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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삼모델 Mar 09. 2020

퐁피두 센터에서 벌거벗은 나체를 보았다.

너무 익숙한 파리의 미술관보다  신선한 어벤저스가 더 좋았다.

- 예술의 도시 파리

파리는 예술의 도시답게, 아름다운 미술관과 유명한 작품들로 가득한 박물관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루브르부터, 오르세, 오랑주리 그리고 로댕 박물관, 군사 박물관까지 EU 소재 학생 비자나 학생증을 지니고 있다면 그 어디든 무료로 입장이 가 능하다. 유럽은 대학생에게 관대하다. 교환학생 신분 덕에 독일 대 학교의 학생증을 가지고 있어 모두 무료로 입장이 가능했다. 시간 의 제약으로 모든 곳을 방문하지는 못하고 파리의 대표적인 미술 관 4개(루브르, 오랑주리, 오르세, 퐁피두)만 방문했다. 


- 너무 넓은 루브르

애초에 루브르는 너무 넓어서 하루 만에 전부를 구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침에 가도 줄 서는 데만 1시간이고 닌텐도 3DS로 주어진 루브르 박물관 가이드 기기를 사용하며 아침 11시부터 저 녁 5시까지 부지런히 돌아다녔는데도 일부 작품만 구경할 수 있 다. 가이드 기기에서 한글로 된 가이드 음성이 나와서, 모든 작품 을 설명 해주긴 하지만, 이걸 다 듣기 전에 배터리가 방전되어 버 린다.

- 모나리자가 뭐라고

밀로의 비너스, 니케의 여신상, 모나리자 유명한 작품 세 가지 앞 에는 사람이 너무 많고,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단체관광객이 너무 몰려 있어 작품들을 천천히 구경하기 힘들다. 특히 모나리자는 더 심한데, 노트북보다 작은 크기의 그림을 보기 위해 한 방을 가득 채 운 사람들과, 펜스를 둘러싼 경호원들 그리고 뒤에서 계속 미는 사 람들까지, 애초에 모나리자를 천천히 감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 신비로운 미소를 느낄 새도 없이 사람의 파도에 밀려서 떠내려 가야한다. 모나리자를 제대로 보려면 서핑을 잘해야 한다.


-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모든 작품을 제치고 나서도 내가 보고 싶은 작품은 따로 있었는 데, Coldplay의 앨범 표지로도 사용되었던,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다. 내가 간 날은 원래 전시하던 곳에 있 지 않아 한참을 헤매었지만, 직원에게 물어보니 다른 장소에 들 라크 루아 특별전을 위해 작품들을 모아 놓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프 랑스의 7월 혁명을 그린 그림을 직접 보면, 생각보다 크다. 하지만 너무 커서 부담스럽거나 경외심을 일으키는 사이즈는 아니다. 조 금만 떨어져서 보면 한눈에 들어오는 크기로, 신 보다는 인간을 위 한 그림이며 혁명은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것임을 나타낸다. 그리 고 혁명의 긴박감과 잔혹성 그리고 혁명에서 인간의 존재에 대해 강력히 어필하는 이 작품 하나만으로 나의 루브르는 최고였다.

- 오르셰의 시계

오르셰는 기차역을 리모델링한 만큼 하나의 탁 트인 건물로 되 어 있어 미술관 특유의 폐쇄적인 느낌보다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느낌이 난다. 유럽 여기저기에 흩어진 고흐의 그림이 있어 여기도 사람이 많다. 또한 예술과 외설의 논쟁에서 빠지지 않는 '세상의 기원'도 여기에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건, SNS 인증샷으로 활용되는 맨 위층에 있는 시계다. 오후의 햇볕으 로 인해 역광으로 찍은 시계와 나는 파리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 달해준다.


- 정원의 오랑주리

으리으리한 다른 미술관들보다는 크기도 작고 아기자기한 정원 느낌이 드는 미술관이다. 공원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모네의 연꽃 연작이 다량 전시되어 있어 자연 정원 같은 느낌이 든다. 흐릿한 색채를 지닌 모네의 연작은 불투명한 창문으로 사물을 보는 것 같 아 나에게는 어린 시절 아파트의 창문을 떠올리게 했다. 게다가 미 술 교과서에 자주 보던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들이 전시 되어 있어 매우 익숙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미술관 전체가 동화책 삽화에 나올 것 같은 그림들로 가득하다.

- 퐁피두에서 나체를 보았다.

현대 미술을 중심으로 한 퐁피두 미술관도 인기가 있지만, 관광 객들은 고전 미술에 관심을 두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관객이 더 적 어 쾌적한 관람이 가능하다. 물론 나의 예술적 역량이 부족했기에 현대 미술은 고전 미술보다 더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미술관 마감 시간쯤에 퐁피두 중간에 있는 광장에서 행위예술 같은 공연 이 시작되었다. 처음에 학교 수업 같은 분위기에서 시작되더니 남 자와 여자를 막론하고 갑작스럽게 하나하나 옷을 벗어 바닥에 펼 쳐 놓기 시작했다. 대사와 연기를 하며 하나를 셔츠와 바지를 벗더 니 특정 모양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그 위로 벌거벗은 사람들이 눕 기 시작했다. 한 사람 한 사람, 옷 하나하나 천천히 벗으며 가지런히 놓았기에 무엇인가 의미가 있을 것임이 분명 하나 프랑스어로 진행되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예술이라고는 하나 공공 장소에서 나체를 드러내는 알 수 없는 예술의 세계를 느끼고 나니 내가 아는 예술의 경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 미술관보다 어벤저스가 더 재밌다.

파리에서 맞은 '어벤저스:인피니티 워'의 개봉 날에 친구랑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 내가 생활하던 독일도 그렇지만 유럽은 자막을 좋아하지 않아 대부분의 영화가 더빙으로 상영되어, 자막 상영 회 차를 잘 알아보고 가야 한다. 게다가 좌석이 선착순이기 때문에, 개봉날 최초 아침에는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한 사람들의 줄이 어마 어마하게 몰렸다. 프랑스어 자막은 제공되었지만, 읽지는 못 하고 영어 듣기 실력을 테스트해야 했다. 그래도 교환 학생과 토플로 다져진 영어 실력이 어느 정도 통하였으나, 와칸다 억양은 도저 히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그래도 논란이 된 자막 번역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볼 수 있었으며, 마지막 엔딩 크레딧 이후 쿠키 영상에 서는 관객 모두가 따라 웃었다.


파리의 미술관은 교과서와 역사책에서 보던 유명한 작품들을 볼 수 있어 신기하긴 했지만 동시에 매우 익숙함을 느낀 장소이다. 반 면에 어벤저스:인피니티 워의 결말은 너무 신선하고 예상 밖의 예 술이었다. 나에게 아직도 예술은 파리보다는 어벤져스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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