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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삼모델 Dec 12. 2022

치즈 버거가 먹고 싶다 <더 메뉴>

예술을 위한 모두 까기 영화

<스포일러 주의>

본인의 삶의 근본은 무엇일까? 누구에게는 직업이 될 수 도 있고, 취미가 될 수도 있고 돈이 될 수 도 있겠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그 삶의 근본이 흔들리는 사람들 볼 수 있다. 


볼드모트로 유명한 레이프 파인스가 연기한 셰프 줄리언 슬로윅은 삶에 지쳤다.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며 서비스직에 종사하던 자신의 근본을 잊어버리고 부주방장들을 괴롭혔으며, 레스토랑의 스태프들을 종교적으로 세뇌시키며 학대했다. 예술계에서는 허용되는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도 한때는 올해의 직원상을 받던 전도유망한 젊은이였다. 


번아웃은 음식이 탔다는 뜻도 되지만, 사람이 일에 지쳐서 탈진했다는 용어에도 포함된다. 영화 초반에 '번 아웃'이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 보면, 셰프를 비롯한 스태프들도 모두 번 아웃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술을 둘러싼 사람들

영화가 비판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확실히 나누어져 있다. 초반부 주인공 같던 타일러로 대표되는 예술 애호가(시네필)들은 예술의 기법과 재료에 중점을 두며, 자신이 아는 지식을 자랑하고 아는 척하는 모든 것을 바친다. 하지만 '답답하면 너희들이 가서 뛰던지'라는 비판에 형편없는 결과물을 내놓는다.


유명 평론가와 잡지사들은 말 몇 마디에 사람들의 생계수단을 주고 뺏거나, 사람들을 극한의 스트레스로 몰아간다. 게다가 사람이 죽어나가도 퍼포먼스라고 할 만큼, 제정신이 아니다. 


그리고 상류층과 투자회사 사람들을 통해, 예술을 과시의 수단이나 투자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을 을 비판한다. 


한물 간 배우는 예술이란 게 모두 거짓이며, 언제든지 유행에 따라 주목받거나 받지 못하는 것을 비판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속하지 않는 단 한 사람, 마고 밀스(안야 테일러 조이)는 애매하다. 서비스 생자 이면서, 소비자이며, 생산자의 의무와 소비자의 권리 사이의 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곧잘 선을 넘는 소비자들과 생산자들 모두를 싫어한다. 그리고 매우 영리하게 줄리언 셰프가 잃어버린 근본을 상기시켜 주어서, 결국에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치즈버거

치즈버거는 작중에서도 '부모님이 사주시던 거'라며 추억이라고도 말하지만, 서비스 생산자의 근본, 예술가의 근본을 나타내는 일종의 상징이다. 이와 비슷하게도 마지막에 마시멜로우를 구우며 스모어를 만들어 미국인들의 추억과 근본을 화려하게 불태워버린다. 우리나라도 굳이 치환하자면 달고나, 돈가스, 어머니의 된장찌개 정도로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스태프 : 예술의 숭배자들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는 잔인하지 않은 스릴러를 오랜만에 보아서 매우 즐거웠다. 그런데 줄리언 셰프의 번아웃으로 범행 동기는 이해가지만, 그를 신처럼 따르는 스태프들의 동참은 이해가 힘들다. 예술은 때때로 종교와 같은 숭배자들 만드는 경우도 있으니, 이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영화를 보고 나면 맛있는 치즈버거를 먹는 안야 테일러-조이 때문에 치즈버거가 먹고 싶어 진다. 맥도날드 같은 프랜차이즈로는 영화에서 본 것 같은 느낌을 얻기는 힘드니, 근처 수제버거 집에서 야채 따위는 없는 더블 치즈 버거를 시켜먹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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