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부서진 울타리
<연재소설> 땡감이 영그는 시간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다. 돌풍 경보가 내린 날답게 창밖으로 들리는 바람 소리가 심상치 않다. 저녁 내내 바람이 볼레(햇빛 막이 덧창)를 무섭게 흔들더니, 이제는 부서지도록 후려치고 있다.
오늘도 윗집은 후끈한 열기로 가득한 밤을 보낼 예정인가 보다. 바람 소리보다 더 큰 웃음소리와 노랫소리가 건물을 가득 메운다.
뭘 저렇게 떨어뜨리는지, 천장이 쪼개질 듯한 굉음도 간간이 들리고 있다.
누구를 향한 욕인지 창밖으로 욕을 퍼붓고, 밖으로 우르르 몰려나가 건물 앞 공터에서 괴상한 포즈로 사진을 찍고, 비틀대며 몸싸움을 하고, 다시 우르르 계단을 올라가 음악 소리에 맞춰 춤추며 점프한다.
렁보 씨 부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혹시 주말여행을 떠나 집에 없으려나, 지난번에 집에서 얘기 나눌 때 전화번호를 받아둘걸, 생각하고 있을 때 천둥보다 더 큰 소리가 테라스 쪽에서 들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였다. 창밖으로 뭘 던져서 깨뜨린 건가? 굉장히 딱딱한 무언가가 쪼개지는 소리였다.
볼레를 올리고 확인해 보고 싶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평소에도 피하고 싶은 저 무리를 야밤에 혼자 상대할 자신도 없고, 통창을 열자마자 울타리를 넘어 누군가 쳐들어올 것만 같다.
필립에게 전화할까 망설이다 그냥 자리에 누웠다. 조금의 빛도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볼레와 커튼을 꼭 닫고, 거실문과 침실문도 닫고 나니 견딜 만했다. 계단을 시끄럽게 오르내리지만 않는다면 잠을 잘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뒤척이는 시간이 한 시간에서 두 시간으로 넘어가고 있다.
일요일. 해가 뜬 지 한참이 지난 후, 술에 영혼을 팔아버린 이십 대 대여섯 명이 느릿느릿 건물을 빠져나가 차로 향하는 게 보였다.
저 많은 인원이 소형 세단에 꾸역꾸역 타는 걸 보며, 저 나이에 나는 뭘 했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아르바이트하고, 장학금을 위해 치열하게 공부했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물론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술도 마셨지만 이렇게 미친 듯 매 주말을 불태울 여력은 없었다.
갑자기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는 한국의 이십 대가 가여워졌다. 프랑스:한국, 이렇게 일반화해서 나눌 수 있는 일이 아닌 걸 잘 알면서도 그냥 그랬다.
전날 뜬눈으로 밤을 새운 탓에 일요일은 내내 잠에 취해있었다. 침실 위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이 렁보 씨 부부는 집에 없나 보다. 나는 이제 혼자 싸울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떤 노력을 해도 나아지지 않아 무기력해졌다.
“엄마, 그림이 왜 점점 무서워져?”
에디가 귤을 먹으며 내 그림을 내려다보고 있다.
잔인하게 얻어터진 사람. 빵 터져버린 그의 머리를 여미려고 단 지퍼. 그 지퍼를 반대쪽에서 열어젖히고 있는 또 다른 사람. 열린 지퍼 사이로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노루.
뭘 그린 건지, 뭘 그리고 싶었는지 작가인 나도 모르겠는 괴기스러운 그림인데, 보는 사람도 그리는 사람도 감정 소모가 큰 작품인 건 분명하다.
월요일 아침 에디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모에카를 만났다. 집이 가깝고 애들 학교가 같으니 오며 가며 거의 매일 마주친다. 모에카도 층간 소음에 시달렸나? 그녀가 통 못 잔 얼굴로 나를 멍하니 바라본다.
“귀신같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내가 묻자, 모에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뭔 일 있구먼.”
