫감으로 내어놓은 다음날엔 긴 목폴라와 코트를 담아 떠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뒤죽박죽인 날씨와 시간대를 마치 시간여행자처럼 오가는 승무원으로서 호텔에 도착하면, 커튼을 활짝열어 마치 광고에서 나올 법한 표정으로 도착한 곳의 풍경을 감상할 것 같지만, 현실-승무원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내 호텔방 번호를 찍어두는 일이다.



오늘은 뉴욕, 내일은 유럽 어딘가에 있는 생활을 동경하여 시작한 승무원 생활이지만, 그 덕분에 자주 버퍼링이 걸린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내가 묵는 곳은 늘 어딘가의 호텔이고, ‘로스터’라고 부르는 승무원의 스케쥴에 따라 한달에 6-10개 이상의 호텔에서 보통 24-48시간을 머무르게 된다. 단발성으로 왔다갔다 하는 비행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멀티섹터(multi-sector)’의 경우 5-7일에 걸쳐 매일 다른 호텔에 묵으며 비행하기 때문에 호텔 방 번호를 집중해 기억하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쉽상이다. 조식을 신나게 먹고서 방번호를 묻는 직원 앞에서 내 방 번호가 기억이 나질 않아 당황스러웠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몇 번의 당혹스러운 순간 이후, 호텔 방 번호를 찍어두는 것이 이제 습관이 되었다.


가끔 내가 어딜 다녀왔는지 기입하라는 입국신고서를 보며 기억이 안나 머뭇거릴 정도로 바쁘게 몰아치는 비행구간을 지날때면, 거리를 걷다가 혼잣말로 스스로에게 묻기도 한다.


“엇! 여기가 지금 어디였더라?” / “아!!! 스페인!!”

“나 지금 어디에 와 있더라?!?” / “여긴 덴마크!!”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뭐야, 바보야? 말도 안돼’라며 혀를 차겠지만, 요일은 잃어버린지 오래된채로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일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우스꽝스러운 현상을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비행성치매 혹은 Crew memory 라고 부른다.



기내에서 승객들의 5-6가지 음료 주문을 한 번에 받아 준비할지언정 내 방 하나 찾아가는게 필사적이어야 하는 현실 승무원으로서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이자 당혹스럽게 만드는 질문. ‘what’s your room number’. 오늘은 모리셔스의 빌라 입구 앞에서 호텔 방 번호가 적힌 또 하나의 사진을 저장해본다.


모리셔스 호텔 해변 (Sandrani resort of Mauritius)




* 멀티섹터-여러개의 경유지를 묶어서 비행하는 것. 비행시간에 따라 승무원은 구간을 나누어 중간에 휴식을 취하며 비행하게 된다. 대표적인 멀티섹터로는 두바이-리오-아르헨티나-리오-두바이, 두바이-싱가폴-멜버른-싱가폴-두바이 등이 있다. 예를 들어, 두바이에서 멜버른을 가는 손님의 경우 총 두 그룹의 승무원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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