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나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은 많지 않다.
우연히 마주친 거울 속 내 모습은 스치듯 지나가고
내 머릿속에 잔상으로 잠시 머물다 사라진다.
우리의 감각 기관은 기본적으로 외부를 지향하도록 설계되었다.
아주 가끔씩 화장실에서 빤히 내 얼굴을 쳐다볼 때가 있다.
무표정 속에 묻힌 묘한 표정은 낯선 느낌마저 준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한 주체가 아니라
또 다른 객체가 되어버리는 느낌이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다양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입을 벌려 웃어보거나, 화난 표정을 지어본다.
대상화되어 버린 나 자신에 대한 통제권을 찾기 위한
거울과의 우스꽝스러운 주권 쟁탈전이 벌어진다.
그런데 생각보다 거울 속에 비친 내 표정은 단조롭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덜 기뻐 보이고, 덜 화나 보인다.
심지어는 사진에서도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실제로 기쁜 순간에도 기뻐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내 감정이 잘 전달된 걸까?
확실한 건 20대 시절 사진 속에 담겨 있는
다채로운 색상의 내 표정과는 달랐다.
사진 속 내 모습을 빤히 보고 있으니
과거의 나에게 모든 감정을 빼앗긴 기분도 들었다.
사실 20대 시절을 떠올리는 게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아르바이트, 사회초년생, 서툰 연애,
타인으로부터의 상처 등
너무 많은 고통과 아픔이 먼저 떠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상처를 감추기 위해 웃었다.
그 감정의 파고들을 넘다 보니
어느새 고요한 바다 위에 떠 있는 감정 상태가 되었다.
다시는 감정의 격랑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상처를 감추기 위해
나의 모든 감각을 닫아 놓았었다.
생각해 보니 예나 지금이나 감정을 감추는 건 똑같았다.
예전에는 상처를 감추기 위해 밝은 감정만을 개방했고
지금은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감정을 닫게 되었다.
그런데 글을 쓰는 요즘
다시 닫아놓았던 감정을 점차 개방해야 했다.
감정이 차츰 열리면서
조금씩 두려운 감정도 들었다.
그 열린 틈 사이로
아픔이 너무 빠르게 몰아닥치면 어떡하지?
나는 오늘도
스치듯 거울 속 내 얼굴을 지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