“시간 있어? 나 커피 한 잔 주라.”
안 그래도 커피 한잔하자고 하려던 참이었다.
집에 들어와서도 모에카는 별말이 없었다. 뭔가 중요한 얘기를 할 것처럼 굴더니 내내 내가 늘어놓는 푸념만 듣고 있다. 그러다 문득, 지난밤 친구와 밤새 통화를 했다며 그 친구에 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스무 살에 애를 낳았는데, 애는 아빠가 일본에서 키우고 있고 그 친구는 프랑스에서 재혼했다고?”
“응.”
“신기하네. 학생 때 애를 낳았으면 남자도 어렸을 텐데, 남자 혼자 어떻게 애를 키웠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미안. 근데, 그 남자가 아파서 아이를 이제 엄마가 데려와야 한다는 거지?”
“응.”
“재혼한 남편은 아내가 일본에 두고 온 아이가 있는 걸 알아?”
“알지. 그런데 같이 사는 건 다른 문제니까 고민되나 봐.”
“애는 일본에서만 살았다며? 갑자기 프랑스로 와서 엄마랑 살게 되는 건 애한테 너무 큰 변화 아닌가? 게다가 엄마랑 무슨 정이 있겠니? 내내 따로 살았는데.”
“엄마랑은 매우 자주 연락했대.”
“그래? 그럼 괜찮을 것도 같네. 친구 고민은 뭐야? 현재 남편을 설득하는 거?”
“그것도 있고, 애한테 뭐가 좋을지가 고민이래. 넌 어떻게 생각해?”
“애가 어리면야 엄마랑 사는 게 좋겠지만 사춘기 이상 됐으면 그냥 일본에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프랑스에서 유학하는 게 꿈이라면 모를까, 아니면 와서도 힘들지. 강요된 변화에 무조건 적응해야 하는 거잖아.”
“그렇지….”
“근데,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 괜찮을 것도 같아. 불어도 배우고.”
“그럴까?”
“문제는... 경험도, 언어도, 본인이 원해야 체득하지 안 그러면 방황하다 시간만 낭비하게 될 수도 있잖아. 물론 방황하면서도 많은 걸 배우겠지만.”
모에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많이 친한 친구야? 프랑스에 사는 일본인 친구라면 나도 아는 사람인가?”
“아니, 남부에 사는 친구야.”
“그 친구 맘이 복잡하겠다.”
“그래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싶나 봐.”
“친구가 스무 살에 낳았으면 꽤 컸겠네. 그럼 아이의 의견이 제일 중요할 것 같아.”
“그럴까?”
“응. 언제든 엄마한테 오고 싶으면 올 수 있으니 잘 생각해 보고, 일본이든 프랑스든 결정하라고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모에카의 얼굴이 잔뜩 어두워졌다. 이렇게 안절부절못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 아이가 보통 애들보다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면?”
“아. 친구가 전적으로 결정해야 해서 고민인 거구나.”
모에카가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친구가 일본에 가서 아이랑 좀 지내보면 어떨까? 아이 상황을 직접 보고 경험해 보면 어떤 게 좋을지 구체적인 계획이 세워질 것 같아. 근데 그 친구 프랑스에도 아이가 있는 거지?”
“응. 그렇지.”
“그러면 이건 방법이 아니겠네. 아이를 두고 일본에 가기는 쉽지 않을 거 아냐.”
“몸을 반으로 자르고 싶대. 시간이 흐를수록 국제결혼을 쉽게 생각한 것도 후회되고. 나이가 들면서 일본에 있는 가족을 돌봐야 하는 상황도 점점 증가하는데 쉽게 갈 수가 없으니 답답하지.”
그 기분, 나도 잘 안다. 아빠가 아프실 때, 한국에 가서 엄마와 함께 간병하고 싶었지만, 에디가 있어서 갈 수 없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외로워하는 엄마가 걱정돼도, 쉽게 갈 수 없었다. 몸은 여기에 묶인 채 마음은 온통 한국에 있는 나날이었다.
