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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Sep 06. 2024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쉬고, 세박자 마저쉬고

  무더웠던 여름이 슬슬 다음 타자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나의 작은 텃밭도 본인의 소임을 다 한 채 장렬히 모습을 거두었다. 올여름, 그 어느 해보다 뜨거웠던 햇빛과 비를 견디며 묵묵히 자신이 낼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모아 나에게 소소한 기쁨을 안겨준 고마운 텃밭.

처음에는 아이들을 위해 시작한 텃밭인데 이것들은 처음에 모종 심을 때만 반짝 관심을 가질 뿐,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아, 토마토가 열렸을 때 똑똑 따먹을 때만 빼고.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이 평소에 잘 먹지 않는 채소 위주로 심다 보니 열매가 열렸을 때 신기하고 기쁜 나의 마음과 달리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열매들을 볼 때마다 ‘하아!’하는 탄식을 자아낸다. 많이 열리면 열릴수록 식탁이 더욱 초록초록으로 가득 찰 테니까.    

 

“엄마, 가지는 이제 그만 심으면 안 돼? 고추는 먹지도 않는데 왜 심는 거야? 호박은 이제 잘라버리자.”

택도 없는 소리.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풍성함을 자랑하는 3종 세트를 뽑아버릴 순 없지. 특히나 애호박은 텃밭 가꾸기를 시작한 2년 동안 가장 많은 수확물을 생산해 내서 농사 잘 짓는다는 소리까지 듣게 해 주었는 걸.           


  농사라는 게 참 신기한 게 욕심을 내면 반드시 망하게 된다. 작년에 막내가 좋아하는 방울토마토를 실컷 먹게 해 주겠다는 생각 하나로 토마토 모종 10개를 넘게 심었더니 토마토 숲이 되어 정작 내 새끼 입에 들어간 것보다 먹을 것을 찾아 방황하는 자연의 생명에게 넘겨준 게 더 많았다. 작년에 옥수수 하나만큼은 잘 키워내 정말 맛 좋은 옥수수를 원 없이 먹었던 터라 올해도 옥수수를 심고 내 마음의 크기만큼 물을 주었더니 과습으로 옥수수는 밑이 누렇게 변해버려 금방 베어낼 수밖에 없었다.     

초보 농사꾼인 나에게 어려웠던 건, 수박과 참외 농사였다. 가지치기, 순지르기, 순치기, 손자줄기, 아들 줄기, 어미 줄기 등등 들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 외계어가 가득한 터라 작년에 이어 올 해도 그냥 막 심었다. 어미 줄기 6마디에서 순지르기를 하라는데 대체 참외 줄기에 엄마가 있고 아들이 있고 손자가 있고, 뭔 놈의 가족이 그렇게 복잡한지. 에라 모르겠다 참외꽃이나 보면 만족하자 싶은 마음으로 심었더니 세상에.

굵다란 열매를 몇 개나 맺던지, 올해 참외가 먹고 싶으면 마트가 아닌 나의 보물, 텃밭으로 달려가면 되었다.      

올해 수박은 애플수박으로. 내 주먹보다 큰 참외들. 빨간 토마토가 사랑스럽다. 고추는 약 안하면 병이 쉽게 온다는데 ,우리집 고추는 씩씩한가보다.


열린 참외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잡초 제거를 하고 있는데 앞집 사장님이 그 모습을 보더니 말씀하시길, 

“농사 어렵죠? 농사는 욕심을 내면 절대 안 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겨우 두 평 남짓한 땅에서 몇 가지 모종만 심고 가꾼 초보 농사꾼인 나도 찰떡 같이 알아 들었다.     

나의 엉망진창인 텃밭을 보며 주위 분들이 한 마디씩 하시길, 

“우리 집은 올해 방울토마토가 비실한데 여기는 참 잘 여물었고만.”

“여그는 참외도 참으로 실하게 열렸네 잉.”


