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방황의 열매

<연재소설> 땡감이 영그는 시간

by 헤모아

“남자 손님 한 명이라고?”


“응. 원래는 세 명이 오기로 했는데 사정이 생겨서 혼자 오게 됐나 봐.”


모에카의 시선이 교문으로 향했다. 교문이 열리고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지만 나엘과 에디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샴페인 투어 후에 시티 투어도 반나절 있어.”


“시티 투어라니?”


시티 투어는 해 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싶다.


“혼자 오는 데 3인 비용을 냈단 말이야. 물론 깎아주긴 했지만.”


“나 참...”


“노트르담 성당이랑 바실리카 성당, 센터에 있는 천사상 가고 뭐 그럼 되잖아.”


“난감하다.”


“그냥 한국에서 온 친구 한 명 데리고 도시를 돌아본다고 생각해. 거창하게 설명할 것도 없고.”


“돈 받고 하는 일인데 어떻게 그렇게 해? 공부해서 제대로 해야지.”


“그날 방과 후에 에디는 내가 데려올게. 일 끝나면 우리 집으로 와.”


모에카는 나엘과 집으로 가고, 나는 에디와 마켓으로 향했다. 채소와 과일을 조금 사고 저녁으로 먹을 뿔레 호띠(오븐에 구운 통닭)를 사 왔다.


“닭이랑 뭐 먹을래? 밥? 아니면 감자?”


에디는 냉동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감자 그라탱”하고 대답했다. 이미 다 구워진 통닭과 데우기만 하면 되는 냉동 감자 그라탱이라...


“엄마, 왜 그렇게 웃어? 오늘 뭐 좋은 일 있었어?”


“아들이 고른 식단이 너무 맘에 들어서.”


저녁 식사 후 시티 투어 때 어디를 갈지, 뭘 설명을 할지 검색하다가 오전 10시에 기차역에서 만나 5시에 끝나는 투어 일정인데 점심 식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되었다. 이렇게 긴 일정은 잘 안 하기도 하고, 남자 손님 한 명뿐인 것도 난감했다. 12월, 차가운 겨울바람이 부는 야외에서 샌드위치를 먹기도 그렇고, 식당에 혼자 들어가 먹으라 하기도 그렇고, 식당에서 같이 식사하는 건 더 별로였다. 나는 모에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점심 식사는 제공되는 거로 했어?”


“맞다, 그 얘기한다는 걸 깜빡했네. 프랑스 가정식을 물으시기에 레스토랑 예약해 뒀어.”


“그럼 그 식당에 모셔다 드리기만 하면 돼?”


“그건 상황에 맞게 알아서 해.”


“식당이 어디야?”


모에카가 예약한 레스토랑은 나도 잘 아는 곳이었다.


모에카와 일하는 건 간혹 껄끄러울 때가 있는데, 그건 그녀의 성격과 내 성격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일할 때 생기는 변수를 극도로 싫어하는 반면, 모에카는 변수에 굉장히 너그러운 편이다. 오랫동안 서비스업에 종사했던 그녀는 고객에 따라 상황은 늘 변하고, 원하는 바도 다르므로 때마다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를 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론적으로야 나도 동의하지만, 성격상 외부에서 발생하는 변수에 갑자기 적응해야 하는 상황이 몹시 괴로운 나로서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나는 소수의 아주 친한 사람과만 소통하고 싶은 사람인데, 다양한 사람을 만나 그들이 원하는 걸 들어줘야 하는 가이드라는 직업을 하고 있으니, 매번 넘기 힘든 태산을 간신히 넘어가는 느낌이다. (이래서 심장이 고장 났을 수도 있다.)


게다가 이번 투어는 특히 더 부담스럽다.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한 이유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는데, 아직 이혼이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남자와 단둘이 시내를 돌아다니고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다가 기욤의 친구나 가족들 눈에 띌까 봐 신경 쓰인다.


물론 일로 만나는 거지만, 뒤로 쑤군대는 사람들에게 일 때문에 만난 사람이었다,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재결합의 가능성을 열어 둔 건 기욤이 아니라 나인 것 같다는 생각에 허무한 웃음이 픽 흘러나왔다.


그나저나 이번에 혼자 3인 비용을 내면서까지 굳이 랭스 투어를 하려는 사람은 누구일까? 혹시 일전에 모에카가 말했던 남자일까?