“결혼 초에는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려 애쓰고 조심하지만, 살수록 문화 차이로 생기는 갈등도 더 생기고.”
“우린 모두 참 용감했지.”
얼굴도 모르는 사람 일인데 내 일처럼 느껴지며 고민되기 시작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무리 그 처지가 되어 보아도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 가정만으로는 헤아리기 힘든 상황이다.
“너 말이 맞는 것 같아.”
갑자기 모에카가 입을 열었다.
“내가 뭐랬지?”
“직접 가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보라고. 그렇게 조언해 줘야겠어.”
“왜 하필 가장 현실성 떨어지는 걸 골라? 여기에도 아이가 있다며?”
“어렵겠지. 그래도 감수해야지.”
모에카는 답을 찾은 듯 웃었지만 어쩐지 마음이 무거워 보였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에 늘 진심이고, 친구의 고민도 자기 일처럼 함께 고민해 주는 그녀의 넓은 마음이 부럽다.
넌 복 받을 거야, 내가 말하자 모에카는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며 동그란 눈을 깜빡거렸다. 네 덕분에 랭스에 정 붙이고 살게 된 사람이 나 말고 어디 한둘이니? 하고 얘기했을 때 그녀는 멋쩍은 듯 피식 웃었다.
그녀가 돌아가고 테라스로 나가보았다. 어제 광란의 축제 후 얼마나 많은 꽁초가 우리 테라스로 떨어졌는지 확인해야 했다.
군데군데 보이는 꽁초를 줍고 있는데,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나무 울타리에서 나고 있었다. 평소와 달리 울타리가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울타리 한중간에 금이 가서 반으로 쪼개질 듯 위태로웠다. 어젯밤 자정 무렵에 들렸던 굉음의 원인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지난밤, 돌풍이 불긴 했지만 나무 울타리가 쪼개질 정도는 아니었다. 돌풍이 이유였다면 우리 집 울타리만 부서졌을 리도 없다.
나는 고개를 들어 위층을 올려보았다. 아무 증거도 없지만, 그들이 한 짓이라고 확신한다.
며칠 전, 에디가 창밖으로 아마두 씨 아들과 그 친구들이 내 차 앞에서 담배를 태우며 바퀴를 발로 차는 걸 목격한 일이 떠올랐다. 에디는 화를 내면서도 무서운지 벌벌 떨고 있었다. 나 역시 참을 수 없이 화가 났지만 동시에 겁이 더럭 났었다. 생각 없이 혈기만 왕성한 이십 대 초반 애들이 술김에 화나서 집단으로 달려들면 우리로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동산에 편지를 써서 울타리가 부서졌으니 수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부동산에서는 강도나 도둑이 침입하려 했던 것 같으니 경찰에 먼저 신고하고 보험회사에 연락해서 처리하라고 회신했다. 괜히 한밤중에 굉음이 들렸다는 둥 자세히 설명해서 일이 복잡해졌다.
바람에 삐그덕 대는 울타리를 보고 있자니 울화통이 터졌다. 1층에 사는 것도 불안한데, 울타리까지 저 지경이 되었다. 있으나 마나 한 울타리라도 있는 게 훨씬 든든했다는 걸 이제 알게 되었다.
갑자기 기욤이 떠올랐다. 남편이라기보다는 하숙생에 가까운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이 일은 더 이상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프랑스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야겠는데 오드리에게 말하면 기욤이 알게 될 테니, 클로틸드나 파비엔느, 필립 중 한 명이 좋을 것 같았다. 에디를 데리러 학교에 갔을 때 가장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기로 하고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평소보다 10분 먼저 학교 앞에 도착했다. 나는 셋 중 한 명이라도 교문이 열리기 전에 와주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오 분쯤 지났을 때 필립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손을 흔들어 인사했지만 나를 못 본 건지 필립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 내가 필립에게 다가갔을 때 교문이 열렸고, 아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를 본 필립이 굳은 표정으로 ‘안녕’ 짧게 말하고는 나엘을 찾는 듯 시선을 교문에 고정해 버렸다. 생전 처음 보는 차가운 모습이었다. 나는 당황해서 무슨 일이 있냐고 묻지도 못한 채 그냥 어색하게 서서 에디가 나오길 기다렸다. 나엘과 에디가 같이 교문을 통과하여 우리에게 뛰어왔다. 필립이 나엘을 데리고 앞서가려다 나를 돌아보았다.
