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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사서 Aug 04. 2018

어두운 삶 속 피난처가 된 도서관

델핀 미누이,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





나는, 우리는 언제 책을 읽나? 마음이 상했을 때, 힘든 삶 속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 위로받고 싶을 때,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자 할 때.사람 수 만큼이나 다양한 이유로 우리는 책을 집어 든다. 내 주변에서도 힘든 일을 겪었던 사람들이 주로 책을 많이 읽고 의지하는 경우를 종종 봤다. 책을 읽는 내내 책 속의 장소로, 책 속의 주인공이 되어 그 세상을 다녀온 최면같은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시리야의 작은 마을 '다라야'. 정부군과 내전이 한창인 이 곳에도 책을 마음 속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도서관이 있다. 드럼통 폭탄이 쉴새없이 떨어지고, 먹을 것은 다 떨어지고, 마을 자체가 봉쇄되어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이런 곳에 도서관이라니, 뭔가 '배가 부른' 듯,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전쟁터와 도서관.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책을 사랑하게 되었고, 도서관까지 마련하게 되었을까?

"'집이 많은 곳'이라는 뜻을 지닌 시리아의 작은 도시 다라야. 2011년부터 시작되어 35만 명이 넘게 사망했고, 약 1000만 명의 난민이 고통받고 있는 시리아의 내전 속에서, 다라야는 시리아 반군 거점지라는 이유로 정부군에 의해 봉쇄되고 만다. 식량도 의료품도 제공받지 못한 채 하루하루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무너진 폐허에서 찾아낸 책으로 지하 도서관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약 2년간 함께 책을 읽고 강의를 열고 대화를 나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포기하지 않기 위해, 삶은 계속되어야 하므로." - 7 p.

내전이 한창인 시리아의 어느 곳에 도서관이 있다는 사진을 보고, 기자인 저자는 그 사진을 찍은 주민과 인터넷을 통해 연락을 주고 받는다. 다라야에 도서관을 꾸린 이들은 도서관에서 함께 나눈 토론 내용들, 인상깊게 본 책의 내용을 저자와 함께 인터넷을 통해 공유하며 '랜선 친구'가 되어 간다. 먼 발치서, 그러나 생생히, 그러나 간접적으로 전쟁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저자지만, 그 탈출구 없는 괴로움 속 마을 사정을 전 세계에 전하기 위해 현장의 자료들을 모으고 또 모은다.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독일인 기자였던 위르겐 힌츠페터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어두운 세상을 마주한 이들에게 책은 희망이자 위로가 되었다. 독재 정부군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시야를 넓혀주고, 죽음과 동행하는 삶에 위로를 준다. 국가는 쉬지 않고 치졸한 무력 공세를 하지만, 다라야 주민들은 아픔을 겪으면서도 총 대신 책을 품고 건강히 이겨 나간다. 수준 높은, 진정한 승리. 인간에게 정신적인 채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얼마나 힘이 되는 것인가.

이 도서관에 한번 가 보고 싶지만, 지금쯤은 무식한 정부군에 의해 폐허가 되었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한권 한권 정성들여 책을 도서관에 모아두는 다라야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나름대로 분류도 하고 정리도 꼼꼼히 하면서 도서관을 운영해 나갔다고 했는데. 그 모습이 참 궁금하다. 

(이 말을 쓰고 인터넷을 찾아보니 도서관 모습이 있다. 이 책 출판사에서 제공한 사진인 듯.) 



* 남겨두기

"컴퓨터 화면으로만 볼 수 있는 어떤 동네의 모습에 눈을 뜨는 것, 그것은 현실을 부정확하게 전달할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반면에 눈을 감는 것, 그것은 그 마을의 말문을 틀어막는 것이다.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은 다라야에 괄호를 치고 싶어 하고, 그곳을 꺽쇠괄호에 넣어 감금하고자 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따옴표를 달아주고 싶었다." - 15 p.

"아흐마드는 첫 번째 페이지를 넘겨, 서툰 외국어 실력이지만, 몇 가지 익숙한 단어들을 읽었다. 사실 중요한 것은 책의 주제가 아니었다. 아흐마드의 몸이 떨려왔다. 그의 가슴속 모든 것이 요동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식의 문이 열리는 전율이었다. 익숙한 대치 상황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 나라의 자료를 조금이라도 지켜내는 것. 그는 미지의 세계로 도망치듯, 책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 23 p.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때, 우리는 저항의 상징으로 무언가를 세웠습니다.'라고 아흐마드가 분명하게 말했다. 아흐마드는 생각에 잠긴 채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러고 나서 내가 절대 잊을 수 없을 한마디를 했다.
'우리의 혁명은 파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건설을 위한 것입니다.'" - 25 p.

"살아남은 그는 책이 주는 유익함을 믿었다. 몸의 상처를 치유할 수는 없다고 해도, 마음의 상처를 달랠 권리는 있는 것이다. … 그는 한가로이 책장을 넘기는 것이 좋았다. 끊임없이 책장을 넘기며 훑어보는 것. 마침표와 쉼표 사이에 몰입하여 길을 잃는 것. 미지의 대륙을 탐험하는 것." - 36 p.

"직접 만들어낸 자유의 공간에서 독서는 새로운 토대였다. 이들은 그동안 은폐되었던 과거를 되짚어보고자 책을 읽었다. 또한 배우려고 책을 읽었다. 때로는 정신착란을 피하고자, 때로는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읽었다. 책은 하나의 배출구였다. 폭탄을 동원한 일방적 강요에 맞선 언어의 선율이었다. 독서라는 이 소박한 인간적 행위는 평화를 되찾으려는 열망과 결부되었다." - 42 p.

"다라야의 블랙홀 구석에 있는 이 젊은이들이 가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폐허로 둘러싸인 이 성소에서 이들은 참고 문헌을 넓혀가고, 새로운 사상들을 탐구하고, 어두운 밤에 출구를 찾고자 밝힌 작은 촛불만큼 매일 조금씩 자신들의 문화적 지식을 더욱 풍부하게 다져갔다. 지하의 은밀한 생활, 위에서부터 강요된 침묵이 열정과 용기를 담은 고함으로 바뀌는 곳. 나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 123 p.

"나는 아흐마드에게 물었다.
'그래서 끝났어요?'
그의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물론 아니죠! 한 도시를 무너뜨릴 수는 있지만, 생각은 무너뜨릴 수 없죠!'" - 220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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