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실 총무로 일하는 것도 어느 정도 적응되어 갔다.
시험 기간에만 바짝 사람이 몰려 정신 없었을 뿐, 다른 날은 한가했다.
재수생이나 공시생 혹은 자격증이나 시험을 준비하는 어르신(?)들만 계셨다.
그런데 어느 날,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다들 이 동네를 안 벗어났는지 얼굴은 그대로인데 몸만 큰 애가 눈 앞에 나타난 기분이랄까?
초등학교 동창들을 몇몇 만났다.
여자아이 2명이었는데 둘 다 나하고는 그리 친하지는 않은 그런 사이였다.
그러나 이렇게 힘든 시기 만나면 이야기하게 되고 서로의 안부가 궁금한 법이다.
너는 어쩌다 재수하게 됐냐. 앞으로 전공은 어느 쪽으로 갈거냐 부터 시작해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 남자친구는 있냐... 등등
그런 시기에 만난 친구였던지라 친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뭐랄까.
너도 참 고생한다야.. 싶은 그런 인간적인 마음을 느꼈다.
재수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짐을 지고 있는 것이었으므로
지금 생각해보면 1년.. 남들보다 늦게 대학에 가는 것인데 이렇게 공부한다고 해도
고등학생 때보다 잘 나온다는 보장도 없고 부모님에게는 미안한 그런 마음이 공존했다.
한편으로는 고등학교 3년동안 성적이 잘 나오나 못나오나 스트레스 받으면서 공부했는데
나도 연애도 하고 싶고 놀고 싶다는 마음, 청춘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재수생에게 이 모든 것은 사치였다.
A는 사회복지 계통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B는 알고보니 예고 출신이었는데 조소과를 목표로 수능을 준비한다고 했다.
수능이 끝나도 실기를 준비해야하기 때문에 수능이 끝났다고 마음편히 놀 수 없다고 했다.
바로 학원으로 가서 실기시험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4년제 간호학과가 목표였다.
가끔 공부가 잘 되지 않을 때, 어떤 날은 마음이 뒤숭숭할때 가끔 이 친구들과 이야기했다.
왜. 그럴 때가 있었다. 말하고 싶은데 아침 일찍 집을 나와서 밤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나면
내가 오늘 누구누구와 이야기 했는지 떠올려보면 어떤 날은 업무적인 대화를 한 것 외에는
아무하고도 말한 적이 없는 날이 있었다.
그래서 뭐랄까. 사람이 참 그리웠고, 말할 사람이 필요한데
지금 재수생 신분으로는 그런 것 조차 사치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럴때 이 친구와 이야기하면 속이 조금은 뚫리는 느낌, 거미줄 치고 있던 입에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은 때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들은 치열하게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외로움과 사람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이번만은 대학에 가야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며 각자의 자리에서 싸우고 있었다.
그 싸움의 결과는...
1년 후
A는 OO대 사회복지과에
B는 OO대 조소과에
나는 전문대지만 간호과 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