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바가지를 피하고 싶다면

스리랑카 캔디에서 '바가지 극복기'

by 안녕씨

동남아의 바가지를 극복해보기로 했다. 이래 봬도 동남아 여행 2달 차,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으니까 요령이라는 게 생기지 않았을까 했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어쩐지 익숙한 그 멜로디를 흥얼거리게 만드는 마력의 캔디를 여행 전, 만화 카페에서 읽은 터라 캔디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가 유독 눈에 띄었다. 딱히 내가 흥미롭게 여기는 무엇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알 수 없는 끌림, 순전히 그 끌림에 나를 맡겨보기로 했다. 캔디행이 결정 났다. 성인이 돼서 읽은 캔디, 나는 캔디가 그렇게 기구한 운명의 파도를 넘나드는 캐릭터인 지 몰랐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고아원에서 생활, 친구들이 다 입양 보내지고서야 제일 늦게 선택, 근데 입양아가 아닌 입주 도우미. 거기가 끝이 아니다. 고난은 멈추지 않고 이어진다. 못된 남매를 만나 괴롭힘을 당하고, 하필 재회하게 된 고아원 절친은 자신의 과거를 숨기기 위해 캔디에게 쌀쌀맞게 굴고.... 그런 스토리를 떠올리며 캔디 가는 버스에 올랐다. 참고로 정확한 지명은 kandy다.







길고 길었던 캔디 가는 길




네곰보 Negombo에서 캔디까지 버스비는 150루피, 한화로 1000원이었다. 차로 3시간 걸리는 거리였다. '얼마나 저렴한가. 역시 동남아야'라고 외치고 싶지만 실상은 이랬다. 나는 이 버스에서 미얀마의 후진 버스가 최악이 아니었구나를 몸소 느꼈다. 시설면에서 두 버스 모두 열악했지만 이 버스는 거기에 한국의 지옥철까지 경험하게 만드는 주식으로 표현하면, 바닥인 줄 알았는데 지하로 내려가는 최악을 경험하게 해 줬다. 두 사람이 앉는 버스 좌석에 두 명이 앉아 있는데도 앉아도 되냐고 묻는 선한 인상의 아주머니, 그리고 흔쾌히 그러라는 승낙해주는 내 옆자리 승객을 나는 놀라움 그 자체로 바라봤다. 그렇게 세 명이 앉을 수 없는 공간에 성인 셋이 앉았다. 서로의 몸은 밀착이라는 말이 부족할 만큼 초밀착된 상태로 목적지까지 서바이벌하게 만들었다. 버텨내야 했다. 특유의 습하고 더운 동남아의 날씨에 엄청난 인원이 내뿜는 열기(얼마나 빼곡히 승객을 태웠는지 바라만 봐도 눈이 피로해질 지경이었다), 차에서 나는 정체 모를 소음, 울퉁불퉁한 도로의 충격을 정직하게 승객에게 전달하는 버스, 또 의자는 어떤가. 흡사 나무 의자에 앉은 듯한 딱딱한 불편함, 딱 한 단어로 표현이 안 되는 여러 향의 복합체 꿉꿉한 향기, 한 마디로 숨이 턱 막힐 것 같았다. 그래서 그저 이 괴로운 시간이 어서 빨리 지나가라고 느리게 가는 시간을 원망하며 캔디에 입성했다.





너무 피곤했다. 빨리 숙소에 짐을 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툭툭 Tuck Tuck을 잡았다. 그리고 능숙하게 가격 흥정을 했다. 흥정한 돈을 내고 내리려고 하는데, 툭툭 기사가 나의 다음날 일정에 관심을 보였다. 나는 숙소를 코앞에 두고 '더 이상 너희들에게 휘둘리지 않겠어. 나는 택시 기사가 내라고 한 돈도 다 안 주고 내린 승객이야.'라는 강한 전투력을 보이며 그가 제시한 내일 투어비 2500루피를 무려 절반 이상을 깎은 1000루피에 타협을 봤다. 그리고 그 성취는 꽤 달았다.





캔디에서의 첫날





숙소에 짐을 풀고, 잠시 쉬고 있는데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호텔 사장님이었다. 루프탑에 바 Bar가 있는데, 식사하면 좋겠다였다. 시계를 보니, 오후 7시가 훌쩍 넘었고 시계를 봐설까. 식사 얘기를 들어설까. 시장한 것도 같았다. 십 분 후에 올라가겠다고 말하곤 그를 보냈다. 막상 올라간 루프탑은 내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750루피 전후의 저렴하지 않은 음식뿐이었고, 메뉴도 스리랑카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색 있는 메뉴도 아니었다. 나는 인근 지역을 산책도 하고, 로컬 식당에서 식사도 할 겸 겸사겸사 나가보기로 했다. 근데 사장님께서 여자 혼자 밖에 나가는 것은 특히 이 시간대에 위험하다며 자기가 밀크티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밀크티를 나누며 나는 사장님의 도움을 받아 스리랑카 여행 일정을 조금 수정하게 됐고, 그때쯤 사장님은 루프탑에서 식사, 어떠냐고 제안했다. 본인이 대접하겠노라며.



