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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Jul 26. 2019

[단편소설] 그 노인의 사정 (6)

그 노인의 사정 (6)


김 영감은 자신의 말에 과장이 섞여 들어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노인복지센터 중앙 벤치에서 수많은 노인이 경청하는 가운데 이야기를 풀고 있자니 흥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야기는 실제 보고 만지고 겪었던 내용보다 더 크게 부풀어 올랐다. 작은 칼자국은 회칼에 썰린 듯한 대형 흉터가 됐고 몸과 침대 일부를 적셨던 피는 홍수에 버금가는 대량 출혈이 됐다. 초선의 신들린 기술에 대해선 그만 복상사의 위기를 느낄 정도였다고 표현해 버렸다. 사실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오히려 두 번째 할 때는 김 영감의 물건이 영 말을 듣지 않아 초선이 고생깨나 했다. 김 영감은 떡 벌어진 노인들의 입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이야기의 1막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하여! 이 몸이 생각하기엔 아무리 봐도 초선은 조선족 범죄조직의 일원 같단 말이여. 어찌 보면 내가 초선의 손아귀에서 살아나온 것만 해도 기적이제. 저 멀리 구석에서 이쪽을 향해 귀를 기울이는 박 영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김 영감의 어깨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한껏 올라갔다.


2막은 필승 아저씨와 구두 영감의 이야기로 시작했다. 직접 알아보고 다닌 내용이다 보니 뼈대가 튼튼했고 노인들의 관심에 흥이 나다 보니 살이 절로 붙었다. 내가 보기엔 필승 아저씨 풍이 온 것도 초선이 뭔가 칼을 써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 칼을? 그려, 왜 그 짓을 두 번이나 하고 나면 맥없이 뻗어있을 것 아닌가베. 그때 칼을… 칼을 써서 뭘 허는디? 낸들 아나. 뭐, 장기를 떼가는지 어쩌는지... 그 튼튼하던 양반이 갑자기 몸에 이상이 오려면 그 정도 일은 있지 않았겠는가? 노인들이 동시에 고개를 뒤로 빼며 얼굴을 구겼다. 구두 영감도 그래. 그 노인네, 구두는 그 모양이어도 몸은 튼튼해서 빨빨대며 잘 돌아다녔는데 갑자기 죽었잖여. 시신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고. 그거 인육 거래된 거 아녀? 김 영감은 구급차가 구두 영감의 시신을 실어갔다고 들었지만 무대 위 스타가 된 마당에 그게 뭐가 중요한가 싶었다. 또 누가 알랴. 정말 초선이 조선족 범죄조직의 일원이고 구두 영감이 진짜 인육 거래가 됐는지.


일주일 사이 소문은 가을바람을 타고 종로3가에 들불 번지듯 퍼졌다. 김 영감은 소문의 화력을 점검해 보고자 종로3가에서 고령층 밀집도가 가장 높다는 노인 콜라텍을 찾았다. 하루 방문 인원이 1000명에 달하는 곳이었다. 초선의 이름은 여기저기서 경보음처럼 울려댔다. 기대 이상이었다. 초선의 이름은 인연이란 이름의 다리를 건너고 건너 결국 종로3가를 오가는 모든 노인의 귀에 도달할 것 같았다. 노인 콜라텍을 나서 종로3가 극장 골목으로 향했다. 골목을 한참 서성였지만 초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김 영감은 숙제를 마친 학생처럼 편안한 기분으로 양귀비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끝나자 양귀비의 목소리가 귓가를 상쾌하게 때렸다. 영감님! 어쩌면 소문을 이렇게 잘 냈어요? 우리 당장 봐요. 김 영감의 입꼬리가 콜라텍의 노인들처럼 들썩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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