어떤 남자 손님이 사이트에 올린 투어 사진 속의 나를 보고 나에 대해 자세히 물었었다는 말이 떠올랐다. 만약 이번에 오는 손님이 그 남자라면 설마 날 만나려고 그 큰 비용을 낸 걸까? 말도 안 되는 착각이라 생각하면서도 갑자기 알 수 없는 부담감이 느껴졌다.


컴퓨터를 켜고 웹사이트로 들어가 투어 사진을 꼼꼼히 둘러보았다. 내가 나온 사진은 단 세 컷. 그중 정면 샷은 단 한 장, 네 명의 여행객을 향해 샴페인 잔을 들고 나사 풀린 여자처럼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눈길을 끌 만한 것이 전혀 없는 사진이고 실물보다 훨씬 못 나온 것 같은데…. 이 사진을 보고 내가 궁금해졌을 리는 없다.


이렇게 확신하면서도 마음이 이상하게 긴장되었다. 긴장이 아니라 설렘인가? 왜 맘이 살랑거리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가이드 나가기 전날, 내가 묘하게 긴장하는 걸 모에카도 느꼈나 보다.


“내일 날씨가 봄날 같을 거라네. 눈이 내려야 할 겨울에 말이지.”


“그러게.”


“겨울에도 꽃이 피긴 해. 그렇지?”


“뭐라는 거야?”


“뭐 입고 나갈 거냐고.”


“뭘 입긴?”


“지난번에 입었던 빨간색 블라우스 어때? 그거 입었을 때 얼굴이 확 살던데.”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모에카를 바라보자 그녀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예쁘게 하고 가. 소문나서 기욤 귀에 들어가게.”


내가 살짝 눈을 찌그리자 모에카는 코를 찡긋거렸다.


모에카의 말처럼 날씨가 전례 없이 포근하다는 예보를 확인하고 옷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소개팅 가는 것도 아니고, 클럽에 가는 것도 아닌데 뭐 하는 건가 좀 웃기긴 했지만, 그래도 전신 거울 앞에 서서 옷을 이리 대보고 저리 대보는 건 멈추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전날 밤에 숙고해서 골라놓은 옷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이제 더는 어울릴 리 없는 오래전 옷들이 밝은 아침 햇살 아래 주책을 떨고 있었다. 나는 웃을 고이 접어 다시 옷장 안에 넣고 검은색 터틀넥을 입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파리에서 출발한 기차가 멈추자 여행 가방을 든 사람들이 쏟아져 내렸다.


마음이 콩닥거리기 시작한다. <김성우>라는 이름의 푯말을 들고 역사 앞을 서성였다. 아무리 둘러봐도 한국 남자로 보이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기차가 다음 행선지를 향해 출발할 때까지 나는 김성우 씨를 만나지 못했다. 안 오는 건가,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모에카에게 받은 연락처로 전화하려는 데 누군가 뒤에서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안녕하세요?”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는 남자는 키가 작고 체격이 왜소한 70대 후반의 할아버지였다.


“오늘 제 투어를 도와주실 분이신가요?”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남자의 정체에 너무 당황해서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놀라서 입을 딱 벌리고 서 있는 나를 본 할아버지가 귀신같이 내 마음을 읽고는,


“실망하셨나 봐요?”


라고 했고, 나는 “아니요, 아니요.”를 연발하며 두 손을 허공에 휘적거렸다. 당황했던 마음을 가다듬고 첫 번째 장소로 향하면서 나의 주책을 멈춰 준 아침 햇살에 감사했다.


“오시느라 많이 힘드셨죠? 낯선 길이라 긴장되셨을 텐데.”


“파리에서 안내해 주던 분이 기차 앞까지 바래다주었어요.”


파리에 비하면 작은 도시라 실망하실 수도 있다고 말했을 때 노인은 각자 가진 매력이 다 다르니 그럴 리는 없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모처럼 해가 쨍하고 맑은 날씨다. 차에 타자마자 노인은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난 땀을 닦았다.


“가이드님 만나니까 이제 좀 안심되네요. 기차에서는 꽤 진땀 났거든요.”


