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데 좋은 하루 보내세요”
나도 모르게 평소 쓰지 않는 형식적인 인사치레를 보냈다. 다른 팀 직원이 회사 채팅창으로 문의해 온 걸 답하다가 마지막으로 보낸 말이다. 평소 하지도 않는 말이기도 하기도 하지만, 보내고 나서 보니 문장도 어색했다. ‘내가 왜 이런 말을 보냈지.’
비 오는데 좋은 하루 보내라는 말에는 비 오는 게 별로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게 전제로 깔린 말이다. 난 비가 오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데 그런 말이 툭 튀어 나왔다는 게 이상했다. 더욱이 오늘 내린 비는 장대비도 아니고 안개비였는데 저렇게까지 표현한 내 자신이 수상했다.
그 말이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내려고 노력하면서 채팅창을 멍하니 보다가 얼핏 지난주 내가 다른 팀 사람에게 뭘 문의하던 채팅창이 보였다. 불현듯 기억났다. 그 어색하면서도 낯익은 말의 근원이
“비가 오지만 즐거운 하루 되세요”
지난주에 내가 다른 팀 사람에게 문의한 걸 해결해 줘서 고맙다고 하자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받았다. 그때도 비슷한 생각이 스쳤다. ‘비 오는 거라 즐거운 하루랑 무슨 관계지?’ 하는 의문이었다.
왠지 그 사람은 비 오는 날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았다. 지난주에 온 비도 조용히 부슬부슬 왔는데, 대뜸 비 이야기 꺼내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길 바라는 걸 보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친구 중 한 명도 비 내리는 날을 매우 싫어하던데, 그 이유는 양말이 젖는 걸 싫어해서다. 또 내가 아는 한 운전을 업으로 하는 아저씨도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다.
뭔가 빠져있는 어색한 문장 덕에 문득 비를 좋아하지 않는 주위 사람들이 생각나서 묘하게 친근하게 느껴졌던 걸까. 그 사람은 별생각이 없었겠지만, 그 문장에는 “나는 비를 좋아하지 않아.”라는 소개와 “만일 너도 그렇다더라도 즐겁게 보냈으면 좋겠어”라는 염려가 담겨 있었다. 그래서인지 ‘춘규’라는 그의 이름에서 ‘춘’은 왠지 봄 춘 자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비를 싫어하지도 않는데, 무심코 이런 말을 쓴 건,
지난주에 받았던 묘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오늘 그 사람도 비가 오는 날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