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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Jul 20. 2019

[단편소설] 그 노인의 노래 (3)

그 노인의 노래 (3)


시현은 어제 수첩에 적은 현장 취재 내용을 노트북에 옮겼다. 글자 수가 4000자에 달했다. 자세하고 생생했다. 핵심 위주로 다듬자니 모든 게 중요해 보였다. 선배의 감탄이 환청처럼 들렸다. 그대로 온라인 기사 작성 송고 시스템에 전송했다. 잠시 뒤 선배에게 전화하자 칼바람 같은 반응이 돌아왔다. 이것저것 주워 담기만 했지 핵심이 없네. 선배가 말한 핵심은 범행의 순간이었다. 스모킹 건을 챙기는 게 경찰의 일이라면 우리는 격발의 순간을 써야 할 거 아냐. 총성이 울리기 직전과 직후의 풍경. 그 사람 좋다는 노인네가 도대체 왜 그런 끔찍한 일을 한 건데? 대답을 못 하고 우물쭈물하자 선배가 말을 보탰다. 그 노인네에게 방아쇠를 당기게 한 바로 그 순간을 묘사해주는 것. 그런 게 바로 사람들 시선을 사로잡는 기사의 핵심이라고. 선배의 잇따른 지적에 갑자기 미궁 속에 빠진 기분이 들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동아줄 같은 음성이 귓가로 내려왔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선배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침을 삼켰다. 나는 죽은 애 부모 소재 파악해야 하니까 너 할 일 없으면 그 노인네 면회 좀 바로 가봐라. 경찰이 월요일까지 입을 다무시겠다니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잖아?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런 일을 저지른 건지 말이야. 시현은 이마에 손을 댔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동아줄인 줄 알았는데, 낚싯줄이었다.


경찰서로 들어가 자주 찾던 민원인 대기실에 앉았다.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면회에 가서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하라는 거야? 왜 자기가 면회하지 않고? 민원인 대기실 탁자를 내리쳤다. 지나가던 경찰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 아무 일 아닙니다. 저 A일보 수습기자입니다. 경찰은 알 만하다는 표정으로 가던 길을 갔다. 수습기자는 경찰들에게 존재감이 없다. 경찰서를 들락거리는 머릿수가 워낙 많은 데다 아직 중심을 못 잡고 어리바리하기 일쑤여서다. 관심을 보이는 건 그나마 어린 경찰들뿐. 같은 사회초년생 입장에서 막연한 유대감을 느끼는 듯했다. 강력5팀 사무실을 처음 찾아 큰 소리로 인사했을 때, 고요를 깨고 커피 한잔하자며 말을 건넨 것도 팀 막내 박 순경이었다. 이후 시현은 시간이 날 때마다 그를 만나 별 것 아닌 정보를 나누며 친분을 다지곤 했다. 기자들 사이에 도는 인기 아이돌의 연애 관련 찌라시를 슬쩍 보여주면, 박 순경은 친한 선배에게 구했다며 수사용 루미놀 용액 스프레이를 구경시켜주곤 하는 식이었다. 각자 선배와 팀장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점도 비슷했다. 왠지 입사 동기 같은 묘한 연대의식이 싹텄다. 그러고 보니 박 순경이 있었다. 낚싯대를 꺼내는 기분으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신호음이 끝나자마자 미끼를 던졌다. 박 순경님, 잘 지내시죠? 그거 왜 살인사건 때문에 주말 근무할 것 같아 연락했어요. 저도 오늘 근무거든요. 잠시 경찰서 들렀는데 순경님도 근무? 수화기 너머에선 대답 대신 웅성거림이 희뿌옇게 들려왔다. 아, 네 기자님. 죄송해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정신없네요. 순간 묵직한 게 걸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곧바로 낚싯대를 당겼다. 아, 박 순경님 팀 담당 사건이에요? 잠시 말이 없던 박 순경은 미안하지만 바쁘니 나중에 통화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강력 5팀 담당 사건이라. 이 사실은 핵심인가. 아무튼 얼음 같은 선배의 마음을 조금은 녹일 수 있지 않을까. 시현은 그 소중한 불씨를 수첩에 고이 담았다.