랭스에서 가장 유명한 곳인 노트르담 성당 근처에 차를 세우고 성당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내내 어르신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 뭐가 있나, 나도 하늘을 올려다보다 어르신과 눈이 마주쳤다.


“뭐가 있나요?”


“하늘 색깔이 조금 낯설어요. 구름 모양도.”


새파란 하늘에 하얗고 두꺼운 구름이 군데군데 보였다.


“한국 하늘이랑 다른가요?”


“한국 가면 확인해 보려고요. 그동안 하늘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네요.”


2년 전, 한국에 갔을 때를 떠올려 보았지만, 하늘에 대해 딱히 기억나는 건 없다.


“하늘이 하늘이지, 별생각 없이 살았는데, 나와보니 왠지 다른 느낌이 들어요. 한국에 가면 왜 프랑스 하늘색이 달라 보였는지, 정말 다른지 알 수 있겠죠.”


높은 건물 틈으로 보이는 조각하늘만 보다 거침없이 펼쳐진 하늘을 보니 낯선 걸 수도 있다. 그가 다시 발걸음을 멈추고 성당 정면을 바라보았다.


“원래 여행을 자주 다니셨어요?”


“한국에서도 거의 안 다녔고, 해외여행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해외여행이 처음이란 말에 나는 크게 놀랐다. 일흔이 훌쩍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처음 하는 해외여행을 자유여행으로 오시다니.


“준비하기 어려우셨을 텐데 대단하세요.”


내 놀란 얼굴을 보며 어르신이 허리춤에 찬 작은 가방에서 메모를 꺼내 보여주었다. 화장실이 어디냐, ooo비행기는 어디서 타야 하냐, 한국 대사관으로 안내해 달라 등 비상시에 필요한 메모가 가득 적힌 플래시 카드였다. 이렇게 절박하게 와야 했던 이유가 뭘까 궁금해졌다. 같이 오려했던 일행은 누구였고, 그들은 왜 오지 않았을까도.


“샴페인을 좋아하시나 봐요?”


“와인도 거의 마셔본 적 없는걸요. 샴페인은 뭔지도 몰랐어요.”


“그럼 왜 랭스에...”


질문을 시작하긴 했는데 어찌 들으면 따져 묻는 것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아 말끝을 얼버무려버렸다. 그는 그냥 빙그레 웃고는 다시 성당으로 눈을 돌렸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과는 또 다르네요. 전 이 성당이 더 웅장하고 좋습니다.”


그가 카메라를 들어 성당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그의 직업이 뭐였을까 궁금해진다.


“자녀분들이 혼자 여행하시는 걸 반대하진 않으셨어요?”


노인은 대답 없이 성당 입구의 ‘미소 짓는 천사상(L'Ange au Sourire)’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얼핏 그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게 보였다. 이걸 어쩌나 싶어 속으로 허둥대다가, 잠시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준비해 온 자료를 보는 척 종이를 뒤적거리며 옆쪽으로 물러섰다. 잠시 후 그가 말을 시작했다.


“사진으로 본 것보다 미소가 더... 오묘하네요.”


“그렇죠? 저 미소 때문에 천사가 장난꾸러기 아이로 보여요.”


그는 한참 동안 말없이 천사상을 바라보다 천천히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을 둘러볼 때도 그냥 훑어보지 않고 한 곳 한 곳 정성 들여 관찰했다. 그러다 제단 앞 의자에 앉아 꽤 오랜 시간 십자고상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가는 기차 시간까지 몇 군데 못 돌아볼 것이다. 파리에 있는 노트르담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성당 내부를 정성껏 돌아보고, 겨울이라 꽃도 하나 없는 정원도 꼼꼼히 둘러보고 나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벌써 점심시간이 되었어요. 식사 후에는 샴페인 하우스 투어고, 거기 들렀다가 한 곳 정도 더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괜찮으시겠어요?”


노인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가요?”


“생각보다 시간이 짧아서 많은 곳을 못 보여드릴 것 같아서요.”


“괜찮습니다. 이미 볼 건 다 봤어요.”


“네, 사실 노트르담 성당이랑 샴페인 하우스 가시면 랭스는 거의 다 보신 거나 다름없긴 해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로 향했다. 점심 식사를 예약한 식당은 성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저는 주문을 도와드리고 1시간 반 후에 다시 올게요.”


