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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삼모델 Feb 24. 2020

<1917>모든 사람의 하루는 편집 없는 롱테이크

역사에는 편집이 없다. 

#스포일러 주의


- 편집

우리가 영화를 비롯한 영상 매체를 볼 때, 대부분 편집자의 의도에 따라 시간과 순서를 배치한 장면을 보게 된다. 그 편집으로 인해 우리는 제작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내용의 전달을 더 수월하게 전달받을 수 있게 된다. 액션 장면에서는 특히 그 역할이 빛을 발한다. 빠른 템포로 1~2초마다 전환되는 장면은, 공격하는 쪽과 공격받는 쪽을 번갈아 보여주며, 장면의 긴박감과 숨바쁨을 전달한다. 멋있는 액션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게 더 쉬운 편이다. 배우가 영화를 찍을 때마다 무술을 익힐 수도 없고, 스턴트맨을 활용하기도 쉽워 여러 장면을 찍고 편집하면 훨씬 수월하게 액션을 전달할 수 있다.


- 롱테이크

하지만 촬영 기술이 발달하고, 컴퓨터 그래픽이 향상되어 영화 전체가 편집이 없어 보이는 것처럼 촬영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작품이 2015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버드맨>과 2020년에 촬영상을 수상한 영화 <1917>이다. 영화 전체가 편집점이 없는 롱테이크로 촬영되어 관객이 상황에 쉽게 몰입하게 되어내 자신이 영화 속 사건을 지켜보는 것 같다. 실제로 정말 편집 없이 롱테이크로 촬영한 것은 아니고, 중간중간 배우가 아닌 배경을 비추거나, 화면이 어두워지는 장면이 편집점이다. 이런 영화를 볼 때는 어디가 편집점인지 찾는 재미도 있다. 

배틀필드 1의 참호전 맵, 파스샹달

- 1차 세계 대전

1차 대전은 이미 수많은 영화화로 명작들이 탄생한 2차 대전과는 다르게 영화가 많지 않다. 악역이 분명하지 않고, 참호전이라는 지루한 전쟁의 양상에서 영화화의 포인트를 제대로 찾지 못한 점이 크다. 그래서 영화 1917은 권선징악의 구도보다는 세게 1차 대전 당시의 생생함을 전하기 위해 롱테이크 촬영을 사용하여, 관객을 1차 대전 당시의 병사로 만들어 버렸다. 두 명의 주인공은 특별한 전쟁 영웅도 아니며, 이름을 남기지도 못했다. 전쟁에서 죽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통계상에서 '사상자 1'로 확인될 일개 병사일 뿐이다. 주인공들은 독일군과 연합군 사이의 일종의 완충지대, 노 맨스 랜드를 거쳐가는 무리한 임무를 맡겼다는 점에서 중요한 병사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게임에서도 간단히 체험할 수 있는데, 1차대전을 배경으로한 게임 '배틀필드 1'의 참호전 맵 '파스샹달'에서는 참호 밖으로 머리를 내미는 순간, 적의 스나이퍼나 기관총, 또는 탱크의 포격을 맞고 금방 죽어버리기에, 참호를 통해 싸워야한다. 다른 플레이어들과 동시에 앞으로 돌격하면, 호루라기 소리와 함성 소리가 울려퍼지며, 같이 달려 가지만, 곧 적의 기관총앞에서 선두의 선 내 캐릭터는 어느새 죽어있다. 그리고 조금만 늦게 반응하여 방독면을 못쓰면, 적의 독가스로 내 캐릭터 HP가 깍여나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솜 전투의 장면

- 지역 연대

1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군의 편제는 한 지방에서 징발한 젊은이들을, 한 부대(지역 연대, Pals)에 몰아서 편성하는 식이였다. 영화상에서도 요크셔 연대, 데본스 연대라고 나오며, 부대 이름에 지역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호루라기와 함께, 나를 향한 기관총과 대포로 돌격하는 1차 대전의 땅따먹기식의 참호전 양상에서 부대의 전부가 전멸하는 일이 종종 벌어졌고, 전후에 한 지방에서 특정 연령대의 청년층이 붕괴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2차 대전부터는 부대 편성 체계를 바꾸게 된다. 주인공인 스코필드 병장이 참여한 솜 전투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하여, 연합군 측에 60만 명이라는 엄청난 사상자를 나았지만, 스코필드 병장은 살아남아 훈장을 얻었다. 

좌, 딘잘스 채프먼 / 우, 조지 맥케이

- 두 병사의 차이

딘잘스 채프먼이 연기한 블레이크 병장과 조지 맥케이가 연기한 스코필드 병장의 차이도 눈에 띈다. 블레이크 병장은 형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사지로 내모는 임무에도 의욕을 내보이지만, 솜 전투를 겪고 살아남은 스코필드 병장은 해가 진후에 출발하자고 설득한다. 훈장에 대한 태도도 다르다. 스코필드 병장은 솜 전투에서 받은 훈장을 단순히 와인이 마시고 싶어서 프랑스군의 와인과 바꿔먹었지만, 블레이크 병장은 가족에 보여줘야 한다며 아까워한다. 또한 스코필드 병장은 추락한 독일군 파일럿을 죽이려고 하지만, 블레이크 병장은 살리려다가 파일럿의 칼에 어이없게 죽고 만다. 가족애과 꿈, 그리고 인간성을 지니고 있는 블레이크 병장은 전쟁의 허무함을 드러내듯, 어이없이 사망하지만, 인간성을 일부 잃어버린 스코필드 병장은 살아남는다. 

영화의 명장면

- 촬영

누구나 알 수 있는 두 편집점이 두 군데 눈에 띈다. 독일군 참호로 들어가는 장면과 스코필드가 병장이 총을 헬멧에 맞고 쓰러졌을 때다. 이를 제외하면 편집점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거의 영화 내내 완벽한 롱테이크를 선보인다. 또한 스코필드 병장이 폐허가 된, 프랑스 마을에서 독일군의 조명탄으로 추격당하는 장면은 조명의 연출에 감탄을 자아낸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찍은 거지???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미니어처 세트를 제작해 확실한 계산을 통해 조명을 발사하며 찍었다고 한다. 또한 돌격하는 연합군을 횡단으로 가로지르며 달려가는 장면에서 한 병사의 절박함에 눈물이 난다. 아카데미 촬영상을 받는 것이 당연할 지경이다.

- 사람의 이야기(Oral history)

영화의 마지막에는 샘 멘데스 감독의 할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음을 밝힌다. 정치인 와 군인의 사상자 숫자로 기록된 전쟁의 역사에서, 살아 있던 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영화는 창작이지만, 충분히 있을법한 이야기이다. 지금도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물어보면, 6.25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나의 할머니도 인민군에 점령당한 시골 마을에서 자라며, 인민군들에게 노래를 배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917은 전쟁영화가 아니라 사람의 영화다. 


- 인간성

블레이크 병장은 목장에서 우연히 저장해둔 우유가 나중에 한 아기의 양식이 되도록 나눠주고 물에 빠지고 총에 맞으며, 총도 가방도 모두 잃어버렸다. 자신이 가진 군대의 물건을 모두 잃어버렸지만, 마지막에 병장이 보는 것은 아내와 딸의 사진이다. 전쟁이 인간성을 잃어버리게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무기를 내려놓는다면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을음 나타낸다. 


다른 병사의 하루와 다를 게 없었던, 평범한 두 병사의 1917년의 하루 
그 2년 뒤, 1919년에 세계 1차 대전은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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