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착제 Glue 찾아서 삼만리

미얀마 낭우 시장에서 신발이 망가졌다

by 안녕씨

"하지만 여행이란 뻘짓하는 재미로 다니는 거죠.

완벽하게 통제된 상황을 원한다면

그냥 집에서 익숙한 일상만 반복하며 살아야지요"


책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 중에서



신발을 도저히 못 쓰게 됐다. 매일 걷고 또 걸은 탓에 수명이 급속히 줄어든 것이다. 너덜너덜해진 깔창은 걷는 걸음마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사방에 묻은 흙의 너저분함은 말해 뭐해. 조치가 필요했다.


그렇게 미얀마 낭우 시장에서 접착제 Glue 찾아 삼만리를 하게 된 이야기를 할까 한다.



전기 바이크에 올라타려고 하는데 이상한 조짐이 느껴졌다. 발을 들어 살펴보니, 깔창이 분리됐다. '하나뿐인 운동화인데...... 어쩐담..... 여긴 템플 파고다뿐인 바간인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행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Where can I get a glue?


나는 그렇게까지 경우가 없는 사람이 아니다.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다는 걸 안다. 그런 이유로 내 질문만으로 청자가 내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할 거라고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었다. 그래서 비언어 요소를 십분 활용했다. 우선, 발을 들어서 내 신발이 그의 시야가 닿는 높이까지 보이도록 했고, 문제의 깔창을 손가락으로 이 보다 가까울 수 없다 진짜 근접거리에서 가리켰고, 더 나아가 엄지와 검지를 뗏다붙였다하면서 together라는 단어를 알고 있길 간절히 바라면서 투게더를 반복 또 반복했다. 나는 정말이지 최선을 다했다.


나의 최선은 과연 내가 원하는 결과로 이어질까.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어디론가 향하셨다. 당면 과제를 어렵지 않게 해결하나 하고 기대감을 갖고 졸레졸레 따라갔다. 아저씨가 멈춰 선 곳은 신발 가게. 그리고 아저씨는 시크하게 본인의 갈 길을 가셨다. 유유히 떠나는 아저씨 뒤통수에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정오 무렵이었다. 하지만 가게는 어두웠다. 생각해보면 내 기억 속, 인도의 상점도 그랬다. 기능적인 역할만 하는 전구, 가게의 콘셉트라든지 인테리어라든지, 눈 건강을 고려하기엔 당장을 살아내는 일이 더 시급한 경제 도상국을 나는 또 그렇게 대면했다. 신발 덕후인 나는, 신발 가게를 못 지나치고 여행할 때마다 신발 가게는 꼭 들리곤 했는데 시장 입구에 당당하게 위치한 그 가게는 규모면에서도 지금껏 본 신발가게와 비교가 안 되게 컸다. 그러니까 입지와 규모면에서 상위권에 드는 가게였다. 하지만 눈에 드는 물건은... 음 노코멘트하겠다.



그렇게 인기척을 찾는다는 게 주객전도로 가게 구석구석을 살피게 됐다. 음 한국에서 높아진 눈은 미얀마 신발 가게에서 다시금 증명되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찾던 사람을 발견했다. 근데 상황이 애매했다. 왜냐면 대자로 바닥에서 단잠을 자고 있었으니까. 깨워야 하나? 그냥 단념해야 하나? 내적 갈등이 심화될 무렵, 사장님이 눈을 뜨셨다. 사장님이라고 호칭하는 이유는 설마 점원이 이렇게 위세 등등한 자세로 낮잠을 잘 수 없지 않을까 하는 내 추측이 큰 몫을 했다.




암튼 또다시 소통의 미션이 주어졌다. 나는 내 상황을 최선을 다해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모조리 활용해 설명했다. 하지만 사장님은 검정 하이힐을 내게 보여주셨다. 소통이 실패했음이 드러났다

나는 거절의 의사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랬더니 이번엔 핑크색 단화를 추천해주셨다. "시밀러 시밀러"라는 말을 강조하시면서. 도대체 검정힐과 핑크단화에 어느 부분이 비슷하다고 느끼셨는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대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내 선택은 진정성을 담아 큰 소리로 l love my shoes를 외치는 것이었다. Similar를 아는 사장님이니까 love는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그 말에 사장님은 급 차가워지셨고,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날 매장 밖으로 내몰았다.

그 손가락에 의지해 아니 쫓겨나다시피 어디론가 걸어갔다. 낭우 시장 한복판이었다. 사방을 둘러봤지만 내가 왜 여기 서 있는지 당최 모르겠는 그런 곳이었다. 다시 한번 묻기로 했다. 이십대로 보이는 아이 엄마에게 발을 들고 손을 격하게 움직이며 앞서 한 것들을 능숙하게 해 냈다.



그녀는 또다시 어디론가 나를 이끌었다. 따라가 봤다. 액세서리 가게였다. '그래, 핀 만들 때 글루건을 쓰지'하고 큰 기대를 했다. 글루건 한 방이면 내 신발은 멀쩡해질 수 있어. 근데 액세서리 사장님은 내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되레 무슨 말인가를 계속했는데 이해불가의 그 말들은 우호적인 분위기와 거리가 멀었고 그렇게 나는 낭우 시장에서 접착제 찾는 걸 포기했다



접착제만 찾아다니기엔 2천200개에 달하는 파고다와 템플이 있는 바간에서의 내 용무는 많았다. 또 다음날 포파 산 POPA Mountain 갈 계획도 세워야 했다. 마음을 접기로 하고 파킹해 놓은 전기자전거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달렸다. 달리다 One day tour가 적힌 여행사가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스낵, 음료도 팔고 스쿠터도 대여하는 여러 기능을 하는 돈 되는 건 다해 같은 상점이었다. 잠시 멈춰 포파 산 가는 교통편을 상담받기로 했다. 가격이며 일정이며 이것저것 따져봤다. 숙소에서 제공하는 동일 상품 대비 장점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발걸음을 돌리려고 하는데,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가운데 가장 소통이 잘 된 이 사람에게 접착제를 물어보면 작은 실마리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별 기대 없이 질문을 던졌다.


어디서 접착제를 구할 수 있는지 아나요?



그 점원은 대답도 없이 상점 뒤편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그리곤 내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접착제를 내 눈 앞에 놓았다.

나는 가격을 물었다.

100짯이라고 했다. 한국돈으로 200원이 넘지 않는 액수였다. 나는 바로 돈을 냈고,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접착제로 신발을 수선했다. 접착제는

200원짜리가 맞나 의심스러울 만큼 접착력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나는 그 접착제 덕분에 내 애정 하는 신발과 함께 신발 걱정 없이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무엇이 되었든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좀 빙빙 돌더라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쉽게 포기하지 말라고 100짯 짜리 접착제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또 허튼짓 하는 시간도 시간이 지나면 소중한 추억으로 포장될 수도 있으니 함부로 단정 짓지 말라고 속삭이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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