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방법: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책 읽는 소녀>
1.
소녀는 쿠션에 기대어 앉았다. 한쪽 손은 팔걸이에 올리고 한 손에 자그마한 책을 들었다. 다소 어두운 배경과 노란 드레스, 무표정의 옆모습, 편하게 앉은 그녀의 옆모습은 평온해 보인다. 내게도 책을 읽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평화로운 일과이다. 자세는 자유롭다. 비스듬히 눕거나, 책상에 앉거나, 추운 날에는 이불 아래 엎드리기도 한다. 독서를 할 때에는 몸도 마음도 편하게 흐트러지게 내버려 둔다.
돌이켜보면, 책과 친해진 계기는 중학생 즈음이었다. 친구의 추천으로 우연히 집어든 소설에 빠져서 방에서 혼자 소설을 읽으며 주말을 보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심심하거나 고민이 생기면 책을 집어드는 게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독서를 통해 바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지식을 채우고 성장하고 싶은 욕구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 문장을 읽는 동안 마음이 따뜻해지는 위로를 느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머릿속에 폭풍이 몰아치던 질풍노도의 사춘기 소녀에게 책장을 넘기는 동안만큼은 희한하게 마음이 스르르 풀리곤 했다.
아직 알고 싶은 것도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은 십 대. 책과 대화하는 기회를 가졌던 것에 감사한다. 간접 경험이지만 책으로 세계 여행도 하고, 역사 속 삶의 현장에 가 보기도 하고, 전혀 다른 환경의 삶을 체험해보기도 했다. 작가가 살아온 역사, 인생의 귀한 경험과 깨달음을 글을 통해 접하면서 '나'라는 좁은 틀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2.
성인이 되면서 책과 조금씩 거리가 멀어졌다. 대학교까지는 전공서적을 비롯해 과제를 위해 읽어햐 하는 도서목록이 꽤 있었다. 그리고 졸업 후에는 책에 그야말로 선택사항이다. 공부나 연구를 하는 직업이 아니라면 독서는 운동이나 외국어와 같은 '자기 계발' 영역에 속한다. 당장 업무에 필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나중을 대비해서 해 두면 좋은 일이다. 일을 하다 보면 '급한 일' 처리가 우선이고, 주말은 짧고, 체력이 떨어져 책을 읽는 횟수는 띄엄띄엄 줄어들고 있었다.
올해부터 하루 5분, 10분이라도 독서를 하자고 마음먹었다. 책은 주말에 도서관에서 빌려서 머리맡에 쌓아둔다. 한 장을 읽기 시작하면 곧잘 보는데, 그 첫 장을 펼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이런 결심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유튜브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오래 하다 보니 뇌가 비어져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집중력도 떨어지고 멍-해지는 것 같아 의도적으로 줄여야지 싶었다. SNS의 쇼츠영상에 익숙해지면서 '팝콘 브레인'이라는 말처럼 즉각적이고 자극적인 것에만 반응하게 된다.
휴대폰 대신 책을 드는 루틴으로 바꾸기로 했다. 독서 어플도 깔아서 매월 읽은 책 리스트를 정리하고, 완독 한 책은 간단한 리뷰를 블로그에 올린다. 밑줄 친 문장은 꼬박꼬박 필사도 한다. 운동하는 것처럼 두뇌도 지속적인 트레이닝으로 단련해 주어야 녹슬지 않는다. 책을 읽고, 필사를 하고, 리뷰를 쓰는 과정은 헬스와 같이 두뇌에 자극을 주는 훈련이다.
우리에게 가치 있는 것들은 어딘가 불편하고 노력을 해야 얻어진다. 음식을 가려 먹고, 몸도 아프지 않게 돌보고, 보는 것과 말하는 것도 신경을 써야 할 필요를 느낀다. 소녀가 편한 쿠션에 기대어 책을 보는 것처럼 방에서 편한 자세로 5분이라도 책을 읽는 습관을 연습하고 있다.
3.
책을 덮고 나면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른다. 그 당시의 내 고민과 맞물려 새로운 힌트를 얻기도 하고, 그냥 덮어놓고 지나가도록 길을 알려주기도 한다. 예전에는 일단 첫 장을 읽으면 마지막까지 끝내야 다음 책을 펼쳤는데 이제는 중간에 흥미가 떨어지면 그냥 내려놓기도 하다. 어떤 책은 열 페이지마다 포스트잇이 붙기도 하고, 어떤 책은 겨우 한 페이지에 밑줄을 긋기도 한다. 공감하는 부분이 많거나 적거나 책은 하나의 이정표이다. 지금 내가 서점의 수많은 책 가운데 그것을 골랐고, 그 문장에 밑줄을 친 것에 의미가 있다.
독서는 내 글을 쓰기 위한 워밍업이다.
책을 덮은 후 떠오르는 잔상은 한 줄이라도 정리해두려고 한다. 발췌가 아니라 내가 쓴 문장으로. 그 문장을 모으면 내 삶의 철학이고 가치관이 정리된다. 살다 보면 우리는 종종 자신에 대해 궁금해진다. 그럴 때는 차곡차곡 모아 둔 글을 펼쳐본다. MBTI나 사주관상이 알려줄 수 없는 이야기이다. 생각이 행동이 만들고, 행동이 결과를 만든다. 언젠가 우리는 스스로가 기록한 문장과 같이 길을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독서 후의 기록은 일기가 되기도 하고, 브런치에 쓴 에세이가 되기도 한다. 기록을 할 때 중요한 것은 길이가 아니다. 짧더라도 내 생각을 직접 정리해 보는 데 있다. 책이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도구가 되려면 읽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과거에는 위로를 얻는 수단이었다면 이제는 내 글을 쓰면서 조금씩 삶을 변화시키는 도구로 삼으려 한다.
하루는 더디게 지나지만 일주일, 한 달은 쏜살같이 흐른다. 바쁘다고 흘려 넘기지 않고 '현재'를 자각하며 살기 위해서는 나만의 장치가 필요했는데, 산만하고 두서없는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 중 하나가 글로 쓰는 것이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영양가 있는 재료가 필요하다. 그래서 또 책이다. 책이 글쓰기로 이어지고, 글쓰기는 현재를 관찰하고 생각을 명확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대신 이제는 무조건 다독하기보단 한 권을 읽더라도 영감을 주는 내용을 잘 기록해두려 한다. 조금이나마 내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꾸준히 책을 들 것이다.
그림 보며 글쓰기
: 내가 주로 보는 책에 대해
: 독서를 하며 기대하는 것들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