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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씨 Jul 26. 2020

여행의 즐거움은 쇼핑이지

저는 각국의 신발을 꾸준히 사고 있어요

파파야 샐러드

각국의 요리 도구를 수집하는 건, 어떨까


     

남대문 시장에서는 돌솥을, 태국에서는 크룩을, 프랑스 생캉탱에서는 르크루제를, 중국에선 코크스와 쇠로 만들어진 중국 냄비를 샀다고 했다.  음식에 따라서 이 냄비가 아니면 절대로 나오지 않는 맛이 있기 때문이라고.      


책 <손때 묻은 나의 부엌>을 읽는데, 태국의 방콕 거리가 떠올랐다. 걷다 보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흔한 광경이 있었다. 길 한 모퉁이에서 자그마한 돌절구에 무언가를 열심히 찧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완성시킨 걸 앙징맞은 자그마한 비닐봉지에 담아 손님에게 무심히 건네던 모습,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들던 장면이었다.  대체 무슨 음식일까, 궁금은 했지만, 차마 묻지는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던 것. 정체는 확실했지만 꽤 대중에게 사랑받는 요리가 아닐까 추측을 했더랬다. 시간이 흘렀고, 그때 그 궁금증은 어느새 사는 일에 묻혀 퇴색이 됐고, 잊힐 뻔했는데,  빠이 Pai에서 말레이시아 포 언니를 통해 알게 됐다. 야시장이 열린 날이었다.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저녁을 먹자고 했다. 언니는 노점상에 파타야 샐러드를 주문했다.  돌절구에서 방콕 거리에서 본 익숙한 과정이 반복됐다. 나는 그제야 퍼즐을 맞추듯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린 파파야 샐러드는 내 애정 하는 태국 음식이 됐다. 근데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던 도구 돌절구 크룩에 대한 정보가 이어졌다.


 

- 마늘, 고추, 녹후추를 절구로 찧는다. 섬유질이 풀리고, 세포에서 향이 피어오른다. 부엌칼로는 절대로 이런 향이 나지 않는다.


- 아무리 심플한 요리라고 해도 태국 요리에서 복잡한 맛이 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맛의 근간이 다르다. 태국 요리 맛의 비밀 중 하나는 다름 아닌 록의 존재라는 사실을요.



책을 읽을수록 크록이 탐났다.



 


추억 소환용, 여행 기념물에 관해

      



여행을 좋아한다면, 한 번쯤 ‘무엇’으로 내 여행을 기념할까를 고민해보지 않았을까.  가장 대중적인 건, 마그네틱과 스노우볼, 그리고 스타벅스 머그컵, 텀블러 등이 아닐까. 회사 생활은 유한한데, 금수저, 은수저도 아닌 데다, 하고 싶고, 누리고 싶은 건 많은데, 100세 시대라고는 하고, 거기에 코로나 19 바이러스까지. 도무지 '불안'이라는 두 글자를 땅 속 깊이 묻어버릴 수 없는 지금, 괜히 소확행이니, 플렉스니 하는 용어가 등장한 건 아닐 것이다. 현재를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일상에서 찰나와 같더라도 여행을 추억하면서 힐링할 수 있는, 추억 소환용으로 삼을 만한 기념품이 있다면 가뭄철 단비 같은 존재가 되지 않을까.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지만 추억 소환용 물건에 관해서는 조금 넉넉하게 인심을 써본다. 그런 물건이 부재한 공간은 어쩐지 삭막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나는 각국의 신발을 사고 있어요



레페토 신고



나는 신발 덕후다.  좋은 신발을 신으면 좋은 곳으로 날 인도한다는 말을 철떡 같이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 가서 신발을 산다.  프랑스 마레지구에서는 레페토 Repetto를 샀다. 산드리옹, 까미유, 지지....... 어느 모델을 살까에서 무슨 색을 살까를 고민할 즈음 매장엔 기다란 봉이 설치되고 있었다. 그리고 예사롭지 않은 자세의 소녀가 발레슈즈 토오프를 신기 시작했다. 이어 우아한 자세로 기다란 봉에 다리를 살포시 얹었다. 느 신발 가게에서 볼 수 없는 그 진귀한 장면을 보며 나는 레페토를 샀다. 그리고 그 신발을 신을 때마다 그 장면이 되풀이된다. 파리의 온도, 습도, 풍경도  연쇄적으로 떠오른다.  무용수들을 위한 발레 슈즈를 작은 작업장에서 만들던 것이 레페토 브랜드의 시작이라고 듣긴 했지만, 직접 보고 나니 더 잊으래야 잊을 수 없게 돼 버렸다. 이래서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하나 보다.