아무래도 농사를 업으로 하시는 분들은 작물이 곧 재산이기에 좀 더 많이, 실한 농산물을 얻어야만 할 터. 그러나 나는 열리면 맛있게 먹고 아니면 말고 하는 마음으로 농사를 짓다 보니 작년보다 조금만 더 잘되어도 만족. 욕심 없고 큰 부담 없는 나의 마음을 농작물들도 아는 건지 반쯤 내놓은 자식 마냥 기른 과실들이 오히려 나에게 더 큰 즐거움을 주었다.     



욕심을 버려야 하는 게 어디 농사뿐이랴. 얼마 전 우연히 보게 된 ‘이혼숙려캠프’라는 프로가 있다.  이혼을 고민하는 세 쌍의 부부 중 유독 눈에 들어온 부부가 있는데 바로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남편과 함께 사는 아내의 이야기다. 이미 아내는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 상태였다. 하나뿐인 가족인 할머니를 보내드리고 제대로 된 애도의 시간을 보내지 않아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도 남편은 그럴 리 없다며, 우울감은 나태한 마음에서 오는 거라며 더더욱 아내를 몰아붙였다. 운동, 영어공부, 블로그 운영까지. 집에 홈캠까지 설치하며 조금도 아내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던 남편. 힘들어 주저앉아 있는 아내에게 위로는 못 건넬 망정 이것만 이겨내면, 이번 고비만 넘으면 성장할 수 있을 거라며 아내를 닦달하기 바빴다. 아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경주마처럼 본인의 욕심, 본인의 페이스에 맞춰 아내를 질질 끌고 다녔던 남편. 물론 진짜 이혼하려는 마음을 가졌던 부부는 아니지만, 프로그램을 통해 본인들의 상황과 모습을 반추하는데 목적을 둔 프로그램이겠지만 만약 남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마음과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면 그 부부는 결국 파국을 맞이하지 않았을까.     



텃밭의 농작물을 보며, 이혼을 고민하는 부부의 사연을 보며 내 자신도 돌아본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완벽주의의 성향을 가진 나. 그런 성향을 가졌으나 내 비루한 몸뚱이와 정신은 내 완벽한 기준을 따라가지 못해 늘 채찍질하기 바빴고, 조금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은 인생이었다. 조금은 느긋하게, 여유 있게 살아도 될 법한데 늘 나에게 엄격했고 그러다 보니 스스로를 못난 사람, 부족한 사람이라며 땅굴을 파고 또 파며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기 바빴던 나. 나에게만 그러면 다행인데 내 자녀들에게, 남편에게까지도 완벽한 잣대를 들이대었다.      

큰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나? 공부하다 잔뜩 혼이난 아들이 나에게 넌지시 건네었던 말이 생각난다.

“엄마, 엄마는 내가 어느 정도 해야 만족할 것 같아? 엄마가 나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 큰 것 같아.”


힘 없이 말했던 그 아들의 목소리와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이왕이면 잘하면 좋지 않겠냐는 그 말이, 다 너를 위해서라는 말이 어쩌면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내는 무기가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상대를 가스라이팅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뜩 난다.   

   


  

하늘만큼은 끝내주는 여름날


  여름이 되면 벼를 심은 논이 마치 잘 정리된 잔디밭 같아서 감탄을 자아낼 때가 있다. 바닥에 계란을 터트리면 프라이가 될 것만 같다는 아이들의 말처럼 아주 무더운 여름날, 한숨 고르며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면 구름과 하늘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그런 날은 밤하늘마저도 쏟아지는 별들로 정신을 쏙 빠지게 만든다. 우리도 인생을 살며 한번쯤은 주위를 둘러보기도 하고, 잠시 쉬어도 가고, 어떤 때는 잠시 늘어져도 보고 여유를 부리다 보면 다시 앞으로 나가야 할 때 그 쉼과 여유가 연료가 되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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