“같이 식사하시겠어요?”


“네?”


“제가 사드릴게요. 혼자 먹기 적적하기도 하고, 음식에 관해 설명도 듣고 싶고.”


노인에게 내 점심 비용까지 청구하고 싶지는 않다. 그는 내가 하는 일에 비해 이미 과한 비용을 냈다.


“저도 여기 음식 좋아해요. 별로 하는 일도 없이 비용을 받는 것 같아 마음 쓰였는데, 잘 되었어요. 제 식사비는 제가 낼게요. 들어가시죠.”


그는 주문할 때도, 음식을 먹으면서도 하나도 허투루 놓치지 않으려는 듯 관찰하고 질문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왜 달팽이를 먹기 시작했냐, 가정에서 직접 잡아서 요리해 먹기도 하냐부터 음식 재료 하나하나 원래의 모양과 맛까지 묻는데,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은지, 우리 에디보다 더했다. 질문에 대답할 때마다 내가 프랑스에 산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걸 느끼며 조금 민망해졌다.


“사실 저도 늘 쓰는 재료만 써서 아직 모르는 재료가 많아요.”


마트에 갈 때마다 노란색 호박과 하얀색 가지 앞에서 머뭇대다 결국 초록색 호박과 보라색 가지를 집곤 한다. 그렇게 늘 내 일상과 습관을 깨지 못하고 편안함에 안주해 버린다. 채소 하나 새롭게 선택하지 못하고 항상 먹는 재료를 골라 익숙한 양념으로 음식을 하니 이곳에 흡수되지 못하는 걸 수도 있다.


“익숙한 게 좋죠. 특히 한국의 맛이 그리운 분들은 더욱.”


내가 빙긋 웃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 채소들은 한국산이랑 비슷한가요?”


“생김도 다르고 맛도 좀 다르죠.”


“같은 재료인데 한국산이랑 차이 나서 놀랐던 것들이 있나요?”


“당근은 향이 훨씬 강하고, 양배추는 수분이 적고 좀 매워요.”


어르신이 접시 위의 당근을 찾아 내게 보인 후 맛을 음미했다.


“익히지 않았을 때요.”


나는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어르신이 입가에 미소를 띠고 말을 이었다.


“가끔 새로운 것들도 과감히 선택해 보세요. 못해본 게 후회되는 시간이 꼭 오더라고요.”


못해본 걸 후회하는 시간은 이미 왔다. 그래서 집까지 뛰쳐나왔는데 하던 일만 계속하며 새로운 경험을 미루고 있다. 그림을 다시 시작하면서 발음만큼이나 뜻도 경쾌한 ‘참신’과 ‘신선’이란 단어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렸다. 젊은 나도 새로움 앞에서 머뭇거리게 되는데, 이분은 어떻게 이런 도전을 감행하게 된 걸까. 그 계기를 듣는다면 멈춰버린 내 엔진을 고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처음 하는 해외여행이면 대개 최대한 많은 곳을 둘러보길 원하시는데 어르신은 아니신가 봐요?”


“이 나이쯤 되면 여러 곳을 돌아다닐 체력도 안 되거니와 머리에 담을 수 있는 양도 현저히 줄어들거든요.”


맞는 말이지만 대뜸 맞장구를 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그냥 조용히 미소만 지었다.


그의 질문이 멈추면 묘하게 불편한 침묵이 시작되었다. 프랑스 음식을 신기해하긴 했지만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음식은 할아버지의 허기진 배를 채우기엔 조금 무리일 수도 있다.


“음식이 입에 맞으세요?”


“그럭저럭 먹을 만하네요.”


그는 포크를 내려놓고 와인을 마셨다. 맛을 음미하려 애쓰고 있지만, 먹을 만하다는 대답과 달리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게 분명했다.


“같이 오려했던 분들은 왜 못 오셨어요?”


“같이 오려던 사람들이요?”


“네, 원래 세 분이 오시기로 했었다고 들었습니다.”


“아, 네. 사실 원래도 저 혼자 올 계획이었습니다.”


“네? 그럼 왜 세 분이 오신다고 하셨어요?”


“최소 세 명은 돼야 가이드 투어가 가능하다고 나와 있어서요.”


“아... 저는 그것도 모르고...”