레페토 매장에서

   

스리랑카에서는 무려 80퍼센트나 세일하는 수박 콘셉트의 플립플랍 flip flap을 샀다. 플립플랍이 건강에 안 좋다는  가능하면 안 신는데, 한국으로 돌아가기까지 고작 사흘 남겨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사흘은 바닷가에서 보낼 예정이었다. 갖고 있는 거라곤, 운동화 한 켤레가 전부였으니, 쪼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귀엽고, 예쁜 데다 저렴하기까지 한 그 플립플랍을 구입하지 않을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거기에 미얀마에서 샀던 플립플랍의 놀라웠던 착용감도 동남아의 플립플랍을 신뢰하게 했다. 바로 결제를 했다.  그러나 마냥 행복했던 충동구매의 결과가 최악의 쇼핑이었음을 깨닫는 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신발이 흉기가 돼 버렸기 때문이었다. 걸을 때마다 고통스러웠지만,  무릇 새 신발은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고, 곧 그 적응의 시간도 끝이라는 걸 맞이할 거라고 나는 믿었다.  그렇게 미련스럽게 그 신발을 가까스로 걸치고 바닷가로 나가는 나에게 숙소 사장님이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 살점이 살짝 떨어져 나간 그곳에 연고를 발라주면서 중국산은 나쁜 화학 재료를 쓰기 때문에 건강에 유해하다는 얘기를 해줬다. 나는 그 신발을 과감히 쓰레기통으로 버렸다. 산지 이틀만이었다. 신발은 시야에 사라졌지 아픔은 그 후로도   지속됐다. 동남아의 저가의 플립플랍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유해할 수도 있다를 나는 내 살점을 희생시키고서야 알게 됐다.       




인도에서 산 신발 신고




또 기억에 남는 건, 인도다. 패키지여행으로 갔다. 정해진 스케줄을 소화하는 것으론 어쩐지 성에 안 차서, 아침 일정이 시작되기 전, 호텔 옆 상점을 방문했다. (한때 굉장히 의욕적였다) 수공예로 작업한 신발과 가방, 옷가지를 판매하는 상점이었다. 나는 수공예로 완성했다는 진짜 가죽으로 만든 신발을 하나 사기로 했다. 그리고 가격을 네고했다. 근데 점원이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내가 무리한 요구를 했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가게에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불이 난 것이었다. 놀라는 나와 달리 차분하게 나를 가게 밖으로 안내한 후, 상황을 잠재우는 점원은 그저 그의 일상을 소화하는 느낌이었다. 연기는 곧 진정이 되었고, 나는 불이 났던 가게에 들어가서 기어이 그 신발을 샀다. 그리고 점원과 기념사진을 찍고, 가게를 나왔다.


       

또 무엇을 샀을까. 말레이시아에서도 신발을 샀다. 참고로 말레이시아는 저렴하고 질 좋은 신발로 명성이 자자하다. 얼마 전, 그 신발을 신고 백화점에 갔는데 “혹시 어디서 신발 구매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라는 낯선이의 청을 들었다.  사고 싶은데, 정보를 알려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몇 년 전, 해외에서 산 거라 구하기 어려울 거라고 답하긴 했는데, 뭔지 모를 뿌듯함이 들었다. 이탈리아에선 우리나라 중저가보다 저렴하게 프라다 구두를 샀고, 또 뭘 샀을까.      



 여행지에서 산 신발들을 신고, 나는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때 그 여행을 추억한다.  소소하지만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즐거움이다. 특히, 코로나 19 시대엔 꽤 유용하다. 그래도 좀 바란다면, 여행지에서 기념으로 사 온 각국의 머그컵으로 단 하나도 동일한 머그컵이 없는 콘셉트의 카페를 차린 카페 주인처럼, 내 경험을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의미 있는 기념품을 모으고 싶다는 것. 각국의 냄비를 소장하는 이야기가  흥미롭게 들렸던 건. 아마 그런 연유에서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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