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지탱하는 근육들

일, 직업 : 티치아노 <시시포스>

by 화정


1055px-Punishment_sisyph.jpg 티치아노 베첼리오, 시시포스





그리스로마 신화는 어릴 때부터 우리나라 전래동화만큼이나 자주 접했다. 신들의 왕 제우스와 질투의 여신 헤라, 미의 여왕 아프로디테, 바다의 왕 포세이돈 등 다양한 등장인물과 스토리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중에서 유명한 에피소드 하나가 '시시포스의 형벌'이다.


시시포스가 어떤 이유로 형벌을 받았는지는 몰라도, 그 형벌이 무심무시하다는 점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무거운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리는 일. 다만 그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 내렸기에, 영원히 같을 일을 반복해야 했다.


처음 시시포스 신화를 들었을 때의 충격이 있다. 평생 그토록 무익하고 지루한 일을 해야 한다니. '재미'가 삶의 중요한 요소인 나에게 더욱 소름 돋는 이야기이다. 동일한 일의 반복에서 오는 지루함, 돌을 밀어 올리는 일이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무익함, 내가 그 일을 결정할 수 없다는 무력감, 그리고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낸다는 허무함까지... 그 모든 감정이 합해져 그 형벌이 무시무시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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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티치아노가 그린 <시시포스>는 무거운 돌을 들고 걸음을 떼고 있다.

전면에 선 시시포스의 모습은 눈길을 확 끌어당긴다. 사위는 어두운 데 뚜렷하게 보이는 그의 몸은 강건하다. 팔과 다리의 근육은 거뜬히 바위를 들어 올리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세상에 무익한 일은 없는 것일까. 매일 반복되는 일을 통해서 조금씩 자신의 어느 부분은 단련되고 있어 보인다. 일상의 근육을 단련시켜 가는 시시포스는 그런 점에서 아름다워 보였다. 신화를 들으면서 상상해 본 적은 없지만, 그림 속 신화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우리가 하는 일상 가운데에는 분명 시시포스의 돌처럼 별 의미 없고, 단순 반복되는 것들이 존재한다. 옆에서 보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들, 단순한 서류 작업과 숫자 정리, 청소와 정리정돈 같은 집안일이 그렇다. 언뜻 보면 의미나 재미를 찾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내버려 둘 수도 없는 일들도 섞여 있다. 그런 점에서 일을 통해 각자 크고 작은 돌을 옮기면서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다만 우리의 일이 형벌이 아닌 이유는 어느 정도의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 돌을 옮기는 것보다 재미와 의미가 있는 활동으로 채워나갈 수 있다는 데 있다. 매일 아침이 새롭고 경이롭지는 않다. 조금은 지루하고 반복되는 루틴을 수행하면서 조금씩 색다른 것을 만들어나간다. 주말 하루, 밀린 집안일을 끝내고 이렇게 에세이 하나를 쓰는 것처럼 변주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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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다 보면 매번 보람차지만은 않다. 큰 기계의 부속품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내가 만드는 서류가 세상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다. 그럼에도 내가 시간을 쏟아 열심히 하는 만큼 내 몸에 근육으로 자리 잡는다. 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습관, 그런 자세가 반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일의 근육이다. 성실함도 연습이고 습관이다. 사람들을 보면 그렇다. 하나를 성실하게 하는 사람은 다른 분야에서도 성실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돌이 크든, 작든, 그 꾸준하게 해 나가는 성실한 태도. 그러한 근육이 그림에서 돋보였다.


자기 삶에서 '일'이 가지는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다. 지금까지 다양한 직장에서 근무하며 나와 맞는 업무가 아닌 것 같아서, 혹은 내 역량에 벅찬 것 같아서 다음 스텝을 고민한 적도 많았다. 매일 마음이 편할 수만은 없는 것이 직장생활이지만 어떤 곳에서든 지향점은 같았다. '이곳에서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일까?' 나에게도, 회사에게도,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일과 직장이란 인생의 '태도'를 단련하는 곳이다. 몰입, 신뢰, 이타와 같이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들을 실천하는 곳, 매일 반복하다보면 몸의 근육처럼 일상에 단단하게 자리잡을 것이다.





그림 보며 글쓰기
: 내가 중시하는 일의 의미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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