“사정이 생겨서 당분간 네가 일해도 모에카가 에디를 돌봐주기는 힘들 거야. 미안해.”
말을 마친 필립이 인사도 없이 쌩하니 앞서 가버렸다.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날아온 돌에 정통으로 맞은 기분이다. 내가 뭐 크게 잘못한 일이 있나, 갑자기 왜 저렇게 냉랭하게 구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떠오르는 게 없다. 어제까지는 세상에서 제일 믿음직한 아군이며 가족만큼 가까운 사람이었는데, 오늘은 그냥 감정 기복이 심한 이상한 프랑스 남자처럼 느껴졌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한국에 있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정이 지난 시간이었지만 언니 말고는 마땅히 하소연할 사람이 없었고, 당장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 얘기를 한참 듣던 언니는 너 뭐 잘못한 거 아냐? 하고 물었고, 나는, 얼마 전에 만났을 때만 해도 한밤중이라도 좋으니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었고, 연말에는 같이 파티도 했다고 대답했다.
“모에카도 그러라고 했어?”
“뭘?”
“한밤중이라도 좋으니 언제든 자기 남편한테 전화하라고 했냐고.”
“그건...”
모에카도 그런 말을 했었나? 기억나지 않는다.
“필립이 그 말할 때 모에카도 있었어?”
“아니.”
“병원에서 둘이 있을 때 한 얘기야?”
“아니, 휴무라서 집으로 갔었어.”
“모에카는?”
“집에 없었다니까.”
“친구도 없는 집엔 뭐 하러 갔었어?”
“그거야... 손을 다쳐서 필립한테 물어보려고 갔지.”
“그거네.”
“뭐가?”
내 물음에 언니는 친구 남편을 주치의로 삼고, 심전도 같은 검사를 받는 것도 뜨악할 일인데, 하필 그 친구가 이혼하고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제 남편한테 연락하고, 의지하는 건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기분 좋은 일이 아닐 거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과히 좋아 보이진 않다고 했다.
내가 필립을 그렇게 의지했었나, 돌이켜 보았는데, 그랬던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필립에게 상의했던 문제는 대부분 건강과 관련된 거였고, 오가던 대화 중에 윗집과의 분쟁을 하소연했던 적이 몇 번 있을 뿐인데 이것도 보기 안 좋은 행동인지 헷갈렸다. 어쨌든 내가 뭔가 잘못을 했으니 필립의 태도가 갑자기 변했을 것이기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
“네 문제로 부부가 다퉈서 그런 것 같으니까, 모에카한테 연락해서 수선 떨지 말고 좀 기다려. 서로 시간을 갖다 보면 자연스럽게 풀릴 테고, 모에카가 편해지면 너한테 연락할 거야.”
몹시 억울했지만, 언니 말을 따르기로 했다.
며칠이 지나자 상황이 완전히 확실해졌다. 거의 매일 연락하던 모에카가 연락을 뚝 끊은 걸 보니 언니 말이 맞는 것 같다. 필립과 모에카가 갑자기 돌변해 버린 건 내게 굉장한 충격이어서 어떻게 사는 게 옳은지, 오해를 풀려면 뭘 해야 하는지 전혀 판단할 수 없는 그로기 상태가 되어버렸다.
나는 왜 자꾸 주변 사람들과 문제가 생기는 걸까. 이제는 내 문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고, 삶에 자신이 없어졌다. 세상에 나 홀로 서 있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