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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글 Sep 22. 2022

가르침과 현실, 그 사이의 선생님

2016년, 미국의 중학교 사회시간에는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공부를 많이 했다. 특히 8학년 사회 커리큘럼에는 초기 미국 역사와 헌법 제정, 그리고 차별 없는 사회에 관련한 이슈를 배우기 때문에 학생들의 숙제에도 당시 미국 사회의 가장 큰 뉴스인 대선이 영향을 미쳤다. 인상적인 숙제 중 하나는 랜덤으로 결정된 대선 후보를 선정해 조사하고, 지지하는 발표를 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후보를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추첨에 의해서 선정된 후보를 조사하고 지지하는 발표를 하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 후보라도 왜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만 하는지 장점을 찾아내야 한다. 또 미국 대통령 선거 디베이트 방송을 보고 각 후보의 정책을 정리해 내기도 해야 해서, 아무리 선거에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숙제를 하려면 한 번쯤은 디베이트 방송을 보아야만 했다. 당시 딸아이는 이런 주제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법, 정치 사회 관련 생소한 영어 단어에 굉장히 힘들어했다. 그래서 내가 대통령 선거 토론 방송을 같이 봐주기도 했는데, 다행히 유튜브로 보면 몇 번이고 다시 볼 수 있어 그들이 자신들의 공약을 어떻게 주장하는지 비교적 쉽게 알 수 있었다. 이런 숙제를 하면서  관심이 없던 학생들도 아마  한 번쯤은 어떤 사람이 대통령을 해야 하는 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표 후, 예상과 달리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고, 그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던 딸내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엄마, 나 캐나다로 이민 가고 싶어요. 여기서 아시아 여자로 어떻게 살아요...

아님 피부 색깔을 희게 만드는 약을 발명할까 봐요............" 


그동안 학교에서 얼마나 많이 대통령과 선거에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대통령의 여러 차별 발언이 이렇게까지 아이에게 영향을 미칠 줄은 정말 몰랐다. 긍정적인 멘트로 아이를 다독였다. 

표를 얻으려고 한 말일 것이며, 대통령 보좌진들은 스마트한 사람이 있을 것이고, 민주당은 물론이지만 탐탁지 않아했던 공화당에서도 대통령 혼자 독주할 수는 없도록 견제할 테니 걱정 말라고 말이다.         


다음날 저녁, 학교에서 상담이 있었다. 이는 학기 초에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다.

여기는 학기 초(9월), 1학기가 끝난 후(11월), 아님 2학기가 끝난 후(3월) - (아이의 중학교는 4학기 제이다.) 상담을 할 수 있는 데, 이 중에 한 번 혹은  두 번을 선택해 학기 초에 미리 약속을 잡아놓고 상담을 하게 된다. 그런데 하필 상담하기로 한 날이 공교롭게도 대통령 선거 이틀 후였다.

선생님은 영어 선생님 두 분과 사회, 과학, 스페인어 선생님까지 5명이 계셨다.  여느 상담처럼 성적에 대해 이야기하고, 어떻게 도와주실지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와 함께 상담을 갔는데, 같이 가면 앞으로는 어떻게 하겠다고 학생과 선생님이 직접 약속을 할 수 있어 좋다. 그렇게 평소와 같이 상담을 하고, 한 선생님이 평소처럼 더 할 말씀 없냐고 물어보셨다.

그때, 나는 대선이 끝난 후 아이의 상태에 대해 그리고 혹시나 또 아이와 같이 느끼고 있을 아시안 여자 아이들의 상태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어제저녁 때 딸이 했던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놀랍게도 갑자기 5명의 선생님이 모두 눈물을 흘리신다. 특히 사회 선생님은 소리 내어 우셨다. 티슈를 사회 선생님께 가져다 드리는 영어 선생님 얼굴도 눈물범벅이었다. 다른 분 얼굴에는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린다. 한 분은 애써 참는 눈이 빨갛다. 너무 놀란 나는 한 분 한 분 얼굴을 보며, 후회했다. 내가 이 말을 왜 꺼냈을까.. 나도 눈물이 나서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무엇보다 가장 놀란 사람은 딸아이였다. 자신이 한 말의 파장이 이렇게 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참 후, 진정이 되신 사회 선생님은 아이에게 말했다.

“우리 사회 시간에 지금 배우고 있잖아. 차별 없는 사회에 대해서.. 앞으로 사회 시간에 많이 이야기하자.”

선생님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난 후 콘퍼런스를 나오며 어제와는 다른 차원의 복잡한 심경이 들었다. 물론 이런 분들이 선생님이라는 생각에 기쁘고 감사함이 첫 번째였고, 그다음에는 선생님들에게도 대선 결과는 충격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 날, 대선 결과를 보고 이제 미국도 별 거 없겠네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런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미국 교육의 미래를 생각하니 그 생각은 취소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보다 더 당황했던 아이는 집으로 오는 내내 사회 선생님 그렇게 우실 줄 몰랐다며 놀라워했지만 속으로는 안도하는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중학교에 올라간 첫째가 어느 날, 말했었다. 


“엄마, 미국 학교와 한국 학교의 가장 큰 차이점이 뭔 줄 아세요?”

“글쎄…” 

“선생님을 선생님이라 부르지 못하는 아픔이 있어요. 티쳐라 부르지 않고 미스터~~, 미세스~~, 미즈 ~~~라고 직접 이름을 부르거든요. “


선생님이란 호칭이 아니라 이름이 불리는 한 인간 어른으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현실은 가르침을 반영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니, 그렇게 눈물을 흘렸던 걸까?  그 후에도 아이들을 통해 잠깐씩 듣는 선생님들의 에피소드에는 정치적 소신 발언을 하시는 이야기가 가끔 있었다. 어쩌면 선생님은 중립적이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잘 못하는 정책에 대해 건전한 비판으로 더 나은 사회로 발전시키는 모범을 보여야 하는 것도 선생님이 아닌가 생각한다. 특히 아이들 중고등학교에서는 사회 선생님들이 그러셨는데, 미국의 교육이 성숙한 시민을 길러내는 것에 그 목적이 있어서인지 생각보다 사회적 문제에 대해 그리고 현실적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접근해 교육하는 모습이었다.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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