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절정으로 치닫는 갈등

<연재소설> 땡감이 영그는 시간

by 헤모아

벽에는 특이한 그림이 걸려있었다.


검정, 빨강, 흰색으로만 그린 그림인데, 새까만 바탕 위에 구불구불한 하얀 세로줄이 촘촘히 그려져 있고, 그 세로줄 위에 빨간 사람 형상을 가로질러 그려놓은 그림이다. 사람은 까만 밤하늘을 나는 것도 같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 있는 것도 같다. 사람을 통째로 빨간색으로 색칠한 건 피로 칠갑했음을 의미하는 걸까? 색이 주는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그는 날고 있는 게 아니라 떨어지고 있는 중일 것이다. 나처럼.


창밖으로 보이는 노트르담 성당의 크고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 창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치과에 온 지 50분이 지났지만, 아직도 창밖만 내다보며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올 때마다 1시간씩 기다리곤 하니 놀라울 일이 아니지만 이럴 거면 예약을 왜 받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내 앞의 환자가 치료를 마치고 병원을 떠난 지 20분이나 지났다. 그렇다면 의사는 진찰 중인 환자도 없이, 뭘 하고 있는 걸까? 예약한 환자를 1시간씩 기다리게 할 만큼 중차대한 일일 거라 믿고 싶지만, 지난번에도, 지지난번에도 저랬으니 그냥 습관적으로 지각하는 사람일 거란 생각이 든다.


나는 내 치과 주치의가 마음에 안 든다. 사실 맘에 안 드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싫다. 그럼에도 치과를 바꾸지 못하는 건, 이 치과가 다른 치과와 달리 방사선 기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랭스의 치과는 엑스레이 기계가 없는 곳이 많아서, 진료를 받은 후 처방전을 가지고 방사선 클리닉을 따로 예약하고 거기서 엑스레이를 찍은 후 필름을 들고 다시 치과로 돌아와야 치료가 시작된다. 기계를 갖춘 병원이 많지도 않고, 찾는다고 해도 그곳에서 새 환자를 받지 않을 수도 있어서, 할 수 없이 이 의사를 그냥 참아내고 있다.


이 치과의 다른 의사로 담당의를 변경하려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이 병원은 환자 대기실이 하나라 의사들이 대기실을 공유하는데, 담당 의사가 매번 대기실까지 와서 환자를 손수 진료실로 인도하니 내 담당의를 계속 마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십 통의 전화를 돌려서라도 맘에 드는 치과를 새로 찾을 정성은 없고, 껄끄러움을 감수할 용기도 없으니 마음의 고통을 감수할 수밖에….


앞에 앉아있던 중년 여인이 나를 빤히 바라본다. 분명히 어디서 본 얼굴인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실례지만 예약 시간이 몇 시세요?”


“2시요.”


“프항 선생님이 담당 의사인가요?”


“네.”


“그러면 제가 당신 다음이겠군요. 이분은 정말 시간을 너무 안 지켜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정말 지치네요.”


닥터 프항이 혹시 인종차별주의자라 일부러 날 골탕 먹이는 게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 다행이다.


“네, 맞아요. 올 때마다 기분 나빠요. 진료할 때도 너무 쌀쌀맞고.”


“저는 지난번 치료 때 울었다니까요. 앞니가 흔들려서 왔는데, 잇몸이 끝장나버려서 당장 다 빼고 틀니를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잇몸이 녹아서 치아를 단단하게 잡지 못한다고 설명하면 될 걸 시체에 남은 잇몸이나 다름없다, 끝장났다, 이렇게 말하는데 얼마나 기분 나쁘던지. 너무 놀라서 조금 생각해 보고 싶다고 했더니, 이미 다 죽은 잇몸인데 생각한다고 나아지겠습니까, 이랬다니까요. 그게 사실이라도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지요?”


그녀의 말이 끝날 즈음 복도를 느릿느릿 걸어오는 구두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입을 다물고 누가 대기실로 들어오는지 문을 바라보았다. 거구의 닥터 프항이 문 앞에 서서 내 이름을 불렀다.


클로틸드 집에서 사슴 고기를 먹다가 부서진 어금니가 조금씩 더 부서져서 2주 전에 치과를 찾았었는데, 의사가 나와 상의도 없이 치아를 갈아버렸었다.


