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드는 수밖에

혼자 여행을 떠난 이유

by 안녕씨




금융 회사에 입사하고 싶었다. 살면서 뗄레야 뗄 수 없는 애증의 '돈', 그 돈의 최접선에서 경제적 자유를 이루는 데 필요한 것들을 배우고 싶어서였다. AI 시대, 위태로운 직업으로 손꼽히지만 근속연수가 예상외로 짧은 게 흠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고연봉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최종 합격이란 네 글자를 마주하지 못했다.


학원 강사로 일하면서, 구직을 하고 또 했다. 그렇게 아르바이트와 병행하며 1년의 구직을 이어갔다. 그러다 메이저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준비한 시간이 아깝지 않을 증권 방송국에 입사하게 됐다. 실망했을 거라고 예상할 수도 있지만, 결코 짧지 않은 1년의 구직 시간은 내게 온 기회를 감사하게 여기게 만들었다. 정말 출근하는 게 즐거웠다. 제일 먼저 출근하는 사람이 나일만큼. 요즘은 철저하게 정시 출근을 지향하지만. 암튼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9시가 되지 않은 조금 이른 아침, 전화 한 통을 받게 됐다. 오너였다. 요지는 TF팀을 병행하는 기자를 물색 중인데, 해볼 의사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언젠가 본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기자였던 것 같은데, 를 떠올릴 만큼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기자라는 단어를 듣고 나는 "언론고시도 통과하고...... 수습 기간도 거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지금...... 너무......급작스러운 제안이라...... 당장 대답하기엔 ......시간이 필요할....." 이라며 버버벅 거리고 있었다. 내 문장이 채 매듭지어지기도 전에 그분께선 "교육은 받으면 되고, 조직에서 시키면 하는 거지"라는 말만 남긴 후, 전화를 끊었다. 바로 다음 날 나는 TF팀 소속이면서 증권부 소속인 기자로 인사명령이 났다.


평소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언젠가 내 이름이 적힌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품고 있던 나는 내심 기회로 여기면서도 또 한편으론 미지의 세계가 두렵기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내 앞에 어쩌다보니 기자의 길이 펼쳐졌다. '뭐, 걸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라는 심정이 됐다.


근데 보도국으로의 이동은 내 예상보다 훨씬 쉽지 않았다. 야마니 와꾸니, 듣고 소리를 낼 수 있으니까 한국어가 맞는 거 같은데, 또 나 빼고 모두 알아듣는 것 같은데, 정작 수신자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묻기로 했다. 야마가 뭐냐고 묻는 부장께 "죄송한데요. 야마가 뭐예요?"라고. 근데 물을 게 너무 많았다. 참고로 야마는 일본어로 산을 의미하고, 기사의 핵심을 뜻한다. 와꾸는 틀을 의미한다. 또 기사를 통해 읽기만 했던 단어들을 막상 내가 기자가 되어서 써보니, 틀린 맞춤법이 한둘이 아니었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 아는 의 괴리를 나는 창피하게도 자꾸 틀리는 맞춤법을 통해 알았다. 거기에 낙하산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해졌다. 오너의 '성'과 내 이름을 붙여서 호명하는 선배에게 정정을 시도했다가, 그것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다분히 의도를 가진 행동임을 알았을 때, 속상했다. 그러나 따로 강력하게 항의하지도 못했다. 그냥 속으로 '내가 희망한 것도 아니고, 나도 고충이 수두룩한데' 라며 전하지 못할 말을 삭히는 수밖에 없었다. 한때 나의 사수에 의하면 내가 고객님의 전화를 친절하게 받아서 회장님이 잘 보셨다는데, 그 친절함의 대가는 참 친절과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나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마케터로 입사했지만, 입사 3개월 차엔가 회계 및 자금 업무를 맡으라고 하셔서 세무 회계 자격증을 따며, 2번의 부가 신고세를 신고한 것처럼 묵묵히 하다 보면, 지금 어려운 것일지라도 익숙해지고, 또 할만해지지 않을까, 그냥 낙관했다. 그렇게 2년 3개월을 일했다. 광고 문구도 만들고, 급여도 집행하고, 자금 일보도 작성하고, 홈페이지 리뉴얼 작업도 하고, 기자가 되어 방송도 하고 그런데 또다시 인사이동이 났다. 다시 회계였다. '물' 경력이 돼 버렸다. 2년 3개월 한 직무를 꾸준히 수행했더라면 의당 갖춰야 할 업무 경력이 없었다. 물론 좋게 해석할 수도 있었다. 내가 만약 창업을 하게 된다면 내가 회사 내 필요한 업무 대부분을 수행할 수는 있겠구나, 하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라는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와 씨름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흐르는 눈물을 마주했다. 회사와의 이별도 이렇게 아플 수 있구나, 부질없는 생각을 붙잡고 회사의 인사명령을 또다시 받아들일지 말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그 끝에 퇴사라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 막막함이 밀려왔다. 한 시대의 끝이었다. 달리 말하면, 무언가를 새로 시작해야 하는 시기였는데, 나는 과거에 지나치게 얽매여 있었다. 나는 그 미련한 짓을 그만 하고 싶었다. 조치가 필요했다. 그렇게 다소 충동적으로 3일 후 떠나는 타이베이 비행기를 질렀다. 물론 혼자 가는 첫 해외여행이기 때문에 걱정이 한아름이었지만, 다행인 지(?) 그것을 압도하는 마주하기 싫은 현실과 내가 있었다. 그러니까 현실이 달콤하지 않아서 도피처로 택한 것이 내게는 혼자 여행인 셈이다.


