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파치노와 마윈

스리랑카 호스텔엔 그 둘의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by 안녕씨


호스텔에는 두 명의 인물이 액자에 걸려 있었다.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과 영화 대부의 알 파치노 Al Pacino였다. 한국 여자는 마윈을 알아봤고, 독일 아저씨는 알 파치노를 알아봤다. 알 파치노라는 이름을 듣고서야 여자는 자세히 그 포스터를 바라봤다. 이름을 불러줬을 때 비로소 나에게 다가와 꽃이 되었다는 게 이런 걸까. 거기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I ASKED GOD FOR A BIKE, BUT I KN0W GOD DOESN'T WORK THAT WAY. SO I STOLE A BIKE AND ASKED FOR FORGIVENESS. "


"신에게 자전거를 달라고 했지만 그가 그렇게 하지 않을 걸 안다. 그래서 자전거를 훔쳤고, 용서를 구했다"

'뭐야. 이 사람 굉장히 매력적이잖아. '여자는 생각했다. 알 파치노는 그렇게 그 여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그 여자는 나다.





갈레의 돌고래를 보러 갈까. 말까.


그날은 그 어느 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가 불과 며칠 전 하던 고민을 이번엔 독일인 아저씨가 하고 있다는 것과 그때 내게 독일인 대학생 아나가 해줬던 에피소드를 내가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 조금 달라져 있었을 뿐이었다. 우리가 시차를 두고 고민하는 건 갈레 Galle에서 돌고래를 볼 것인가. 말 것인가 였다.



-돌고래를 보기 위해 바닷가로 나갔대. 현지인이 다가와 흥정을 했는데, 조건이 나쁘지 않았어. 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돌고래를 보면 수고비를 줘. 못 보면 돈을 안 받을게. 손해 볼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네 명의 유럽 사람들이 배에 올라탔어. 돌고래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가운데, 그중 한 명이 뱃멀미를 하기 시작했어. 특히, 한 명이 심했나 봐. 현지인은 준비해 놓은 비닐봉지를 그에게 건넸고, 그렇게 괴로움의 흔적은 비닐봉지에 차곡차곡 담겼대. 근데 시간이 지나도 돌고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한 명이던 뱃멀미는 점점 늘어서 전부 오바이트를 하는 지경이 이르게 됐대. 상황이 이러니까 모두 육지로 돌아가자고 현지인에게 간절히 호소를 했는데, 현지인은 그저 비닐봉지만 계속 건네더래. 꼼짝을 안 하더라는 거야. 결국 모두 사색이 되었을 때에 돌고래가 나타났고, 그들은 돈을 내야 했대.




내가 아나의 이야기를 듣고 웃었던 것처럼 그들도 웃었다. 그리고 나처럼 그들도 돌고래를 단념하기로 했다. 하지만 스리랑카 사장님은 별 다른 코멘트를 남기지 않았다. 그저 희미하게 웃었다. 현지인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여행자는 얼마나 될까. 그들은 그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현지인은 이런 소문이 확산되고 있는 걸 알고 있을까. 워낙 인간 군상이 다양해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나는 그때 내 선택에 전혀 후회가 없다.



그즈음, 일본 관광객이 쭈뼛쭈뼛 로비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대화에 참여하면서도 시선은 그에게 두고 있었다. 일본인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까불 까불'이 어울리지 않는 차분해 보이는 캐릭터였다. 일본인은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고 들었던 게 생각났다. 그래서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을 했는데, 긍정적인 대답이 없으면 더 이상 행동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이 그 여자를 위한 것이라고 어려서부터 보고, 듣고, 행동하면서 학습된 결과라고도 했다. 그래설까. 그는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한 후에야 자기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근데 독일인 아저씨가 찬물 같은 한 마디를 던졌다.



- 뭐? 뭐라고? 너 지금 영어로 말하고 있는 거야?


이웃나라 사람으로서, 또 앞서 이 호스텔에 투숙하게 된 유경험자로서, 나는 그가 배정받은 사물함을 여는 데 곤란을 겪고 있다고 추론했다. 대체로 정체불명의 언어였지만 락커와 키라는 단어는 선명하게 들리기도 했다. 사장님은 사무적인 말투로 자물쇠를 사용하는 법을 설명했고, 그는 로비로 걸어왔던 거처럼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 한 명의 남자가 모자를 쓰고 로비로 내려왔다. 독일인 아저씨는 반갑게 그에게 인사를 건넸고, 그는 그 반가움을 다소 무색하게 하는 인사로 그의 최선을 다했다. 그리곤 서두르는 기색으로 픽업 온 현지인을 따라 외출했다.


독일인 아저씨는 밤 12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보며 “어디 가는 거야? 이 시간에”라고 말을 했고 사장님은 웃으면서 “저건 뭐 별일도 아니에요”라고 말했고, 나는 "그럼 이보다 큰 일은 뭐야?"라고 말했다. 사장님은 "커플로 여행 와서......" 뒤꼬리를 흐렸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가끔 이 얘기를 하곤 했다. 그럼, 누구는 독일인 아저씨가 일본인에게 지나쳤다고 했다. 그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무안을 주는 건 선을 넘은 행동이라고 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나는 근데 그 영어가 네가 상상하는 수준을 넘어선 영어라고 말했다. 독일인이 무례했지만 또 막상 그 영어를 들었다면 또 다른 생각을 할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열어 둬야 하는 그런 아주 형편없음을 떠올리라고 했다. 또 누구는 스리랑카의 밤문화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또 다른 누구는 "부익빈 빈익부가 이렇게 증명된다니까. (애인이) 있는 사람들이 더해. 분발해야 해."라고 말했고, 또 다른 이는 "이 대화를 (영어로) 다 이해했어?"라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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