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렇게 말하는 나를 발견한다. 나 홀로 여행을 처음 떠났던 2013년이 떠오른다. 첫 혼자 여행이 막막해 쉽게 발을 떼지 못하고 맨 마지막으로 비행기에서 내리는 승객 나에게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니까요"라고 말해준 상냥한 승무원을 만났다. 또 같은 비행기 일정에 같은 숙소에 머문 여행자에겐 "혼자 여행하는 분, 멋있더라고요."라는 말을 들었다. (실상은 얼마나 후들후들 떨었는데 암튼) 또 중국을 배우기 위해 1년 간 중국어를 배우고 있는 투숙객과 맛있는 걸 같이 먹으며, 또 지하철에서 옆 자리 인연으로 함께 회전 관람차를 타며 깔깔깔 웃었던 여행자와의 시간을 통해 여행지에서의 만남라는 이전에 모르던 세계를 알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첫 여행이 아니었더라면 혼자 여행의 예찬자가 되지 않았겠구나, 싶다.
오래 살고 볼 일이란 말이 있다. 우리 앞에 더 좋은 어떤 것이 예비돼 있으니 쉽게 낙담하고, 좌절하지 말고,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라는 말이라고 해석해본다. 근데 그 시간이 너무나도 막연하다. 유튜버 박만례 할머니처럼, 70세가 되기 직전에 호빵맨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자는 말을 들었다는 만화가처럼, 몇십 년을 더 살아야 그 이유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근데 혼자 여행을 떠나보면 안다. 진짜 더 좋은 것이 예비돼 있구나, 하고. 나는 혼자 여행을 통해 내 삶을 더 긍정하게 된 것 같다. 혼자 여행을 예찬하게 된 제주도에서의 하루를 소개해 본다.
귀국 편 비행기를 하루 연기했다
출장이 있었다. 장소는 제주도. 일만 하고 바로 서울로 돌아오기엔 제주도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돌아오는 일정을 하루 연기했다. 그 당시 업무량이 꽤 과중해서 앉기만 하면 졸고, 한 마디로 만성피로에 시달리던 시기라 여행 계획을 성실하게 세울 여유가 없었다. 그래도 시간은 가차 없어서 비행기에 올라야 할 시간은 점점 다가왔고, 가장 믿을 만하면서 쉬운 방법 친구에게 SOS를 쳤다. 어차피 가는 여행이라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에서 그 인기의 비결을 경험하고 오리라, 그렇게 애월의 S 게스트 하우스를 추천받았다. 태평하게 하루 전날, 예약 전화를 걸었다. 근데 내 귀에 들린 말은 꽤 충격적이었다. 한 달 전은 커녕, 거의 1년 후까지 예약이 다 찼다고 했다. 지금 같으면 설마 잘 곳을 못 찾겠어? 널리고 널린 게 숙소 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때의 나는 나 노숙하는 거 아니야, 미리 준비할 걸, 걱정을 떨칠 수 없었고 그렇게 부랴부랴 S 게스트 하우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게스트 하우스를 발견, 바로 예약을 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여행자들
출장 일정은 널널했다. 매일 출장 왔으면, 하는 달달한 상상을 하며 일정을 다 소화했다. 그렇게 중문에서 애월로 이동을 했다. 도로변에 있는 숙소는 찾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체크인을 하려고, 두리번거리는데 인심 좋게 생긴 청년이 라면을 끓이다가 나를 맞이했다. 사장님이었다. 사장님은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 후, 사장님께 샤워실과 화장실 등 주요 시설과 게스트하우스 이용 규칙 등을 설명받은 후, 방을 배정받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행자를 만나게 됐다. 제주도를 너무 좋아해서 제주도만 일 년에 수차례, 시간 날 때마다 찾는다는 여행자였다. 그녀와 제주도 얘기를 했다. 사실 제주도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서 거의 듣기만 했다. 그래도 무언가를 애정 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그 애정의 힘 때문인 지 흡입력이 있었고, 쑥쑥 빠져들었다. 그렇게 얘기를 나누는데, 또 다른 여행자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취업 준비생인데,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우린 그렇게 제주도를 주재료 삼아 수다를 떨었고, 그러는 사이 제주도 박사님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그 셋은 게스트하우스 같은 방 인연으로 다음날을 같이 보내게 됐다.
한치 물회
제주도 박사님이 설계한 제주도 여행
제주도 박사님이라는 여행자의 추천을 받았다. 박사님의 차를 타고, 우린 오설록에 내렸다. 박사님은 이미 계절별로 수차례 왔다며, 본인은 볼일을 보고 올 테니 관광을 하라고 했다. 광고에서 엽서에서 본 근사한 녹차 밭이 끝없이 펼쳐졌다. 산책을 하며 그 푸르름을 눈에 담았다. 사진도 찍었다. 그곳에서 재배했을 법한 차 한 잔도 평화롭게 마셨다. 다음 목적지는 모슬포항이었다. 그곳에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허름한 곳에서 물회를 먹었다. 가게 앞엔 막 바다에서 건져 올렸을 법한 이름 모를 작은 물고기들이 살기 위해 팔딱거리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제주도 박사님은 또 볼 일을 보러 갔다. 나머지 둘은 가파도 가는 배에 올랐다. 4월의 가파도는 환상적이었다. 제주도의 정겨운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청보리가 바람에 나풀나풀 춤을 췄다. 절정에 이르렀다는 청보리밭의 성숙한 모습과 마치 물감 푼 듯한 하늘의 고운 빛깔이 현실 세계 같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 걷다 보면 바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주도의 청정한 바다가. 그렇게 작은 섬 가파도는 제주도의 매력을 면면이 만날 수 있게 해 줬다.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가파도에서의 시간을 뒤로하고 막차를 타고, 육지로 나왔다. 그리고는 제주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흑돼지를 먹으러 갔다. 고기는 언제나 옳지만 제주도에서 알차게 보낸 하루 끝에서 맛보는 고기는 더 달았다. 촉박하지도 않게 딱 적당하게 비행기에 오를 시간이 되었다.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잠든지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비행기에서의 숙면이 이렇게 꿀잠이 될 수 있구나를 깨달으며,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나는 제주도를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여러 번 가 보았지만 이날만큼 또렷하게 기억나는 날은 없다. 갑자기 떠난 여행에서 제주도를 애정 하는 여행자를 만나서 그 애정을 전수받은 느낌이랄까. 그날 본 녹차밭과 청보리밭 그리고 제주의 바다, 그날 맛본 물회, 흑돼지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고 나는 기억한다. 혼자 여행을 예찬하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래도 최고는 여행지에서의 선물 같은 만남이 아닐까.
추신. 그날 내가 묵은 푸근한 인상의 숙소 사장님은 여행 온 여행자와 사장님, 손님으로 만나 연애 중이었다. 또 장사가 잘 돼서 2호점을 짓고 있다고 했다. 그때 나는 S 게스트 하우스를 예약하려다 불발된 나 같은 손님이 얼마나 많을까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장님을 보며 열심히 치열하게 가 꼭 인생의 답이 아니지 않을까를 생각했다
. 지금도 그곳은 성황 중일까, 사장님은 그때 그 여자 친구와 여전히 예쁜 사랑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