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철학

by 화정

'세상에 당연한 일은 없다.'


팬데믹은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삶에서 당연한 일은 없다는 것. 여름휴가도, 친구와의 약속도, 매일 당연하게 할 수 있던 일이 어느 순간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러니 현재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미루지 말아야겠다는 약간의 조바심도 들었다. 노트에 수북이 적어둔 버킷리스트를 시도하지 않으면 그대로 기록으로만 끝나버리겠지.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채워지던 평일과 주말이 텅 비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채우기 위해 두 가지가 필요했다. 하나는 글 쓰기, 또 하나는 철학이었다. 삶의 방향을 고민하던 때 이 두 가지에 몰두하고 싶었고, 그즈음 철학 과정에 등록했다. 6개월 간 토요일을 온종일 쏟아야 하는 수업이라 평소라면 엄두도 못 냈을 테지만 코로나였기에 무사히 졸업까지 가능했는지 모른다. 약간의 무료함과 고립생활은 공부를 하기에 최상의 조건이었다.


철학이라고 하면 빽빽한 이론이 먼저 떠오른다. 시대별로 대표 철학자의 이름과 배경 사상을 분석하고 암기하는 방식을 예상했지만 이번 과정은 달랐다. 텍스트도 없었다. 강의는 생각, 추상, 창조, 4차 혁명과 같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수업 중간에는 언제든 질문을 할 수 있었고 일방적 강의보다 토론이 권장되는 분위기였다. 수업은 가볍게 참여했지만 매주 강의를 들은 후에는 에세이를 써서 제출하고, 졸업 전에는 모두 발표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마지막에 우리가 써서 발표할 주제는 동일했다. '나는 누구인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나는 누구인가. 제목만 써 놓고 자판을 두드리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일들을 써 본다. 언제 무엇을 하면 즐겁고 행복하는지 기억나는 장면을 짚어보다가 점점 추상적으로 바라본다. 기억나는 장면에서 행동으로, 행동에서 가치로, 가치의 우선순위까지 나아가며 평소라면 살펴보지 않았을 부분까지 생각의 범위가 넓어진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너무 포괄적이어서 다양한 접근과 해석이 가능하다. 생각을 확장시키고, 탐구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내 삶에 철학을 입혀본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어떤 선택을 했고, 왜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수개월간 스스로에게 묻고 답을 해 보았다. 매번 내용도 조금씩 달랐지만 그 과정에서 조금씩 선명해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가장 내면적인 글쓰기가 필요하다면 이 두 가지에 대해 써 보기를 추천한다. 내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이고, 어떤 삶을 지향하는지 글로 정리하면 생각도 더 명료해진다. 바라는 일, 하고 싶은 일, 욕망하는 일을 꺼내는 것도 연습이 필요했다. 그렇게 자기 선언을 위해 쓴 글을 발표하며 졸업을 맞이했다.


철학수업이 알려준 것은 무엇일까. 니체 소크라테스 장자 공자,,, 유명 철학가의 가르침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을 해석한 결과물, 그것이 나올 수 있었던 과정을 경험해보는 것이었다.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는 힘이었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에는 분명 글쓰기가 큰 도움이 되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나다운 삶에는 정답이 없다. 그래서 누가 알려줄 수도 없다. 일상이 바쁠수록 불안했던 이유는 스스로 돌아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란 걸 알았다. 시간을 채우기 전에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 나에게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설정하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철학 수업을 통해 질문하고 글을 쓰면서 조금씩 균형을 찾아가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철학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후폼네마타’라는 짧은 글을 썼다고 한다. 우리가 쓰는 일기 형식으로 그날의 행동과 감정을 기록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실제로 철학이란 이렇게 간단한 글쓰기를 통해 실천하는 방법도 있다. 매일 쓰는 일기를 통해서 오늘을 들여다보고, 내일을 설계할 수 있다.

철학적인 삶은 매 순간 깨어있는 삶이 아닌가 한다. 바쁜 일상이지만 글 쓰고 사색할 수 있는 여유를 나에게 준다면 길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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