유치장이 있는 수사지원팀으로 향했다. 담당 경찰에게 유치인 면회를 왔다며 노인 이름을 댔다. 경찰은 시현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면회신청서를 건넸다. 이름 항목부터 고민됐다. 실명을 쓰자니 기자임이 들통났을 때가 염려됐고, 가명을 적자니 법적 문제를 일으킬 것 같았다. 고민은 다음 항목을 보는 순간 끝이 났다. 꾸며낼 수 없는 주민등록번호.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연락처까지 빠르게 작성했다. 마지막 항목은 관계. 관계는 친척이라고 적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경찰에게 제출하자 대기자가 없어 곧바로 가능할 거라며 잠시 기다리라 했다. 유치장 안쪽을 다녀온 경찰은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다. 꾸며 쓰지 않길 잘했다고 안도하며 신분증을 건넸다. 유치장으로 가는 복도엔 발소리만 메아리처럼 울렸다. 침이 꿀꺽 넘어갔다. 함께 걷는 경찰에게 행여 그 소리가 거슬릴까봐 발을 더 크게 굴렀다.


면회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사진 속에서 봤던 노인이 나무늘보처럼 천천히 고개를 들어 시현을 쳐다봤다. 아… 안녕하세요? 노인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노인 뒤편 의자에 앉아있던 경찰이 하품하며 말했다. 면회 시간은 30분입니다. 노인의 눈이 시현의 눈을 가만히 바라봤다. 시현은 속마음이 읽히는 것 같아 괜히 시선을 피했다. 노인과 시현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경찰이 눈을 감더니 목을 긁었다. 시현의 말이 머리를 거치지 않고 입밖으로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저, 저는 할아버지의 먼 친척인데요. 그러니까 하, 할아버지 누나의 첫째 아들의 아들이에요. 잠시 기다려봤지만 노인은 대답이 없었다. 저희 할머니가 소식 듣고 가보라고 하셔서 왔어요. 필요하신 건 없나요? 노인은 무언가 떠올리려는 듯 눈가를 찌푸렸다. 시현은 안도했다. 당최 넌 누구냐며 화를 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신호였다. 경찰은 그새 하품을 또 했는지 턱을 아래로 길게 뺀 채 손가락으로 눈가의 눈물을 훑어내고 있었다. 이제 찌를 던져야만 했다. 시현은 입에서 나가기 주저하는 문장을 급하게 밖으로 밀어냈다. 할머니랑 아기 죽인 거… 할아버지 맞아요? 도대체… 왜 그러셨어요? 그때였다. 노인의 눈에 갑자기 힘이 들어갔다. 마른 입술을 달싹이던 노인이 처음으로 음성을 뱉어냈다. 내… 내가 죽였어. 그만하고 싶었다. 자세한 상황은 기억이 안 나. 별안간 튀어나온 노인의 말에 경찰이 눈을 뜨더니 종이에 무언가를 느릿느릿 적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기억이 안 나신다니요. 노인의 눈이 점점 커졌다. 서릿발 같은 실핏줄이 보였다. 노인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댄 듯 크게 울렸다. 내가 죽인 게 맞아. 그만하고 싶었어. 자세한 상황은 기억이 안 나.


면회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어느새 분침이 다섯 칸을 이동한 뒤였다. 노인에겐 어떤 질문을 던져도 번번이 허탕이었다. 대답이 늦어져 다른 말이 나오나 기다려보면, 역시나 같은 대답이었다. 졸음과 사투를 벌이던 경찰은 이제 입을 벌리고 고개를 뒤로 꺾은 채 아예 자고 있었다. 엷게 코 고는 소리까지 들렸다. 시현은 할 만큼 했다 싶어 일어나 경찰을 깨우려다, 문득 선배의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떠올랐다. 취재원이 입을 다문다? 그땐 허풍으로 도발해봐야 해. 그럼 최소한 이건 알게 된다. 정말 없는 건지, 아니면 숨기고 있는 건지. 다시 자리에 앉아 노인을 향해 속삭였다. 할아버지, 사실 전 할아버지의 먼 친척이 아니라 A일보 기자예요. 노인이 고개를 갸웃하며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그리고 그날 사건에 대해 다 알고 있어요. 노인의 눈과 입이 동시에 벌어졌다. 할아버지가 말씀 안 해주셔도 사실대로 쓸 거예요. 노인의 목울대가 위로 솟구쳤다가 천천히 내려왔다. 쓰기 전에 확인이나 한 번 하러 온 겁니다. 노인이 몸뚱이를 뒤척였다. 입질인가. 급기야 마른세수를 하기 시작한 노인이 말하기만을 기다렸다. 잠시 뒤, 다시 잠잠해진 노인의 대답은 이랬다. 내가... 내가 죽인 게 맞다고.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지만 그런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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