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다닐 때도 중요한 건 기다림

아이들은 인증샷에 관심이 없다

by 샌디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제주도에서 한달살이를 하며 여기저기 여행을 다닐 때였다.

용머리해안은 물 빠지는 시간과 날씨가 맞아야 관람할 수 있는 곳인데, 두 번째 시도만에 입장할 수 있어서 서둘러 달려갔다. 용머리해안은 워낙 바람과 파도가 급변하는 곳이라 도착했어도 입장이 불가할 수도 있는데 다행히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입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대신 몇 시까지는 나와야 한다는 시간제한이 있었다.


3시간 이상의 충분한 시간이 있었기에 아이들과 함께 용머리 해안을 걷기 시작했다. 사진 찍으며 한 바퀴 천천히 걸어도 40분이면 나올 수 있는 곳이지만 아이들과 함께라면 보통 2배 이상의 시간은 잡아야 한다.

역시나 용머리해안 초입부터 아이들은 물 빠진 해안가의 돌 사이사이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수천만 년에 걸쳐 만들어진 퇴적암층은 평소에 못 보던 절벽이기에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몇 발자국 이동하는데 수십 분은 걸린 것 같다. 어차피 일정은 이거 하나였기에 급할 건 없었다. 그래서 나도 바위 한쪽에 걸터앉아 아이들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한쪽에서 들려오는 소리.

"얘들아 엄마 봐~ 브이 해봐~ 저쪽 바위에 앉아봐~ 팔 쫙 펴봐" 아이들 사진을 남기기 위한 엄마의 적극적인 주문이다. 우리 아이 또래의 어린아이들은 바위틈을 보고 싶어 사진은 안중에도 없고 포즈는 취해주지만 시선은 자꾸 바위로 간다. 그런 아이들이 엄마는 답답하다. "엄마 보라니까~ 웃어~ 스마일~"


누구를 위한 사진인가 싶었다.

그러고 보니 사실 나도 아쉬운 점 하나가 있는데, 우리 아이들 얼굴이 제대로 찍힌 사진이 없긴 하다. 거의 도촬 수준으로 뒷모습이나 옆모습정도만 찍을 뿐이었다.(운 좋으면 앞모습도 찍을 수 있긴 했다.) 본인들 사진을 찍어달라고 제대로 포즈를 취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놀이와 관찰에 몰입하고 있을 때 사진 찍겠다고 그 몰입을 방해하진 않았다.


게다가 그 엄마는 인증사진 남기는 미션을 완수하고 나자 "이제 다음 코스 가야 하니까 얼른 나가자" 하는 것이 아닌가. 일면식 없는 남이었지만, 그 탐구할 것 많은 용머리해안을 사진의 배경으로만 남기고 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아이들에게 30분이라도 시간을 좀 줘보라고 하고 싶었다.


사실 아이들과 그런 인증용 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국내여행뿐이 아니다. 해외에서도 그런 경우를 종종 봤다. 다들 시간에 쫓기듯이 사진만 찍고 떠났다. MZ세대들 혹은 어르신들 세대는 이해가 된다. 하지만 아이들은 인증용 사진에 관심이 없다. 아이들에게 자연환경은 몇 분 컷으로 관람이 가능한 분야가 아니다. 더구나 이렇게 각종 생명체가 있는 바닷가라면 더더욱.

그렇게 사진만 남기고 떠나버리는 여행이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기억에 남을까.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공식적인 소요시간의 2-3배는 감안하고 떠나야 한다. 아이들은 여행을 하다가도 땅파기에 꽂히면 1시간 내내 땅만 팔 수도 있다. 어디 유명한 명소를 다니며 인증샷을 남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장소가 어디든 평소에 보지 못한 풍경을 충분히 감상하고 관찰하는 게 진짜 남는 여행인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30-40분이면 관람이 끝나는 용머리해안을 결국 3시간 가까이 머물다가 나왔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그때 본인들의 무엇을 보았고 느꼈는지 생생하게 이야기한다.


아이들 키우면서 부모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기다림이라는데, 여행을 다닐 때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새로운 환경을 마주할 때 온몸의 세포로 그 자극들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 시간들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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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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