나는 치료 중반까지도 치료가 시작된 줄도 몰랐었다. 부러진 이를 치료한다는 건 떨어져 나간 치아의 상태를 환자에게 설명한 후 필링을 금으로 할지, 레진으로 할지 상의하는 것이 필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의사는 아무 설명 없이 맘대로 치료해 버린 후, 내가 어떻게 된 거냐 묻자 귀찮은 듯 부서진 부분이 크지 않아서 그냥 금이 간 치아 조각을 떼어내고 날카롭게 튀어나온 부분을 갈아버렸다고 했다.


떨어져 나간 부위를 어떤 재료로 채워 넣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상의도 없이 치아를 제거하고 모난 부분까지 갈아버렸다니 너무 충격적이었다. 치료한 어금니를 혀로 느껴보니 꽤 큰 부위가 훌러덩 날아간 상태였다.


설명도 안 하고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치아를 삭제해 버린 것도 화나지만, 치료 후 내가 겪고 있는 통증은 정말 참기 힘든 수준이었다. 물을 먹거나 음식을 씹을 때마다 떨어져 나간 치아 주변이 시리고 아파서 진통제를 먹지 않고서는 견디기 힘들었고, 그 상태가 거의 2주간 계속됐다.


나는 이 빌어먹을 통증의 원인을 찾아내고, 책임을 묻기 위해 다시 이 치과에 왔다.


닥터 프항은 치료 의자에 앉는 나에게 무슨 일로 왔냐고 물었다.


“치료한 어금니가 계속 아파서요.”


그는 누워있는 내 목에 파란색 의료용 냅킨을 두르고 그 위, 그러니까 내 가슴팍에 의료 도구들을 철퍼덕 내려놓았다. 옆에 의료 도구용 트레이가 있는데 왜 매번 내 가슴 위에 올려놓는지 알다가도 모르겠고, 불쾌하기 짝이 없다. 한국에서도 이러나, 혹시 내가 지독하게 예민한 건가, 아무리 되새겨 봐도 이건 좀 이해하기 힘들다.


그가 내 어금니를 보기 시작했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치료용 위생장갑을 낀 채 핸드폰을 집어 들고 버튼을 눌러 한동안 통화했다. 집 상태가 어쩌고, 가구가 저쩌고, 계약이 어쩌고, 변호사가 저쩌고……. 1시간을 기다렸던 나는 또다시 몇 분을 기다려야 했다.


전화를 끝낸 의사는 핸드폰뿐 아니라 컴퓨터 키보드까지 만진 위생장갑을 갈아 끼지도 않고 내 입속으로 손가락을 쑥 집어넣었다. 그가 끼는 위생장갑은 그를 위한 것일 뿐 환자를 위한 건 아닌가 보다.


“치료도 잘 됐고 염증도 없는데요.”


“그런데 왜 아프죠?”


“정말 아프세요? 불편한 정도가 아니고요?”


이 의사는 이제 도저히 참아 줄 수가 없다. 나는 거친 숨을 가다듬으며 대답했다.


“진통제를 매일 먹고 있습니다.”


“그 정도라고요?”


그가 매우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나는 오늘도 이 할아버지가 어서 빨리 은퇴해서 이 진찰실에 다른 의사가 오는 상상을 한다.


“네!”


“다시 입 벌려 보세요.”


그는 다시 손가락을 내 혀 아래로 쑤욱 넣어 턱뼈를 촉진했다.


“이를 악물고 있는 습관이 있지요?”


“... 네.”


“잘 때 이를 갈지는 않으세요?”


“... 조금.”


“당신은 여기가 아니라 요가 학원에 가야 합니다.”


“네?”


“스트레스가 심하죠? 늘 긴장 상태라 이를 악물고 있으니 취약해진 치아의 신경이 계속 자극돼서 아픈 거예요.”


일리는 있지만, 이를 악무는 습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왜 어금니 치료 후 견딜 수 없는 통증이 시작되었는지, 그 설명을 듣고 싶다.


“깨진 치아 부분에 신경이 노출되었으니 작은 자극도 민감하게 느끼는 겁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릴 뿐 큰일은 아닙니다.”


“이가 부러진 곳을 왜 메꾸지 않으셨나요? 저는 메꾸는 치료를 받고 싶었습니다.”


