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세상에... 나 요즘 한강에서 러닝 하는데
이렇게 좋은 운동인 줄 몰랐다.'
친구가 이 말을 한 것이 약 6~7년 전이니까
러닝이 유행하던 때는 아니었다.
도대체가 특별히 플레이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재미로 몰입할까 하는 생각이었다.
몇 년 후, 복싱에 한참 빠져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복싱 보조 운동으로 러닝이 기본이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러닝을 시작하고 한 달이 지나니
뛰는 시간이 더 기다려지게 되었다.
러닝은 단순해서 재미없는 운동이 아니었다.
오히려 순수하게 내 몸으로 세상과 부딪히는 기분이 들었다.
요즘은 추운 겨울임에도 실내보다는 실외 달리기가 재미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바라보는 것은
달리기를 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그런데 어두움이 몰려오는 밤이 되면
낮에 달려들어오던 시각적 감각들은 느릿해진다.
대신 눈에 보이는 몇몇은 더 선명하게 나에게 다가온다.
낮에 보던 선명한 현재보다는
과거의 추억과 감정이 뿌옇게 몰려온다.
찬바람, 얕은 피곤함, 운동장 주변에 놓여있는 앙상한 나무들은
어린 시절 해가 완전히 진 뒤,
놀기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던 길을 떠오르게 한다.
그 어린 날에도 집에 돌아가는 길은
허무하고 아쉬웠다.
지금은 친구들과 어울려 하던 놀이나 운동보다는
혼자 하는 운동이 더 재미있다.
과거와 달리 운동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뿌듯함이 남는다.
움직임이 나의 성과가 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움직여서 뿌듯한 건
역설적으로 움직임이 힘들어졌음을 의미한다.
집에 있는 4살짜리 아들은
본능적으로 끊임없이 움직인다.
놀아주다가 지치면
과거의 나에게 패배한 느낌도 든다.
그렇게 나는 나이가 들었고,
생각이 변했고,
인간관계도 바뀌었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무엇이 바뀌어 있을까?
노화된 내 몸뚱이는
또 내 무엇을 바꿀지 궁금하고 두렵다.
죽으면 끝이라는,
인생을 찰나의 순간이라는,
인간은 우주의 먼지보다도 못하다는 나의 믿음에도
시간이 가는 것이 두려운 빈도가 많아졌다.
도대체 어디에서 위로를 받아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생각이 여기까지 닿으면 스마트워치를 쳐다본다.
페이스 숫자가 낮아져야 세월을 이기는 기분이 든다.
나이가 올라갈수록 낮아지는 페이스 숫자로 억지 위로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