그때의 대만 여행을 되돌아보면, 초심자의 행운이 따랐던 것 같다. 적당히 실수했고, 적당히 당황했고, 적당히 웃었고, 적당히 힐링하고....... 적당히 즐겁게 새로운 경험을 하고 왔다. 뭐 이런 식이다. 여행을 이어가야 한다. 그러려면 공항에선 출국 수속과 입국 수속을 '잘' 밟아야 한다, 도착해선 숙소를 잘 찾아가서 체크인을 잘해야 한다, 여행을 할 땐 가려고 한 곳과 하려고 했던 것을 해야 한다........ 그렇게 여행지에서의 시간에 집중했고, 좀 더 의미 있고 풍성하게 채우려고 내 관심을 쏟다 보니, 하기 싫은데도 떠나지 않았던 내 과거 생각을 떠올리지 않게 됐다. 그렇게 나는 유쾌하지 않은 과거와 작별을 하고 있었다.


대만 여행은 꽤 괜찮은 혼자 여행이었지만 그 후에도 혼자 여행은 좀처럼 용기가 나는 일은 아니었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에 익숙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기회가 생겼다. 친구와 통화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제주항공의 찜 특가 항공권, 한 번 예매해볼까 하고 동시에 예매를 하는데, 날짜가 공교롭게 달랐고, 그렇게 하루 먼저 친구가 출발하고, 내가 하루 늦게 출발하는 여행을 가게 됐다. 당연히 하루 차를 두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렇게 짧은 하루라는 시간이었지만 혼자 여행을 하게 됐다. 또 출장 가는 친구와 동행한 여행이 있었다. 친구가 업무를 수행하는 동안 나는 혼자서 마카오를 둘러봤다. 출장 간 김에 하루 더 체류한 제주 여행도 있었다. 그렇게 익숙하지 않은 혼자 여행을 익숙하게 만드는 시간들이 쌓이고 있었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전생에 죄를 한 번 지으면 기자가 되고, 두 번을 지으면 홍보, 세 번 지으면 기자에서 홍보로 전직하는 경우라고. 나는 기자가 맞지 않았다. 그래서 홍보로의 전직을 시도했다. 그렇게 K대 최종 면접을 보게 됐다. 근데 하필 K대 언론홍보학과를 졸업하고, K대 홍보팀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친구와 K대 졸업생도 아닌, 언론홍보 전공도 아닌, 기자 경력만 있는 내가 최종 2인에 들었다. 당연히 내가 떨어졌다. 어쩔 수 없이 기자 생활을 좀 더 하게 됐다. 그리고 그 시간은 역시 맞지 않는 옷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1년이 흘렀고, 나는 다시 그곳을 지원했다. 한 마디로 재수를 했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전직에 성공하게 됐다. 하고 싶은 업무였고, 더 잘하고 싶은 업무였다. 그래설까. 시간은 빨랐고, 2년은 짧았다. 그렇게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었다. 공백 없는 이직을 하고 싶었다. 원서를 내고 또 냈다. 원하던 회사를 몇 차례 떨어졌더니, 지쳐 버렸다. 그 와중에 내 여행의 일등공신 제주항공의 찜 특가 항공권을 발견하게 되고, 여기에 실업급여 수급 대상자라는 사실이 더해지니, 꽤 긴 혼자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좋은 여건이 됐다. 그렇게 74일, 동남아 일대를 혼자서 여행하고 돌아왔다.


그 이야기 - 혼자 여행했던 -가 적혀 있다. 현실이 괴로워서 현실 도피처럼 떠난 내가 떠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더 넓은 세계를 만난 이야기, 그곳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 이야기, 그리고 특별한 일에 묻혀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낯선 나라에서 나 홀로라는 고독함을 느낀 이야기다.


굳이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미국 속담을 인용하겠다. "삶이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든다" 삶이 시련을 주더라도 나는 앉아서 울기보단, 투정부리기 보단 즐거울 수 있는 선택을 할래. 뭐 그런 이야기. 미화하지 않고, 솔직하게 적으려고 애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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