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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사서 May 08. 2020

경계와 혐오, 인간 본성의 법칙

김혜진, 『불과 나의 자서전』



몇 년 전, 신문기사에서였나 처음 '휴거'라는 단어를 들었다. 아, 물론 휴거(携擧)의 본 의미는 알고 있었지만, '휴먼시아 거지'의 줄임말로서의 휴거라는 단어는 처음 들었다. 그 말의 뜻을 알고서 진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제 아이들도 친구들을 그런 식으로 분류하는구나 싶어서. 그 말을 직접 듣는 어린 아이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내가 속상해서 와 그렇게 부르는 애들 진짜 나쁘다, 하고 생각하면서도, 어른들이 그런 식으로 말하니까 애들도 보고 배우는 거겠지, 하는 생각에 미치고, 결국은 인간 본성은 그런 거야, 하고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그때의 충격이 떠올랐다. 남일동과 중앙동으로 대비되는 삶의 경계 속에서 인간의 본성을 다시 한 번 보았다. 저 사람과 나는 수준이 달라. 경계짓기, 혐오하기.  허름해서 늘 재개발 소문에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남일동 속의 엄마도 결국은 그 동네의 다른 가겟집 아이들과 자신의 자녀를 경계짓는다. 그들과 어울리지 않기를 바라는 엄마의 말을 '홍이'는 엄마의 두려움과 불안으로 어렴풋이 이해하고 넘어간다. 그렇지만 마음에 내재되어 있던 남일동에 대한 홍이의 괴로운 마음과, 부모에게서 느꼈던 남일동에 대한 혐오가 자신에게서도 발견된다는 데서 오는 괴로운 마음들이 결국은 후에 표출되고 만다.


"한 사람 안에 한번 똬리를 틀면 이쪽과 저쪽, 안과 밖의 경계를 세우고, 악착같이 그 경계를 넘어서게 만들던 불안을. 못 본 척하고, 물러서게 하고, 어쩔 수 없다고 여기게 하는 두려움을. 오래전 남일동이 내 부모의 가슴속에 드리우고 나에게까지 이어져왔던 그 깊고 어두운 그늘을 정말이지 지워버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 168 p.


이 소설 속에서 몇 가지 경계짓기의 사례들이 잇따라 나오면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무서움을 새삼스레 보게 된다. 작은 회사에서 일하다 조금 더 규모가 큰 회사로 이직한 사람을 왕따시키고, 그 사람과 친하게 지내던 주인공도 따돌림을 당해 괴로움을 겪고 퇴사하게 된다. 그 이후로 홍이는 면역계에 이상이 생겼는지 알러지 반응이 나타났다. 아마도 그런 인간 세상에 환멸을 느껴 몸에서 거부반응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든 더 나은 공동체 속으로 편입되어 있고 싶은 사람들과, 자신들의 위계 질서를 지켜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혐오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의 모습들을 보았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니 이보다 더 유치한 일이 있나 싶다.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사람 자체로써 설명되는 것이지, 그 사람이 어떤 계층에 속했느냐가 곧 그 사람 자신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모두 무조건 조금 더 위의 계층 사회를 동경하고, 그보다 낮은 것은 말로든 몸으로든 해친다. 스스로 자신들의 굴레를 형성하고 있다. 그 동경하는 위의 계층 사회에 과연 가장 높은 꼭대기라는 것이 있을까? 없다면 같은 의미로 혐오의 끝도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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