그는 한숨을 푹 쉬더니 설교하듯 대답했다.


“일단 부위가 크지 않았고, 이미 때운 치아 중 일부분이 깨진 건데, 남아있는 치아의 때운 재료랑 똑같은 재료가 아니면 메꾸는 치료는 할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상 그냥 갈아내는 게 맞는 치료였어요.”


애초에 그런 설명을 나에게 해주고 그래도 치료를 원하는지 상의해야지 어떻게 의사가 혼자 맘대로 결정해서 이를 갈아버리냐 말이다. 나는 그게 불쾌하고 이해할 수 없다. 설령 방법이 그것 하나뿐이라도 치아 주인에게 치료 방법을 알리고, 후에 어떤 불편함이 있을지 경고해야 했다는 게 내 상식이다.


조곤조곤 따지고 싶은 게 많지만 그런다고 들어줄 위인도 아니고, 그렇게 논리 정연하게 따질 만큼 언어가 완벽하지도 않아 그냥 포기해 버렸다. 이렇게 포기해야 하는 일이 하나하나 쌓일 때마다 나는 조금씩 무기력해진다. 한국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남의 나라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열 배는 더 억울하고 분통 터진다.


치과에 다녀왔지만 나아진 게 하나도 없다. 이를 득득 갈며 살 만큼 스트레스가 심하니 요가나 다니라는 코믹한 조언을 들은 것 외에 현실적인 해결책은 하나도 얻지 못했다. 아래 어금니 부위에서 시작된 통증은 귀를 지나 턱까지 내려와 오늘도 어김없이 진통제를 입에 털어 넣었다.


며칠 전, 치통으로 고생하고 있는 나를 본 프랑스 지인이 한 말이 떠오른다. 사슴처럼 예쁜 동물을 먹었기 때문에 벌을 받는 거야. 멧돼지같이 못생긴 동물도 많은 데 왜 굳이 예쁜 사슴을 먹었어?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비논리적으로 연결하는 것도 모자라 동물의 개체수도 아니고 외모로 식용과 비식용으로 나누다니. 생명의 가치에 등급을 매기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육식을 하는 내가 생명은 모두 동등하게 귀하다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어서,


“순수하게 생긴 토끼나 귀여운 촉새를 먹는 너는 어떤 벌을 받게 될지 궁금하다.”


하고 받아쳤고, 그녀는, 토끼는 원래부터 식용이었고, 촉새는 조류라서 괜찮다는 말도 안 되는 대답을 했다.


스트레스의 원인이야 한 가지가 아닐 테지만 현재 가장 큰 스트레스는 윗집과의 과열된 분쟁이다. 대화로 풀어보려 했지만, 나의 상식과 다른 상식을 가진 사람과 대화를 하면 할수록 문제만 커진다는 걸 확인하게 됐다.


몇 주 전, 렁보 씨 부부와 아마두 씨 부부가 대판 싸운 일이 있었는데, 그날 네 명의 고함이 복도를 쩌렁쩌렁 울렸었다. 그 소리를 듣고도 모른 척 집에만 있을 수 없어서 나도 위층으로 올라가 가담했었다. 아마두 부인은 경찰을 왜 불렀냐, 왜 무고한 사람을 괴롭히냐며 악다구니를 썼는데, 사실 그때까지 난 경찰이 왔었던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마두 씨 부부가 자기들은 무고하고 우리가 유별나게 예민하다고 우기는 이유는 렁보 부인이 경찰에 신고한 날, 신고한 지 한참 후에야 경찰이 도착하는 바람에, 아마두 씨 집이 조용해진 후였기 때문이다. 싸움에 참전한 이후 아마두 씨의 장성한 아들은 나와 에디를 죽일 듯 노려보며 위협적인 태도를 보였고, 그들과 마주치는 게 껄끄러워진 나는 에디의 등하교 시간이 되면 외시경으로 복도와 건물 입구를 확인한 후 그들이 없을 때 후다닥 건물을 빠져나가곤 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담배꽁초 공격도 다시 시작됐다.