중국에 주얼리를 수출하는 게 본업, 호스텔 운영은 취미 같은 것이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사장님과 그 사장님의 직원, 정확히는 인턴 자격으로 스리랑카에 온 중국 여대생, 그리고 나.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한국 여행자. 그렇게 셋이 함께 저녁을 먹게 됐다. 손으로 카레라이스를 먹는 사장님을 신기하게 쳐다봤을까. 아니면, 내가 직접적으로 물었을까. 사장님은 손으로 먹는 식사 법의 장점을 피력했다. 누구 입으로 들어갔을지 모를 불결한 포크, 수저 대신 손에 닿은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아는 깨끗하고 믿음직한 본인의 손인데 다 오감까지 느낄 수 있다고. 그리고 더 나아가 나에게 손으로 먹어볼 것을 권하셨다.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는 거지. 한 번 해볼까?' 하고 먹어봤다. 확실히 직접 해보니, 눈으로 봤을 때와 달랐다. 요령이 없으니까 사장님처럼 먹는 자연스러운 경지도 숙달의 시간을 요하는 일종의 기술임을 깨달았다. 손으로 밥알을 안정적으로 뭉치기 위해선 적정의 밥의 양을 가늠한 후 적정의 압을 이용해 뭉쳐야 입까지 발알의 분실 없이 이동할 수 있는데, 당연히 나는 어려웠다. 암튼, 내 후기는 서투르니까 시간이 많이 걸렸고, 또 뜻대로 안 되니까 답답했고, 거기에 손에 묻는 그 느낌도 싫었다. 그래도 타문화를 인정하는 바람직한 세계인이 되기 위해 솔직함은 감추고, 애매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랬더니, 사장님은 손을 입 안까지 넣어야 하는데 내가 입 위에서 음식물만 털어놓아서 그렇다는 피드백을 주었다. 나는 그렇구나 했다. 스리랑카 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중국에서 최근 십여 년이 지난 닭고기가 슈퍼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로 전개가 됐다. 여대생이 덧붙였다. 중산층 이상 자국민들은 절대 Made in China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나는 내가 대한민국 국민인 게 자랑스러웠다. 적어도 슈퍼에서 편의점에서 산 제품에 대한 신뢰는 있으니까. 근데 여대생이 나의 자랑스러움을 희석시키는 까다로운 질문을 나에게 던졌다.



"중국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자서전을 읽었어요. 존경하고 싶을 만큼 의지력이 강한 여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 최순실 사태에 대해 설명해주실래요? 대통령과는 무슨 관계인가요?"



스물 초반의 대학생, 그녀의 수준 높은 질문에 나는 당황했지만 성실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최근 두 달 한국 아닌 곳에서 지내서 잘은 모르지만 아는 만큼만 이야기할게요. 대통령은 국민이 꿈을 이룰 수 있게 해 줘야 하는데, 특정인의 꿈만 지원해준 것에 대해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어요. 인맥을 이용해, 한 개인에게 도를 지나친 특혜를 줬음이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났기 때문이죠. 관계는 잘 모르겠어요. "



한 나라의 대통령과 관련된 스캔들 그 무게감 있는 대화를 나눈 후, 나는 한없이 가벼운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했다. 그건 2500루피를 부르는 툭툭를 1000루피에 깎은 무용담이었다. 근데 반응은 뜨끈 미지근했다. 사장님은 진지한 표정으로 가격을 깎았기 때문에 쇼핑을 유도할 것이라며 만반의 대비를 하라고 전문가 같은 분석을 내렸다. 대단하다는 칭찬은 1도 없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Be careful.



그쯤 그녀는 본인이 요리한 중국 향신료가 강렬한 음식을 다 먹었고, 자리를 떠났다. 나는 좀 더 루프탑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만반의 준비를 시작했다. 일정표를 적었다. 내일 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1. 엘라 가는 기차표 사기 2. 로열 보타닉 가든 가기 3. 템플 가기 뭐, 어렵지 않잖아 하고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만반의 준비의 결과는







만반의 준비로 무장한 다음 날이 밝았다. 약속 시간에 맞춰 숙소 앞으로 온 기사를 마주하고, 열심히 작성한 일정표를 보여줬다.

