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안개 너머의 좌표 - 프롤로그

진실의 무게와 마주하는 곳, 접견실

by 우종진 변호사

1.


서원구치소의 아침은 바깥세상보다 한 시간쯤 늦게 온다.


높은 담벼락이 햇빛의 입장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담 안쪽의 하늘은 언제나 직사각형으로 잘려 있고, 그 좁은 하늘 조각 아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을 매일 아침 되새긴다. 자유. 이름. 그리고 미래라는 단어에 깃들어 있던 어렴풋한 가능성들.


나는 변호사 등록증을 목에 걸고 금속 탐지기를 통과했다.


—삐—


경고음이 울렸다. 교도관이 무표정한 얼굴로 손목을 들어 올리는 시늉을 했다. 나는 시계를 벗어 트레이에 올렸다. 오래된 규칙이었고, 오래된 굴욕이었다. 13년 넘게 이 문을 드나들었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신체가 스캔당하는 그 차가운 감각이 그중 하나였다.


복도를 걷는 동안 나는 오늘의 의뢰인을 떠올렸다.


이지윤. 28세. 직업 : 인디 뮤지션. 괄호 안에 무직에 준함이라고 덧붙여진. 혐의: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 구체적으로는 필로폰 15그램 은닉 조력 및 투약.


숫자와 혐의명만 놓고 보면 그녀는 그저 수십만 건의 마약 사건 중 하나다. 매년 경찰청이 발표하는 마약류 범죄 통계에서 소수점 아래 어딘가에 기재될 인간의 비극. 수사기관은 그녀를 공범이라 부를 것이고, 사회는 마약 확산의 공조자라 부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나는, 그 숫자 뒤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를 먼저 보는 쪽을 택해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일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오래전에 배웠다.



2.


변호인 접견실 제3호.


유리문 너머로 방을 먼저 들여다보았다. 1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철창이 박힌 창문 하나가 벽 위쪽에 나 있었고, 그 사이로 오전의 옅은 빛이 비스듬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회색 벽. 낡은 철제 탁자 하나. 의자 둘. 벽 한편에 비상벨이 붙어 있었다. 이 방에서 수감자가 돌발 행동을 일으킬 경우를 대비한 장치였다. 나는 그것이 필요했던 접견을 지금까지 딱 두 번 경험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자 공기가 달랐다.


바깥과 단절된 공간 특유의 정체된 공기. 누군가의 불안과 누군가의 기다림이 켜켜이 쌓인 냄새 같은 것이 배어 있었다. 나는 탁자 위에 사건 기록을 올려두고 넥타이를 살짝 느슨하게 풀었다.


변호사라는 직함이 주는 무게감은 이 좁고 차가운 방 안에서만큼은 의미를 잃는다. 이곳에서 나는 그저 부서진 삶의 파편들을 들여다보고, 얽힌 매듭을 풀어내야 하는 관찰자이자 조력자일 뿐이다.


파일을 펼치려는데, 문득 사무실 서랍 속 다른 파일이 머릿속에 스쳤다.


박재호. 31세. 오늘 아침 접수된 파일이었다. 2년 전, 내가 집행유예를 이끌어낸 사람이었다. 법정을 나서던 날 그는 내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눈이 붉었고, 목소리가 떨렸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했다. 2년이 조금 안 되어 같은 혐의로 그의 이름이 다시 왔다.


이 일을 하다 보면 그런 이름들이 쌓인다.


나는 그 생각을 서랍 안쪽으로 밀어 넣고 이지윤의 파일을 펼쳤다. 지금 이 자리에 올 사람은 이지윤이었다.



3.


5분쯤 기다렸을까.


유리문 너머로 옥색 수의를 입은 이지윤이 교도관의 안내를 받으며 복도를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문이 열리고 그녀가 들어섰다.


나는 그녀를 보는 순간 미간이 좁혀지는 것을 느꼈다.


28세라는 숫자가 믿기지 않았다.


얼굴은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식물처럼 창백했다. 광대뼈가 도드라져 있었고, 눈 아래로는 짙은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다. 수면이 무너진 사람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피로가 피부 속에 박혀버린 것 같은 그 특유의 안색이었다. 그녀가 의자를 당겨 앉는 동안, 탁자 위에 올려놓은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칸막이가 없는 탁자였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 거리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몸을 최대한 작게 웅크리고, 눈을 내리깔고, 두 손을 무릎 위에 포개어 올렸다. 죄인이 취하는 가장 전형적인 자세였다. 마치 스스로 칸막이를 만들어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변호사님..."


갈라진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저, 여기서 영영 못 나가는 건가요."


나는 그녀의 눈을 찾았다. 잠시 후 그녀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두려움인지, 수치심인지, 아니면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자의 공허함인지—그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초점을 잃은 채 부유하고 있었다. 물음표가 아닌 마침표의 억양을 드러내는 목소리가, 그녀의 공허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수많은 피고인들을 만나왔다. 그들의 서사에는 늘 자기 합리화와 뼈저린 후회가 공존한다. 연쇄 강도범도, 살인 혐의자도, 기업형 사기꾼도 내 앞에 앉으면 결국 한 가지 공통된 얼굴을 했다. 자신이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 당혹스러운 얼굴.


법은 드러난 행위의 결과만을 냉정한 저울 위에 올린다. 그러나 나의 일은 그 저울에 오르기 전, 피고인이 걸어온 어둠 속의 좌표를 역추적하는 것이다. 범죄를 정당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법정에서 가장 정직한 언어로 증언하기 위해서.



4.


"지윤 씨."


나는 탁자 위에 두 손을 올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당신이 왜 그 비 오는 새벽, 서원시 청운호수공원의 인적 없는 벤치 앞에 서 있었는지—그 새벽의 이야기를 내게 숨김없이 들려주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강도진이라는 사람을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그녀의 눈에 물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손끝의 떨림이 조금 더 커졌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서류를 건드리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은 서류를 볼 때가 아니었다.


"그래야 우리가 이 짙은 안갯속에서 길을 찾을 수 있어요."


철창 너머로 오전의 빛이 조금 더 기울었다.


방 안에는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남았다.



5.


이것은 단순히 15그램의 마약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지독한 고립감, 사랑이라 착각했던 정서적 지배, 그리고 방향을 잃은 청춘이 어떻게 심연으로 끌려 들어가는지에 대한 서늘한 기록이다.


나는 펜을 쥐었다.


그리고 그녀의 붕괴된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갈 준비를 했다.




이 이야기는 작가가 법정 안팎에서 마주한 수많은 인간의 서사에서 출발한 허구의 기록입니다. 그러나 이 안에 담긴 고립과 추락, 그리고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만큼은, 어딘가에서 실제로 살아 숨 쉬는 것들입니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과 사건은 창작된 것으로, 실존 인물 및 실제 사건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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