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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사서 Sep 01. 2016

무엇이든 기록하고 싶게 만드는 책

안정희,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


                 

사실 처음부터 제목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목에 대한 그 비호감(?)은 책을 읽고 나서도 동일하다. 힐링, 위로 따위의 단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 탓도 컸지만, 책의 내용에 더욱 걸맞은 제목을 지어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내용은 흥미로웠다.


독서모임 때 동기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이다. 기록관련 업무를 하고 있어서 고른 것도 있지만, 나에게도 유익했다. 아무래도 사서라는 직업이 기록과 멀리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어려서부터 유난히 무언가를 적어서 남겨두는 것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내가 책을 읽고 하나씩 차곡차곡 기록을 남겨두는 것도 다 같은 맥락.


세상에는 엄청나게 다양한 기록들이 있음을 실감했다. 블로그만 해도 각자 전문성이나 취미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주제들의 기록이 산더미이고, 매일같이 적는 일기에 업무노트, 작게 보면 SNS에 올리는 짧은 글까지. 모두가 기록이다. 이 책에 나오는 자서전, 역사의 기록은 물론, 학교 선생님의 교단일기, 산파의 일기, 죽은 오빠의 기록을 보관하는 동생의 이야기 등등.. 생각해보지 않았던 여러 종류의 기록들이 있었다. 그 기록들은 모두 우리의 지나간 시간이었고, 우리의 지나간 삶이다. 지나갈 시간들을 붙잡아보기 위해, 잊히면 안 되지만 잊혀져 갈 기억들을 붙잡아보기 위해 기록이라는 수단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죽기 전에 어떤 기록을 남길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내가 지금 남기고 있는 기록은 사서로서 나의 업무에 관한 기록, 이벤트나 소소한 일상의 사건들을 적는 다이어리와 일기, 이렇게 적고 있는 독후감, 설교말씀을 적어두는 설교노트, 성경말씀이나 신앙서적을 보고 느낀 점을 적는 묵상노트 등이 있는 것 같다. 생각해보니 나도 꾸준히만 하면 죽기 전에 남길만한 것들이 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 물론.. 내용이 좋아야겠지.. 내용을 알차게 만들기 위해 내일도 삶을 알차게 꾸려야겠네. 이 책을 읽으면 일단 노트를 사러 문구점에 가게 될 것이다. 무엇이든 기록해보고 싶다는 기록 욕구를 활활 불타오르게 만드는 그런 책이다.





* 남겨두기


"기록하고 기록물을 살피는 행위는 자신을 만드는 과정이다. 기록하다 보면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기록은 살아가는 목적이자 방법이며 생을 마무리하는 동시에 불멸을 꿈꾸는 가장 오래된 이야기다." - 12 p.


"옛날 중세 수도사들은 아침에 일어나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고 인사했다고 한다. 이 말은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그러나 죽음이 바로 다음 날 오리라고 생각하며 살지는 않는다. 하루는 너무 비루하고 소소하여 이날들이 내일도 그 다음 날도 어김없이 우리에게 찾아올 것으로 생각한다. 내일이 당연할 때 인간은 이기적인 삶을 산다. 인류의 일원임을 잊는다. 반드시 살아야 할 날들에 대한 생각이 사라진다. 중세 수도사들의 아침 인사는 마지막일 수도 있을 오늘의 삶을 생각하게 한다." - 34 p.


"인간의 역사는 살아온 날들이 소멸하는 것에 끊임없이 저항해 왔다. … 이는 모두 과거를 복원하는 것이요, 그간의 경험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지 않으려는 시도다. 잊고 살 수 없는 장면을 남기는 것만으로도 후대는 그 너머의 시간과 공간을 본다." - 73 p.


"기록은 삶을 느리게 하고 인간다운 삶의 가치를 들여다보게 한다. 삶의 속도가 영혼의 속도에 맞출 시간을 선물한다." - 200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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