물론 1인 비용만 받고 하라 했다면 애초에 거절했을 테지만 막상 이렇게 혼자 모든 비용을 지불했다고 생각하니 괜히 미안해졌다. 사실 노인의 행색이 그리 넉넉해 보이지 않은 것과 해외여행은 처음이라는 말도 마음에 걸렸다.


“괜찮습니다. 저는 지금 매우 즐겁습니다. 처음으로 돈을 제 뜻대로 재밌게 쓰는 기분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혼자 3인 비용을 내는 건 좀 너무한 것 같다. 시간상 기껏해야 노트르담 성당과 샴페인 하우스만 가게 될 것 같은데.


“가끔 부득이 혼자 오시는 분이 있으면 단독 가이드를 하기도 해요. 단체로 오시는 분들이 내는 개인 비용보다야 비싸긴 하지만요. 최소 인원을 3인으로 공지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혼자 오시는 분에게 그 금액을 다 받지는 않아요.”


나는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지어냈다.


“아, 그렇습니까?”


“네, 다시 정산해서 차액은 입금해 드릴게요.”


펄쩍 뛸 모에카를 어떻게 설득할지 생각도 안 하고 선심을 써 버렸다.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지요.”


어르신이 빙그레 웃었다. 주름진 얼굴이 한없이 온화해 보인다.


갑자기 돌아가신 아빠가 떠올랐다. 지금 내 앞에 계신 어르신이 우리 아빠였다면 지금 어떤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셨을까. 이분처럼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볼 수 있으셨을까?


그림을 그리고 싶다며 야반도주하듯 프랑스로 떠나버린 딸이 어느 날 갑자기 프랑스 남자와 결혼한다고 소동을 부리고, 결혼하자마자 그렇게 원하던 그림까지 내팽개치고 아이를 낳았다. 그랬으면 잘 살아야지, 이번에는 잃어버린 인생을 되찾겠다며 집을 뛰쳐나왔다. 이번에도 이유는 그림이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게 정말 그림이었을까? 이제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 어르신은 다른 고객들과 모든 면에서 달랐다.


가성비를 생각하며 지불한 돈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은 걸 얻어내려 애쓰지 않고, 왜 프랑스에 사냐, 결혼은 했냐, 몇 살이냐 등 사적인 질문도 일절 하지 않았다. 그가 보통 고객들과 다른 이유는 그네들과 다른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 같다. 식사하기 전에 성호를 긋고 성의껏 식전 기도를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신부님이시죠?”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디저트를 먹던 그의 손이 잠시 멈추며, 눈썹이 위로 움직였다. 그러더니 노트르담 성당 천사상의 미소를 닮은 곡선을 입가에 담았다.


“은퇴했으니 평신도에 가깝다고 할 수 있어요.”


“한 번 신부님은 영원한 신부님이죠.”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진 것 같았다. 신부님인 걸 들킨 것이 못내 속상한 사람처럼.


문득 샴페인이 뭔지도 몰랐고, 와인도 거의 마셔 본 적 없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미사 집전 때마다 와인을 드셨을 텐데... 나는 괜히 알은척을 했구나, 후회하면서 조용히 디저트를 먹었다.


식당을 나와 차를 타고 샴페인 하우스로 이동하는 동안 신부님은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건물을 유심히 관찰했다. 나는 운전을 하면서도 이제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하나, 처음에 부르던 대로 어르신이라고 하나 아니면 신부님이라고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신부님을 모시고 간 곳은 거대한 채석장을 와이너리로 개조한 곳으로 내부가 굉장히 큰 샴페인 까브(cave)였다. 끝없이 이어진 지하 곳곳에 샴페인이 빼곡히 저장되어 있고, 저장고를 지나면 설치 미술품이 전시된 공간이 나왔다. 여러 개의 설치 예술품 중 신부님의 눈길을 오래 사로잡은 작품은 갖가지 빛깔의 소쿠리를 줄로 연결하여 천장에 매달아 둔 한국 예술가의 작품이었다.


“소쿠리를 여기에서 보다니 놀랍네요.”


“저도 처음 봤을 때 이 작품을 어디서 찾았나 놀랐었어요.”


“샴페인 하우스에서 왜 이 작품을 선택했을까요?”


