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아르바이트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직장동료들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정이라는 게 있었고, 회식도 종종 있었으며, 챙겨주기도 하고
처음 온 어리버리한 나에게 관심도 가져주었으며 먼저 말도 시켜주었다.
나이대는 1살부터 4살, 13살까지 차이가 났지만 가장 고연차인 선생님이 좋은 분이라
그 아래연차들의 분위기도 가족 같았다. 같이 다이어트 내기를 하기도 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술이라던가 나이트라는 것을 처음 가보게됐다.
병원은 서울에 있었고 가까운 광명으로 넘어가서 자주 밥을 먹었다.
(그 때 광명 아파트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뭔가 달라졌겠지? 생각하지만 스무살이었으니까 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밥도 먹고 술도 먹고 나이트도 가면서 그분들과 친해졌다.
그렇게 6시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하고 70만원도 못되는 돈을 받았다.
다행스럽게도 부모님은 그 돈을 달라하지는 않았다.
그 돈으로 차비와 핸드폰 요금 등 내 생활비로 쓸 수 있었다.
보통 문제집을 사거나, 단과 학원에 등록하고 그 외 사람들을 만나는 비용으로 썼다.
그리고 그 해 겨울 크리스마스때 고연차 선생님의 가족과 나머지 선생님들과 같이 정동진에 갔었다.
무척 추웠는데 겨울에 가는 바다는 언제나 그렇듯이 낭만이 넘쳤다.
그렇게 강원도까지 달리고 인천에 와서 수제비를 먹었다.
이렇게 종종 쉬는 날 아니더라도 시간이 맞으면 주말 혹은 연휴 때 종종 놀러갔었다.
같이 화장품도 공구하고, 옆 병원 피부과와도 친해져서 이야기했던 지난 날
그때 참 순수하고 아무것도 몰랐지만 온몸으로 부딪쳤던 그 시간들을 기억한다.
생일이면 같이 밥을 먹고 생일도 챙겨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공동체? 이런 직장이 어디있을까 하는 라떼 시절 이야기다.
아 세월이여....
그래서 나는 병동에 입사하면 이런 분위기는 아니더라도 이거의 반의 반만 따라가도 좋겠다 생각했는데
그건 아주 큰 오산이었다. 물론 실습 때부터 봐서 알고 있었다.
간호사라는 조직이 위계서열이 분명하고 쌀쌀했다는 것을 여러 병동을 돌며 느꼈다.
주사실도 정말 좋았지만 여기도 그 못지 않았던 따뜻한 직장으로 기억하고 있다.
선생님 남사친의 인맥을 통해 건너건너 미팅도 했던 기억도 생각하면.. 현웃...
지금은 그저 웃지요...
그렇게 첫 직장, 첫 직장동료로부터 휴머니즘을 배웠다.
첫 시작치고는 나쁘지 않은 발걸음이었다.
© dariamamont,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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