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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음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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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d Apr 11. 2023

‘같은 말이지만 다른 느낌’을 이해한다는 것

 어릴 때 음언니는 인형 같았다. 갓난아기가 쓰는 베레모 비슷한 아기 모자를 꽤 오래 쓰고 다녔다. 그 모습은 이 세상 것들과는 달랐다. 사람들이 아가를 보고는 ‘아기천사’라고 하는데, 어린 마음에도 왜 그런지 단번에 이해가 될 만한 모습이었다. 퇴원하고 음언니가 어느 정도 면역력이 생긴 후로 우리 가족은 음언니를 데리고 산책을 많이 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음언니는 엄청 가벼워서 어린 내가 안아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난 동생을 엄청나게 기다려와서 틈만 나면 동생 옆을 지키고 함께 놀곤 했다. 그러면서도 내심 동생이 말을 배우고 몸집도 커져서 친구처럼 같이 다니며 근사한 놀이를 하길 꿈꿨다. 하지만 내 바람과는 달리 음언니는 갓난아이 같은 채로 남았다.  

 난 아기천사도 좋지만, 그보다는 '인간'적인 동생을 원했다. 같이 나이 들고, 딱지도 치고, 대화도하고 공부도 가르쳐주고 다투기도 할 수 있는 남매. 눈치껏 그건 당장 힘든 건 알았다. 어린 나는 생각했다. 한 두세 살 정도면 ‘오빠’는 했야 했고 최소한 걷기라도 해야 했는데, 아무리 병원 생활을 오래 했어도 말이다. 백번 양보해서 동생이 많이 아픈 거라고 해도 언젠가는 일반적인 남매로 지내기를 기대했다. 

 난 음언니와 매일 같이 놀고 싶었는데, 음언니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심지어 내게 별 관심도 없었다. 그래도 꿋꿋하게 음언니를 데리고 다녔다. 데리고 다녔다기보다 ‘끌고’ 다녔다. 침대 위에서 이불과 베개로 집을 지어놓고 그 안에 음언니를 넣고 무너뜨리는 놀이를 했다. 그러면 음언니가 짜증이나 화를 낼 줄 알았다. 다른 형제나 남매는 그러면서 노는 거 같았으니까. 또 개나 고양이도 형제끼리는 싸우면서 크는 거니까. 그러기에 음언니는 너무 착하고 또 연약했다.

 자라면서 “하... 진짜 재들은 매일 싸워...”라고 말하며 우애가 실종한 집안을 한탄하는 이웃집 아줌마들이나, “진짜 우리 형 없었으면 좋겠어”라고 하는 친구들을 보면 엄살이나, 자랑을 에둘러하는 것처럼 보였다. “재는 나가서 안 놀고 책만 봐서 큰일이야.”하는 전교 1등 하는 아이 엄마의 시답잖은 고민, 혹은 얄미운 자랑처럼 들린 것이다. 내게 동생은 그저 ‘좋은 것’이었다. 나는 그 좋은 것을 막 받았고, 어떻게 재밌게 시간을 보낼까에만 사로잡혔다. 

 어린 음언니는 그렇지 못했다. 아무리 장난을 치고 짓궂은 장난을 쳐도 별 반응이 없었다. 너무 착한 동생이라 그런 건지 별 재미가 없었다. 엄마는 어린 내게 음언니가 좀 다르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장애’라는 말을 익히 알고 있었고, 텔레비전에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보곤 해서 음언니가 어떤 상황인지 ‘이해’를 금방 했다. 그런데 ‘납득’은 안 갔다. 

 같은 말이지만 왠지 다르게 느껴지는 말이 있다. ‘이해’와 ‘납득’이 그렇다. 동생이 장애가 있을 수 있는 건 이해가 갔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동생이, 동생과 함께할 날들이 ‘장애’라는 이유로 달라질 것이라는 건 납득이 안 갔다. 텔레비전에서 막연히 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그게 하필 내 경우라는 게 이해가 안 갔다. ‘다른 사람은 그럴 수 있는데, 나는 안 돼’ 창피하지만 내 인생의 첫 ‘내로남불’이었다.   

 엄마의 말을 이해하고 나서도 여전히 음언니가 아직은 좀 불편해서 잘 못 움직이고, 장난을 받아줄 수 없는 것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건강이 차차 나아져 감히 오빠에게 대들기도 하고, 투덕거리기도 할 거라 믿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먹는 지독하게 쓴 약이 음언니를 건강하게 해 줄 것이라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걸 납득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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