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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삼모델 Aug 11. 2021

처절하게 넘어가는 깻잎 한 장 차이 <모가디슈>

아니 이걸 어떻게 찍었지?

* 스포일러 주의

한국에서 만든 북한 관련 첩보영화에서는 가장 핵심적인 클리셰가 있다. 북한의 요원은 젊고 잘생긴 남자 배우가 연기하지만, 남한의 국정원 요원은 아저씨가 연기한다. 그래서 둘이 같이 행동하는 버디물에서는 대부분 북한 쪽이 훨씬 순수하고 이미지를 좋게 묘사한다. 그리고 이 영화들은 환상을 말한다. "남과 북이 한민족인 것처럼 서로 협력해서 문제를 해결한다면, 외세를 물리치고 우리끼리 잘 지낼 수 있다." 또한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는 대게, 병든 가족, 남겨진 자식, 희생 등 각종 신파 요소들을 끌고 와 한민족이라는 감동을 전하기에 바쁘다. 그러나 평화를 말하는 메시지 자체는 나쁘지 않으나, 현실과의 지나친 괴리감 때문에 북한과의 관계를 순수하고 낭만적으로 미화하는 매체에 대해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 영화계도 이를 인지한 덕분인지 신파와 북한의 순수성을 배재하고 현실을 그리는데 집중했다.


- 아프리카 로케이션

영화 '모가디슈'는 실화를 바탕으로  내전이 발생하고 반군이 점령하는 소말리아의 수도를 간신히 탈출하는 탈출극이다. 소말리아는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의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고 현재도 내전으로 인해 불안정한 시국으로 해적들이 판치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러니 영화를 직접 소말리아에서 찍을 수는 없고 모든 촬영을 같은 아프리카인 모로코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잘 모르겠지만, 모로코와 소말리아는 각각 북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로 엄청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인종 구성도 아랍계 백인과 아프리카계 흑인으로 많이 다르고, 건물이나 분위기도 다르다. 그래서 제작사는 소말리아 분위기를 내기 위해 모로코에 서아프리카계 흑인 배우들을 대거 활용하여 영화를 제작했다. 영어도 잘 안 통하는 현지 촬영에서 제작사와 스태프들이 너무나 고생했을 것이 눈에 빤히 보인다. 그래도 영화 예고편을 유튜브에서 보고 소말리 인들이 반발하는 것도 조금은 이해가 간다. 한국에서 미국인들이 탈출하는 영화를 중국, 일본인 배우들을 활용해 필리핀에서 촬영했다고 하면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 깻잎

작중에서 남한 대사의 부인의 깻잎 장아찌를 무심하게 젓가락으로 지그시 눌러는 북한 대사 부인이 나온다. 반찬의 특성상 누군가 깻잎을 눌러주는 건 호감과 배려를 상징하는 행위로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소재로 활용되곤 한다. 이런 깻잎은 향이 강하고 생긴 게 나뭇잎 같아서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먹는 음식이다. 그런 깻잎은 현재의 분단된 한국을 상징한다. 깻잎의 앞면은 부드럽고 뒷면은 거칠다. 남과 북의 다름과 같음은 깻잎 한 장 차이다. 그런데 북한은 개성 지역을 제외하고는 깻잎을 잘 먹지 않는다. 북한 대사 부인이 개성 출신이거나 관련 있음을 알 수 있다.


- 실화

작중 개연성 확보를 위해 실화와는 조금 다르다. 1990년대 들어서는 공산주의가 기울고 경제발전으로 남한이 국제무대에서 확실한 우위를 가졌으며, 소말리아의 적대 국가인 에티오피아가 공산화되어 소말리아는 북한보다는 남한과 더 친밀하게 지냈다. 한국도 노태우 정부 아래 권위주의와 민주주의의 과도기에 있던 시절이라 통제가 심하지는 않아서 남한 대사가 북한 대사에게 먼저 공관에 들어오라 말했으며 남한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과 헤어질 때까지 아쉬워하며 잘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래도 소말리아 탈출 사건 이후 91년 UN 동시 가입,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소련, 중국, 동구권 유럽 국가)과 수교로 한동안은 온건한 무드가 펼쳐지기도 했다.


- 제작

이동진 평론가가 말했듯이 발전된 한국의 제작 시스템의 총체가 담겨 있는 영화이다. 감독의 전작에서 지적된 지나친 신파를 배재했고,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로케이션 촬영을 했으며, 엑스트라를 현지인들이 아니라 외국인들을 데려와서 촬영했다. 총격전은 없지만 볼거리는 충분해서 코로나 시국만 아니었으면 천만 관객도 무난하게 갈 듯한 영화라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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