“글쎄요. 소쿠리를 공처럼 만들어서 연결한 게 샴페인 기포를 닮았기 때문 아닐까요?”


“샴페인과 소쿠리.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생각해 보니 분위기가 닮기도 했네요.”


“분위기요?”


“둘 다 밝고 경쾌한 느낌이잖아요.”


“정말 그렇네요.”


“그런데 이상하죠? 경쾌한 분위기의 술이지만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거든요. ”


“맞아요. 불멍 같은 효과가 있어요. 잔 속에서 보글보글 피어오르는 미세한 기포를 보고 있으면 상념이 사라지곤 해요.”


신부님이 추운 듯 몸을 웅크렸다. 까브 내부는 온도가 꽤 낮아 나이 드신 신부님이 오래 머무는 건 무리였다.


“다 돌아본 것 같은데 이제 나가실까요?”


우리는 추운 지하 세계를 빠져나와 샴페인 하우스에서 제공하는 세 종류의 샴페인을 시음했다. 샴페인을 홀짝이며 에디가 종종 던지는 난해한 질문에 대해 여쭤볼까 하다 그만두었다. 그 대신 내 어린 시절에 관한 얘기가 툭 나와버렸다.


“저는 열 살 때 첫 영성체를 받았어요. 엄마가 강요해서 시작했고, 정말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한 거였는데, 무척 열심히 했어요. 밤늦게까지 기도문을 외우고, 교리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땀나게 뛰어가고. 하루는 지각한 줄 알고 숨이 턱에 닿게 뛰어갔는데, 시계를 잘못 보고 한 시간이나 일찍 간 거 있죠? 그 어린 나이에 왜 싫은 일에 그렇게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했을까요?”


내 얘기를 듣던 신부님이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아직도 궁금하다. 그 시절 내가 보인 진지함은 태어나길 성실한 성품으로 태어났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하기 싫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몹시 원했던 걸까, 그것도 아니면 신의 선택이었을까.


“하루는 너무 급히 뛰어가다 넘어져서 무릎을 심하게 다쳤어요. 피가 줄줄 흐르는 채로 성당에 들어갔는데 절 보신 수녀님이 놀라서 바로 사무실로 데려가셨어요. 약을 발라 주며 하시는 말씀이, 이렇게 다쳤는데 울지 않는 걸 보니 참을성이 많은 아이 같다고, 수녀가 돼보지 않겠냐고 물으셨어요.”


신부님의 미소가 조금 더 선명해졌다.


“뭐라고 대답하셨나요?”


“대답 없이 그냥 웃고 말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분명하게 거절했지요.”


“왜요?”


“참을성이 엄청 필요한 일이구나 알아챘거든요.”


신부님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


“첫 영성체 교리야 몇 달만 참으면 되니 견딜 수 있지만, 성직자가 되는 건 일생을 참아야 하는 거잖아요.



쓸쓸한 미소를 띤 신부님이 샴페인 잔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다.


“제가 수녀가 안 된 건 제 선택이었을까요, 아니면 주님의 거절이었을까요?”


늘 궁금했다. 성직자가 되는 건 본인의 선택일지 하느님의 선택일지. 내 궁금증을 눈치챈 듯 신부님이 본인의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절 위해 기도하셨어요. 좋은 성직자가 될 수 있도록 말이죠.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학교까지 복사단을 했어요. 중학교 3학년 땐 이미 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제가 신부가 될 거로 생각했죠. 저도 당연히 그게 제 운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중 3 때 갑자기 그러기 싫어졌어요.”


“사춘기가 왔군요?”


“그랬던 것 같아요. 성당에 예쁜 여자애가 새로 왔는데, 어느 날 그 애가 저한테 와서 말을 걸었어요. 너 신부님 될 거라며? 하고.”


“아!”


“먼저 다가와서 말 걸길래 설레고 기뻤는데, 첫마디가 그거라니….”


“뭐라고 대답하셨어요?”


“아닌데? 누가 그래? 해 버렸지요.”


이번에는 내가 크게 웃어 버렸다.


“그랬더니 그 애가 활짝 웃으며, 그럼 우리 친하게 지내도 되는 거야? 묻더군요.”


