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길어지면

결국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by 안녕씨






말레이시아 페낭 Penang에서 2년째 세계를 여행 중이라는 미국인을 만났다. 그에게 장기 여행자에게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장기 여행자의 하루는 어떤가요?"


남다름을 기대했는데, 그의 대답은 너무나 평범했다.


"별 거 없어요. 로컬이 가는 레스토랑에 가고, 별 다른 일정이 없을 땐, 이렇게 숙소에서 여행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요"



그에겐 겨우 2 달일지도 모르겠지만 내 생애 가장 긴 여행 중이던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내 여행을 되돌아봤다.





'내'가 빠진 여행


여행 초반의 나의 하루는 이랬다. 열심히 정보를 수집했다. 어느 정도냐면 숙소에 머무는 시간 대부분을 인터넷 검색을 하며 보냈다. 그렇게 스마트폰과 활자를 의지해 갈 곳의 후보지를 추렸다. 하지만 어쩐지 믿음이 안 갔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를 믿기엔 그 정보를 컨트롤하는 자본의 힘을 여러 번 목격했던 경험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인터넷 정보, 그 이상을 원했다. 그건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은 여행자의 경험담이었다. 그렇게 묻다 보니,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고 그럼 반대로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곤 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니까 그 시간을 잘 쓰기 위해선 사전 준비가 수반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여행에 효율이라는 가치를 부여한 거다. 그리고 그 믿음에 따라 다수가 추천한 곳을 하루 많으면 세 곳, 보통 두 곳을 찍었다. 한 마디로 뭘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의 여행 버전이었다. 다시 오지 못할 이 곳의 어디를 찍어야 잘 다녀왔다고 소문이 날까. 그런 생각을 했다.






매일 별점이 높은 유명 관광지를 찾았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베트남 호안끼엠 호수, 태국 카오산로드를 떠올리면 된다. 이름만 들어도 단번에 그 나라가 떠오르는 대표적인 들. 그리고 그곳들을 하나씩 섭렵한 후엔 그렇게까지 유명하지는 않지만 치앙마이를 다녀왔다면, 후에 Hue를 다녀왔다면 알 법한 곳들을 다녔다. 메뉴판으로 치자면 인기메뉴 정도 될 법한 곳들이었다. 물론 여행책자나 블로그 등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곳들이었다. 내 관심사나, 취향보단 여행 다녀온 사람과 그곳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그리하여 가벼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곳들이었다. 부지런히 다녔다. 그렇게 나는 삶의 쉼표를 찍으러 간 여행에서 어쩌면 직장인의 일상 보다 바쁜 일정을 이어갔다.






여행에도 쉼표가 필요해졌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동남아의 날씨는 무더웠다. 그리고 나는 뚜벅이 여행자였다. 그리고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동남아의 유명 관광지에는 계단이 참 많다. 그렇게 나의 체력은 알게 모르게 고갈되고 있었다. 그렇게 오늘 하루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 같은 여행은 점점 나와 멀어져 갔다. 다른 방식이 필요했다. 필요는 방법을 찾아냈고, 그 방법은 내 체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는 것이었다. 양보다 질을 추구하기 시작했다고 해야 할까. 수박 겉핥기식 가벼운 여행 말고 좀 더 장소에 내 시간과 애정을 붓는 그런 여행이 시작됐다





그 변화가 여실히 드러난 건 스리랑카 엘라 Ella였다. 엘라는 특히, 유럽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었고, 그 인기를 증명하듯 마치 세계일주를 떠나도 될 법한 거대한 배낭을 멘 유럽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대륙 멀리 사는 유럽 사람의 여행법도 아시아, 그중에서도 한국 사람인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해 줬다. 그건 동선을 고려한 알찬 여행 구체적으로 아담스피크와 나인브릿지를 하루에 도는 것이었다. 숙소의 위치에 따라 나잇브릿지의 열차 통과 시간에 따라 또 여행자 성향에 따라 순서는 바뀔 수는 있어도 그 두 곳은 세트처럼 소화하는 일정이었다. 외국인이 경복궁 갔다가 인사동을 차마 스쳐지나지 못하는 것처럼.