크리스마스 때, 에디만큼은 풍성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하고 싶어서 가족들이 다 모이는 시댁에 보내고 나 혼자 생 말로(Saint Malo)로 여행 갔다 돌아온 날이었다. 1박 2일간 여행 후, 집에 도착해 보니 테라스에 담배꽁초가 사방으로 널려 있었다. 안 그래도 기분이 울적했는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꽁초 무덤이 된 테라스를 보니 화를 넘어 절망감이 밀려왔다.


집이 더 이상 집이 아니다. 여기는 그냥 전쟁터다. 어떻게 해야 이 전쟁에서 우리는 안 다치고 적군만 몰아낼 수 있을까, 하루 종일 그 고민만 하고 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층간 소음에 대응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유튜브 채널을 보내주었지만 그렇게 자극해서 나아질 일이 아니다. 내가 자극할수록 저쪽도 자극적으로 나올 테고 긴장의 수위만 높아질 것이다. 나는 빌미를 만들지 않으면서 원샷 원킬로 끝낼 방법이 필요하다.


늘 생각에 잠겨있다 보니 건망증도 심해지고 생전 안 하던 실수도 자주 하게 되었다.


오늘은 농어를 손질하다 등지느러미에 손이 깊이 찔렸다. 살짝 찔린 줄 알았는데 피가 꽤 많이 났고, 통증도 심했다. 소독한 후 약을 발랐지만 욱신대는 통증이 점점 심해졌다.


핸드폰으로 검색해 보니 새우를 손질하다 꼬리에 찔린 사람이 패혈증으로 사망한 사례 등 별일이 다 있었다. 생선 지느러미는 특히 세균이 많아 치료를 잘해야 한다는 내용을 읽었을 때, 모에카 집으로 뛰어갔다. 목요일은 필립이 쉬는 날이라 집에 있기 때문이다.


겁먹은 표정으로 모에카 집으로 달려갔을 때, 모에카는 없고 필립만 있었다. 이미 전화로 상황 설명을 한 상태였기에 필립에게 바로 다친 부위를 보여주었다.


“많이 부었네.”


필립이 단단해진 내 검지 끝을 요리조리 살폈다.


“나 죽어?”


하고 묻자 그가 미간을 살짝 오므리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렸다.


“응. 그러겠지.”


나는 너무 놀라 말문이 막혀버렸고, 벙찐 날 본 필립이 어깨를 씰룩대며 첨언했다.


“이거 때문에 죽는 건 아니고.”


“뭐?”


“누구나 죽잖아.”


“뭐야. 진짜! 놀랐잖아!”


필립이 내 손의 상처를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인터넷 기사 보니까 새우에 찔려 패혈증으로 죽은 사람이 있더라.”


“바로 소독하고 약 발랐다며?”


“응. 근데 왜 계속 더 아프고 열도 나고 욱신거려?”


“아플 수밖에. 두꺼운 지느러미에 찔려서 피가 날 정도였으니까. 세균감염 때문이 아니라 물리적인 충격 때문에 생기는 통증이야.”


“언제까지 이렇게 아파?”


“상처 보니 오늘 밤까지는 아플 것 같네. 내일 되면 붓기도 가라앉고 훨씬 괜찮아질 거야.”


“다행이다. 의사 말 듣고 나니까 갑자기 덜 아픈 것 같아.”


필립이 빙긋 웃었다.


“지척에 주치의가 살아서 너무 좋다. 고마워.”


“참, 윗집은 요새 어때?”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아.”


“부동산에 다시 이메일 써봐.”


“후폭풍이 무서워서 이젠 뭣도 못하겠어.”


“큰일이네.”


“에디가 요새 날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뭐라고 불러?”


“마담 자메 꽁떵뜨(Mme. Jamais-Contente: 늘 불행 씨).”


내 말을 듣자마자 필립이 박장대소했다.


“티 안 내려했는데 다 보이나 봐. 내가 늘 찌푸리고 있대.”


“에디는 소음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아?”


“다행히 한 번 자면 잘 깨지 않는 애야.”


“천만다행이네.”


“근데 예전에는 나도 에디처럼 소음에 둔감했었어.”


“그럼 지금은 왜 민감해진 거야?”


“증오 때문인 것 같아.”


필립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가는 눈빛이다.


