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슴뿔 Mar 21. 2022

욕망의 글쓰기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정지우

글쓰기는 많이 할수록 좋다. 욕망이 걸러지기 때문이다. 처음에 글을 쓸 때는 하고 싶은 말, 나에 대해 알리고 싶은 것, 표현하고 싶은 대상이 무척 많다. 할 말이 없어서 쓸 게 없다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누구에게도 할 말이 없을 수는 없다. 나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생각한다. 연애를 시작하면 누구나 자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상대방을 알고 싶어 하고, 자기를 알리고 싶어 한다. 단지 우리에게는 그럴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말하지 못하고 억눌려 있을 뿐이다. 그 댐에 한 번 무너지면 갇혀 있던 것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글쓰기에 진입하는 사람은 처음에 너무 많은 욕망을 만나게 된다.
-중략-
글을 많이 쓰면 그런 욕망들을 하나씩 토해내게 된다. 그러고 나면 다음번에는 그에 관해 그렇게 절절하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 혹여나 그에 대해 또 이야기할 일이 있을 때 보다 거리를 두고 천천히 깊은 생각을 더하여 다시 기억을 더듬으며 차분하고 아름답게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그런 '다음번'이 되돌아오기까지 얼마가 걸릴지는 알 수 없다. 욕망을 100개쯤 토해낸 다음 그 '다음번'이 돌아올 수도 있다. 어쨌든 그때는 돌아온다. 그리고 또 돌아온다. 또다시 돌아온다. 그 중에 가장 나의 진실에 가닿은 하나의 글이 있다. 그 글을 만나기 위해 계속 쓰는 것이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정지우

글을 쓰다보면 나의 미숙함과 치졸함 비겁함 예민함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것이 소설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니고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마음 반, 그래도 누군가 봐줬으면 하는 마음 반으로 쓴 '일기'이기 때문일까.

보여주고 싶은 것은 나의 성숙함과 의연함 태연함 등등인데 정작 써내려가는건 누군가에게 느꼈던 서러움, 힘들었던 기억, 부족함에 대한 자책, 조급함 그리고 이것들을 티내지 않으려 너무도 티나게 담담한 척하는 마음까지. 드러내기 부끄러운 감정들도 누군가는 잘 다듬어 세련되게 풀어내는데 글쓰기에 미숙한 나는 서툴게 마음을 다 뱉어내버리고 그래서 지난 밤에 쓴 글들은 항상 나의 손가락을 오그라들게 만들고 그래서 블로그의 비공개글들은 매일 늘어가고 있다.

나조차도 다시 들여다 보지 않는 글을 왜 쓰고 있을까 고민했었다. 정지우 작가가 말하는 차분하고 아름답게 글을 쓸 수 있는 그 '다음번' 그걸 만나기 위해 전 날의 부끄러움과 실망을 이겨내며 계속 쓰는 중이었나보다.

덧,

그리기도 그렇다.

글과 마찬가지로 처음엔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적절한 강약을 조절하기가 어렵다. 결국 감정과잉의 결과물을 만들고 그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조금 불편해진다.

굳이 설명하자면 다듬어지지 못한 날 것의 그림들이 너무 공격적으로 말을 걸어오는 것 같은 거북함이있다. 똑바로 보고 싶지 않고 약간 곁눈질로 보고 싶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많이 삭제했는데 조금 후회된다. 지금은 그때와 같은 그림은 그릴 수 없으니까.

욕망의 그림그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