“좋으셨겠네요.”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지요. 그날부터 복사단 활동이 지겹고 힘들어졌어요. 그래서 정말 성의 없이 대충 해버렸어요. 열심히 하는 모습을 그 여학생에게 보이기 싫기도 했고, 계속 잘해버리면 정말 신부가 되어버릴 것 같았거든요.”


뒷얘기가 궁금해서 신부님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지만, 신부님은 좀처럼 말을 잇지 않으셨다. 한참 샴페인 잔만 바라보던 신부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


“태풍이 심한 날이었어요. 그 애랑 같이 수녀님을 도와 성당 창고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바람에 유리창이 심하게 덜컹거렸어요. 세상 가득 유리창 흔들리는 소리만 남은 것 같았죠. 그 친구가 먼지가 날려서 청소하기 힘들다며 유리창을 닫아 달라 하더군요. 제가 유리창을 닫고 창가에서 멀어지자마자 강풍에 흔들리던 유리창이 깨지면서 뾰족한 파편이 비질하던 그 애 등에 날아가 꽂혔어요. 박힌 유리 파편 사이로 피가 솟구치며 그 애가 쓰러졌고, 결국 급히 큰 병원으로 옮겨졌어요. 깨진 유리 조각이 깊이 박혀서 폐까지 뚫었다더라고요. 폐에 고인 피를 빼내며 그 애는 몇 날 며칠 사경을 헤맸대요. 사고 후, 저는 바로 하느님 앞으로 달려갔어요. 그리고 엎드려 맹세했어요.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다시는 배신하지 않겠다고 기도했어요. 그 애만 살려 주신다면 다시는 다른 맘을 품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또 약속했어요.”


중학생 아이가 겪었을 충격과 공포가 고스란히 느껴지며 가슴이 아려왔다. 지금이야 담담히 말하고 있지만, 그 당시 소년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절망스럽고 슬펐을까.


“그래서 신부님이 되신 건가요?”


“글쎄요. 제가 하느님을 사랑해서 선택한 길일까, 아니면 두려움에 그냥 나의 맹세를 지킨 걸까. 저도 궁금했어요.”


답을 찾았냐고 물으려는 데 신부님이 시계를 보며 기차를 타러 가야 하지 않냐고 물었다. 시간을 보니 역으로 이동해야 할 시간이었다.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랭스의 랜드마크를 몇 군데 더 돌았다. 드라이브로라도 최대한 많이 보여드리고 싶었다.


“작은 도시긴 해도 느긋하게 보려면 1박 2일은 걸려요. 이렇게 몇 군데 못 보고 가셔서 아쉬워요.”


“무슨 말씀을요. 오늘 하루 모든 것이 다 흡족했습니다. 도시도, 음식도, 가이드 선생님도 다.”


“다행입니다.”


나는 아까 하려다 만 질문을 다시 꺼냈다.


“원하는 바를 얻으셨나요?”


나의 질문에 신부님은 잠시 창밖을 보며 생각을 정리하는 듯 보였다.


“아까는 망쳤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다 얻은 것 같네요.”


아까 무슨 일이 있었기에 망쳤다고 생각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사실 이번 여행은 최대한 제가 하지 않을 것 같은 행동만 하고, 나답지 않은 일만 골라 해 보고 싶었습니다. 다른 삶을 살았으면 어땠을까, 제 삶으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보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내가 고개를 가만히 끄덕이자 신부님이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이 나이까지 방황하는 제가 우습지요?”


“아니에요. 삶을 그만큼 진지하게 생각하신다는 의미인걸요.”


“나답지 않은 행동만 해보려 했는데, 그게 쉽지 않더군요. 결국 나다운 행동만 했는지, 가이드님도 절 너무 쉽게 알아보셨어요. 반나절도 안 되어 들켜서 당황했었습니다.”


“죄송해요. 제가 괜히... ”


얼굴이 벌게진 날 보며 신부님이 밝은 미소를 지었다.


“미안하긴요. 그냥 보이는 대로 걸 말씀하신 건데.”


“이번 여행에 그런 의미가 있는 줄도 모르고...”


“덕분에 도망가봤자 별 소용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서도 저는 같은 길을 택할 거라는 걸 인정하게 됐고요. 그러니 후회나 미련은 무의미한 거죠.”