나인브릿지에서의 반나절


그때의 나도 그 두 곳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나인브릿지에 가기 전,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에 들려서 열차가 지나가는 시간을 체크했다. 너무 촉박하지도 않고, 너무 기다리지도 않는 적당한 시간에 나인브릿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열차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근데 열차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서울에서 처럼 늦어봤자 얼마나 늦겠어하는 생각이었을까? 한참을 서성이다 열차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열차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앉아서 기다리는 내가 터줏대감(?)처럼 보였을까? 열차가 지나갔느냐는 질문을 시작으로 어느 독일인 커플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이어 갓난 아이를 엎고 그 갓난 아이보다 훨씬 큰 배낭을 메고 여행 중인 젊은 체코 가족의 사진을 찍어주게 됐고, 또 사진을 요청하는 외국인과 셀카봉을 들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렇게 열차를 기다리다 열차 보기를 포기하고 돌아서는 열댓 명의 여행자들의 뒷모습을 보며 열차가 지나가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다 옛띤 청년이 등장했다. 그는 갑작스러운 등장만큼 전후맥락 없이 다짜고짜 내 스마트폰을 달라는 제스처를 했다. 정황이 없어설까. 달라는 그에게 스마트폰을 건네줬는데 내 뒤편에 그토록 오매불망 기다리던 열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청년은 열차가 들어서는 순간부터 자취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순간까지 바삐 셔터를 눌렀다. 그럴듯한 여행 사진 하나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기차가 지나가고나서야 청년은 본인을 소개했다. 가족이 근처에서 찻집을 하는데 함께 가지 않을 거냐는 거였다. 암, 괜한 친절은 없지 하면서도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해주었으니까 차 한 잔은 기꺼이 마실 의향이 있었다. 그를 따라 경사진 숲길을 헤치고 찻집이라 불리는 허름한 곳에 도착했다. 80년대, 90년대 드라마에 나오는 부잣집 말고 평범한 단독 주택의 마당 그곳에 테이블 두어 개가 놓인 곳이었다. 물론 드라마처럼 정갈하게 세팅된 모습을 상상하면 안 된다. 암튼 그곳은 흔히 떠올리는 카페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지만 주문한 차는 달았고 기분 좋게 따뜻했다. 아마도 뜻한 바를 이루고 마시는 차라 남다르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차 한 잔의 행복을 누리고, 나인브릿지를 떠나기로 했다. 근데 예상치 못한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가던 발길을 돌려 다시 카페로 돌아왔다. 비가 멈출 때까지 잠시 비를 피할 심산이었다. 한산했던 카페엔 비를 피하기 위해 모여든 여행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나는 테이블의 경계가 사라진 그 카페에서 빈 의자를 발견했고, 그렇게 독일에서 온 여행자 두 명과 합석을 하게 했다. 유럽에 갔을 때, 만나는 사람이라곤 온통 중국인 관광객들뿐이었는데 동남아에 오니, 마치 유럽에 온 것처럼 매일 만나고 이야기 나누고 있는 유럽인이었다. 우린 소소한 얘기들을 나눴다. 나인브릿지에서 열차를 보았느냐는 질문에 인증샷을 보여주는 나에게 예상도 못한 커다란 부러움을 표해주는 그들과 독일에서 스리랑카까지 비행기 값은 비싸지만 체류비가 워낙 저렴해서 올만 하다. 반면, 유럽 근처 나라에서 3주가량의 휴가를 보내기엔 교통비는 얼마 안 들지만 일경비가 많이 든다부터 동남아에 기승 중인 바가지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눴다. 독일과 한국에 대해서도. 비는 꽤 오래 내렸고, 기다리다 지친 우린 툭툭을 함께 타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결의를 했다. 우린 내 사진을 찍어준 청년에게 툭툭을 불러달라고 부탁을 했다. 600 루피를 부르는 청년. 우린 바가지에 익숙해진 걸까. 아니면 일부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사람도 못 믿게 된 걸까. 그냥 동남아 전체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게 된 걸까. 너무나 당연하게 가격을 낮춰달라고 한 입이 되어 흥정을 했고, 킬미 kill me 라며 죽는 시늉을 하는 종업원을 끝내 신뢰하지 못하고, 어느 정도 비가 진정되었을 때 걸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어둑해진 선로 위에 독일인 2명과 한국인 1명이 걷기 시작했다. 한 십여분 걸었을까.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여행을 꽤 다녔다는 독일인이 기지를 발휘했다. 근처에 있는 집에 가서 툭툭을 부르자고. 그렇게 무작정 집처럼 보이는 곳을 향해 걸었다. 고맙게도 집주인은 다소 당황했을 법도 한데 집 안으로 우리를 안내했고, 우리는 그 곳에서 툭툭이 도착할 때까지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부른 툭툭은 우리가 그렇게 못 믿던 그 청년이 말한 액수와 같은 600루피였다. 우린 거기에 집주인에게 감사의 뜻으로 100루피의 사례금을 전달했다. 나잇브릿지에서의 반나절에는 그런 에피소드가 점철돼 있었다



그렇게 여행의 동선은 여행 후반부로 갈수록 작아지다가 한국으로 돌아오기 3일 전엔 이런 동선이 되었다. 네곰보 비치 코 앞에 숙소를 잡고, 걸어서 1-2분 걸리는 레스토랑에서 하루 3끼를 먹고, 날이 좋으면 네곰보 비치에서 물놀이를 하고, 그 외 시간엔 숙소에서 여행자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그렇게 74일의 여독을 풀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사지선다 시험 말고, 인생에 정답은 없다고 믿는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행을 잘하기 위해선 자기를 잘 아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아야 기성품 같은 여행이 아닌, 맞춤복 같은 여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행을 통해 그걸 찾을 수도 있다.

여행은 그렇게 몰랐던 나를 알게 해 준다.

그래서 나는 여행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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