근데 기사는 야경 명소에 날 내려줬다. 그렇게 캔디가 한눈에 들어오는 근사한 뷰를 눈에 담았다. 그곳에서 그는 나의 내일 일정을 물었다. 나는 시기리야에 갈 계획이라고 대답했다. 30달러 주면 왕복을 책임져주겠다는 그, 나는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다른 말로 '오늘 열심히 해 줘'라는 무언의 부담이었다. 엘라 가는 기차 티켓을 구매하러 갔다. 캔디행 버스는 다시는 버스의 '버'도 떠올리기 싫게 만들었으니까. 원하는 일정은 이미 매진, 하루 더 캔디에 머무는 일정으로 계획이 조금 수정됐다. 기찻표도 예매했겠다 로열 보타닉 가든 Royal botanic garden으로 가자고 했다. 기사는 시동을 걸고 어디론가 달리더니 낯선 곳에 멈췄다. 그리고 빵빵하게 나온 본인의 배를 쓰다듬으며 방긋방긋 웃었다. 그렇게 빵집에서 그가 아침 먹는 걸 봤다. 그리고 나도 좀 먹었다. 견물생심이라고 아침을 먹고 나왔는데, 먹는 걸 보니 먹고 싶었고 그렇게 가볍게 2차를 했다. 그다음 목적지는 내 의사와 전혀 무관한 스### 가든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박사 과정을 공부 중이라는 청년에게 맡겨졌다. 그 고급인력에게서 헤어에 좋은 제품, 피부에 좋은 제품 등등의 설명을 들었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터치하면 수줍은 듯 한껏 몸을 웅크리는 미모사라는 풀을 알게 된 건 수확이라면 또 수확이니까 받아들이자고 다독였다. 그리고 차 공장 Tea Plantation에 내렸다. 얼마 전, 말레이시아 카멜론 하이랜즈에서 이미 다녀온 곳이지만 그곳과 같은 듯 다른 운영 방식을 보는 재미가 솔솔 했다. 특히 시음을 준비해주는데 마치 찻집에 온 것 같았다. 말레이시아는 시음 컵이었다면 여긴 근사한 찻잔에 차를 따라주더라. 음미하며 차를 마셨다. 잠시 쉬고 싶었는데 이렇게 질 좋은 차를 즐기다니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제품을 구매해야 커미션이 떨어지는 기사는 아니었다. 마땅찮다는 티를 확 내며 " 차에 관심 없어?"라고 묻는 그, 나는 "예스"라는 한 마디만 던졌다. 이미 말레이시에서 여러 개 샀어라고 말했으면 좀 날 이해했을까. 덜 성이 났을까. 하다가 애초에 내 의사를 존중하지 않은 그를 이해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건강한 비판과 함께 그 노력을 멈췄다. 대체 몇 번을 더 말해야 할까. 나는 그에게 또 로열 보타닉 가든을 말했다. 그는 입장료는 1500루피인데 주차비가 500루피나 된다고 했다. 나는 2시간 후에 보자고 했다. 그럼 주차비 낼 필요도 없고 너도 두 시간의 자유시간 갖는 거니까. 간단명료한 그 일을 두고 지루한 반복이 이어졌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제시한 방법을 그가 싫어한다는 것. 갑자기 그는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아픈 사람처럼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곤 눈 앞에 보이는 버스를 가리키면서 집에 갈 때 타고 가면 된다고 알려줬다. 그러면서 약속한 돈의 절반을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일 시기리야에 함께 갈 거냐고 묻었다. 속으로 너라면 가겠니? 가 목 밑까지 차올랐지만 그냥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나의 바가지 극복기는 애매하게 마무리됐다.





바가지를 피하는 필살기는?




동남아에 기승을 부리는 바가지 상술에 대처하는 여러 노하우가 떠돈다. 절대 한 곳에서 전부를 사지 않는다. 사다 보면 가격이 보이니 섣부른 구매를 자제하라는 조언이다. 그러다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곳을 찾으면 그곳에서 대량 구매로 가격을 좀 더 낮추라고 한다. 또 친절한 택시, 음식 배달앱을 설치받고 잘 활용하라는 조언도 있다. 미리 한국에서 예매하면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내가 바가지를 요리조리 피해보려고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작정하고 속이려는 자를 감히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그 지역에 대해 언어에 대해 잘 모르는 여행자는 더 취약한 위치에 서 있다. 물론 시간을 투입하고, 정성을 들여서 공부하면 되지만 그로 인한 효익을 따지면, 갸우뚱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바가지 피하는 노하우 하나를 방출하자면, 이거다.

현지인처럼 보일 것, 절대 하우머치이즈잇 How much is it을 말하지 말 것. 왜냐하면 하우머치이즈잇을 소리 내는 순간 호갱님을 인증하는 셈이니까. 눈썰미가 뒷받침이 된다면 현지인이 내는 돈을 보고 딱 그 액수만 내면 감탄이 나올 만큼 저렴한 현지 물가에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더 좋은 팁이 있다면 공유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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