“어떻게 그런 결론을 얻으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같은 사고를 겪는다고 모두 저처럼 행동하지는 않을 겁니다. 성직자가 되겠다는 맹세는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렇죠.”


“개구쟁이처럼 웃고 있어도 천사는 천사고, 색이나 구름 모양이 조금 달라도 하늘은 하늘이고.”


알 듯 말 듯 아리송했다.


“저는 그 선택을 너무 쉽게 했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세뇌되고 강요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억울해하곤 했지요. 그런데 초등학교 3학년 때 가이드님은 당차게 거절했고, 저는 저항 없이 받아들였죠. 그리고 사제의 길을 그만둘 무수한 기회를 다 거부했고요. 제게는 사제로 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게지요. 그 시절, 그 친구가 다치는 사고가 아니라 다른 어려움이 제 앞에 도달했어도 저는 똑같이 기도했을 겁니다.”


“사제가 된 건 숙명이었다는 말씀이세요?”


“그건 아닙니다.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죠. 그랬다면 사제의 길을 포기한 것이 옳았을까 방황하며 이 여행을 했을 테고요. 하지만 결론은 지금과 비슷했을 겁니다.”


다른 삶을 살았는데 어떻게 결론이 지금과 비슷할 수 있는지 의아했다.


“평생 나에 대한 의문이 컸습니다. 내 길에 대한 확고한 신념 없이 그냥 끌려오듯 산 느낌이었죠. 여든을 목전에 두니 두렵더군요. 다르게 살았다면 이런 고뇌와 억울함은 없었을까,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더 나답게 살지 않았을까…. 알아봐야 했습니다. 그런데 매 순간 저는 저였다는 걸, 끌려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렇게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건 그게 나라는 거니까요. 이걸 좀 빨리 인정했더라면 마음이 덜 고되지 않았을까 싶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얼마나 행운입니까?”


나는 언제쯤 나를 제대로 알고 인정하게 될까. 그때가 되면 신부님처럼 행운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아니면 후회만 하고 있을까. 내 마음을 꿰뚫은 신부님이 미소를 띠며 내게 위로를 건넸다.


“늦은 발걸음은 제때 옮기는 발걸음보다 분명히 힘들어요. 그런데 보람은 더 크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네요.”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절망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용기가 나요.”


“도착하기 전까지는 빠른지 느린지 아무도 몰라요. 방향만 잘 잡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속도는 문제 되지 않습니다. 사실, 느린 속도로 간다고 해도 아무 상관없습니다. 원하는 곳으로 가는데, 속도가 뭐가 중요하겠어요.”


탑승 구역을 찾아 기차 승강장을 걷는 그의 뒷모습 너머로 석양이 붉게 물들고 있다. 신부님은 자신의 뒷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시려나. 지는 것이 아름다운 건 해뿐일 거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런데 왜 랭스를 선택하셨어요?”


신부님이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포도주의 반대가 뭘까 생각해 봤는데 샴페인이 떠오르더군요. 평생 장중한 의식을 위한 포도주를 마셨으니 즐거운 축제용 술을 음미해 보고 싶었습니다.”


“어떠셨어요?”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어서 비교하긴 어렵지만, 저에겐 와인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그가 미소 지었다. 기차가 곧 도착한다는 안내 멘트와 함께 기적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까 샴페인 하우스에서 산 샴페인을 신부님께 내밀었다. 신부님이 놀란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이걸 저에게요?”


“선물이에요. 오늘의 향이 그리울 때 드세요.”


신부님은 환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신부님이 기차에 올라 자리에 앉자마자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이곳을 떠나는 날이 오면 나도 신부님처럼 삶에 대한 의문도, 선택에 대한 후회도 없이 홀가분할 수 있을까.


그가 여기에 과거의 방황을 내려놓고 가는 것처럼 나도 그가 탄 기차에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는 마음을 실려 보낸다. 결과를 알게 된 지금에야 지나치게 충동적이었다 자책하고 있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치열하게 고민했음을 잘 아니까.


서서히 멀어지는 기차를 보니 눈물샘이 뜨거워졌다. 도통 알 수 없는 눈물이다.


멀어지는 기차에 열정 가득한 나의 과거와 빙그레 웃고 있는 나의 노년이 함께 타고 있다. 그 둘이 마주 보며 함께 웃을 수 있도록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잘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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