“우리 침실 위가 렁보 씨 집이거든. 거기서도 생활 소음이 꽤 크게 들리는 편이야. 근데 그 집에서 들리는 소음은 아무리 크게 들려도 대수롭지 않게 느껴져. 그럴 수도 있지, 사람이 사는데 어떻게 소리가 안 들려, 하고 이해하게 되는데, 아마두 씨 집 쪽에서 나는 소음에는 그냥 화부터 치솟아. 왜 이렇게 화가 날까, 요새 내 마음이 왜 이 정도로 괴롭나 생각해 봤어. 소음 때문에도 힘들지만, 그 사람들이 미워서 힘든 게 더 큰 것 같아.”


필립이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렁보 부인이 경찰을 부른 일로 두 집이 크게 싸운 날, 나도 올라가서 렁보 씨 부부 편을 들었었는데, 그날 이후로 갈등이 더 심해졌어. 사실 그 싸움이 있기 전에는 좀 살만했었어. 아마두 씨 가족이 조금씩 노력하고 있었거든. 하루는 그 집 아들이 스무 살 생일파티를 할 예정이라고, 많이 시끄러울 텐데 자정까지만 봐달라고 직접 내려와서 양해를 구하더라? 그날 밤 나이트클럽을 차린 듯 아주 광란이었지. 예상대로 약속을 어기고 새벽 2시까지 파티를 했고. 그래도 미리 양해를 구한 것과 예전처럼 새벽 5시까지 시끄럽게 굴지 않은 것, 창밖으로 담배꽁초를 버리지 않은 것 등 나름 노력하는 것 같아 미움이 한결 줄어들고, 마음도 덜 힘들더라. 내가 바라는 건 단지 이 정도야. 같이 사는 공간임을 인정하고, 서로 배려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상대방이 불편할 것 같으면 안 하려고 노력하는 거. 존중하고 애쓴다는 느낌만 받아도 이해의 폭이 넓어지거든.”


“너는 나아진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렁보 씨는 왜 경찰을 불렀지?”


“우리 집에서는 심하게 들리는 소음이 렁보 씨 쪽에서는 안 들리기도 하고, 그 반대인 경우도 많아.”


“넌 왜 싸움에 동참한 거야?”


“그래야 할 것 같았어. 이건 공동의 문제인데 그날 하루 덜 불편했다고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잖아.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나도 모르겠어.”


“이사를 해야 하나?”


“이사 간다고 해결될까? 외딴섬에 살 게 아니면 어디나 이웃은 있을 테고, 제2의 아마두가 있겠지.”


필립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동의했다.


“나 늦게 자는 거 알지? 힘들 때 전화해. 내가 가서 상황 보고 경찰을 부르든 직접 올라가서 얘기하든 도와줄게.”


“진짜야?”


“그럼, 진짜지. 꼭 연락해. 새벽 세 시, 네 시라도 괜찮아.”


천군만마를 얻은 듯 기뻤다.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해도 내가 새벽에 필립에게 전화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든든했다.


“참, 내일모레 약속 있어?”


“12월 31일?”


“응. 에디랑 같이 저녁 먹으러 와. 새해를 함께 맞이하자.”


“정말?”


광란의 파티를 하는 집 아래서 에디와 단둘이 보낼 연말연시가 걱정이었는데 다행이었다. 앞으로 12월이 되면 늘 이럴 것이다. 에디와 함께 보낼 수 있는 크리스마스는 없을 테고, 12월 31일에도 누군가 우리를 초대해 주기를 기다리거나 내가 친구 가족들을 초대해서 에디가 외롭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내년에는 우리 집에서 새해를 맞자.”


매해 해야 하는 고민이라면 루틴을 만들어 버리면 된다. 늘 한 해의 마지막을 함께 보내는 일행을 만드는 거로.


“1년 뒤 초대를 벌써 하는 거야?”


황당해하는 필립을 보며 나는 고개를 신나게 끄덕였다. 모에카도 나도 친정이 구만리 밖에 있으니 지금처럼 서로 의지하고 산다면 덜 외로울 것이다.



*


친구 집에서 놀다 온 에디는 말 한마디 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크리스마스 이후 에디는 묵언 수행하는 사람처럼 집에선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일 년 내내 기다린 크리스마스였는데 자기만 엄마가 없었고, 그래서 이번 크리스마스는 ‘썩은 크리스마스’였다며 마음이 상해있다.


나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려면 다른 가족들은 볼 수 없고, 그만큼 선물도 덜 받을 텐데 그래도 되냐고 물었더니 왜 선택할 수 없는 걸 놓고 선택하라고 강요하냐며 화를 냈다. 뚱해 있는 에디와 화해하기 위해 치사한 속임수를 쓰기로 했다. 나는 다친 손가락을 붕대를 두껍게 감아 탁구공만 한 크기로 만들었다. 저녁을 먹으러 식탁에 앉은 에디가 내 손가락을 보고 놀라 걱정스레 물었다.


“손이 왜 그래? 다쳤어?”


나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왜?”


“농어 손질하다가 다쳤어.”


구운 농어의 살을 집으려던 에디의 젓가락이 멈췄다.


“이거 이제 안 먹어!”


에디가 신경질적으로 농어의 눈을 푹푹 쑤신다.


음식을 그렇게 하면 못써.”


“이거 때문에 다친 거잖아. 얜 혼나야 해.”


“농어 때문이 아니잖아.”


내 말에 에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나 때문이라는 거야?”


“이게 왜 너 때문이야?”


“내가 좋아해서 한 거잖아.”


“아니지! 생선 탓도 아니고, 네 탓은 더더욱 아니고 엄마가 부주의해서 다친 거지!”


에디의 경직됐던 얼굴이 조금 풀렸다.


“그래도 이제 이거 안 먹어. 다시는 하지 마.”


“왜? 난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 때 제일 기뻐. 내 행복을 뺏지 말아 줘.”


“......”


“엄마가 앞으로 조심하면 되지.”


나는 농어의 가시를 발라 에디의 접시에 올려 주었다.


“많이 아파?”


에디의 눈길이 내 손에 멈춰있다.


“아니.”


나는 둥둥 감은 붕대를 풀어서 살짝 부었을 뿐인 손가락을 보여주었다. 내 손을 요리조리 살피던 에디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너랑 화해하고 싶어서 쇼했어.”


나를 보던 에디가 빙그레 웃는다. 그러다 짐짓 심각한 얼굴로,


“엄마, 욕심부리는 기도를 해도 될까?”


하고 물었다.


“무슨 말이야?”


“집도 없고, 학교도 못 다니고, 밥도 못 먹는 애들이 많은데, 나는 어려움 없이 잘 살고 있잖아. 그런데 더 바라고, 더 달라고 욕심쟁이처럼 기도해도 되나?”


“뭘 더 갖고 싶은데?”


내 질문에 에디가 입을 꾹 다물었다.


“나도 사실 그게 엄청 궁금해. 이미 너무 큰 선물을, 그것도 아주 많이 받았는데 더 바라는 건 욕심이 아닐까, 고민하곤 해. 근데, 그냥 기도하기로 했어. 남에게 해가 되는 욕심이 아니면 나쁜 건 아니니까. 기도해서 허락되면 더 열심히 감사하면 되잖아.”


에디의 표정이 밝아졌다.


“엄마는 뭘 달라고 기도하고 있어?”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쉽게 포기해 버린 것들.”


“그게 뭔데?”


“엄마가 하고 싶어 했던 일들. 너는?”


“나도 소중한 거였는데 소중하게 생각 안 하다 잃어버린 게 있거든? 그거 다시 돌려 달라고 할 거야.”


그게 뭔지 묻고 싶지 않았다. 뭘 말하는지 너무 뻔하니까.


“그런데, 엄마가 바라는 거랑 내가 바라는 게 서로 정반대의 거라면 어떻게 되는 거지? 둘 다 안 들어주실까, 아님 더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 걸 들어주실까?”


“네가 생각할 때는 정반대라고 생각해도, 하느님이 보시기엔 반대가 아닐 수도 있지. 그럼 둘 다 가능한 방향으로 들어주실 거야.”


내 대답에 에디의 표정이 금세 환해졌다.


“맞아. 엄마 말이 다 맞아. 그러니까 우린 둘 다 행복해질 거야.”


“지금은 안 행복해?”


“행복하지! 근데 더 행복해지면 좋잖아.”


에디가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농어의 가시를 골라내기 시작했다.


할 수만 있다면 에디가 바라는 걸 주고 싶다. 내가 주고 싶은 것 말고, 에디가 원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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