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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Jul 25. 2019

[단편소설] 그 노인의 사정 (3)

그 노인의 사정 (3)


귀빈장(貴賓莊)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복희는 이제야 좀 살 것 같았다. 아직 선선한 가을 날씨라지만 바깥에 두시간가량을 서 있었더니 팔다리에 감각이 희미했다. 몸이 서서히 얼어붙는 동안 맞은 편의 초선은 남자를 두 명이나 교체해갔다. 자리를 옮길까도 싶었지만 그놈의 자존심이 뭔지. 복희는 괜히 가방을 들쑤시며 5000원짜리 한 장을 꺼내 프런트 데스크 창구 너머로 건넸다. 귀빈장은 복희의 단골 여관이다. 처음 방문했을 땐 만원을 냈지만 다섯 번째 방문 이후부턴 5000원만 낸다. 경칩이 삐걱거리는 문을 열자 입구 왼쪽 아랫부분을 막고 선 침대 머리가 보였다. 방 크기는 침대 하나가 간신히 들어갈 정도였다. 복희는 방에 들어가 숄더백에서 향초를 꺼내 피웠다. 단골을 만드는 복희만의 서비스 중 하나다. 처음 데려온 이 남자는 딱 봐도 초짜였다. 복희를 처음 봤을 때부터 떡 벌린 입을 여태 다물 줄 몰랐다. 

원하시면 씻으셔도 되구요. 전 씻고 왔어요... 남자는 복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샤워실로 달려들어 가더니, 향초에 촛농이 채 고이기도 전에 뛰쳐나왔다. 비아그라 필요하세요? 비아그라는 한 알에 3000원이고... 아니면 주사도 있고. 기계는 공짜구요. 남자는 고개를 좌우로 힘차게 저었다. 그런 건 필요 없다고 했다. 복희는 남자의 옷을 벗기고 몸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성이 뭐예요. 김? 스탠다드시네요. 그럼 김 영감님이라고 부를게요. 그런데 어쩐지 이상했다. 김 영감은 차렷 자세로 누운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나무 토막을 만져대는 기분이었다.

10분이 지나도록 김 영감의 물건이 말썽이었다. 이제 일어났다 싶으면 다시 눕고, 드디어 정신을 차렸나 싶으면 어느새 혼절했다. 긴장하셨나 보다. 비아그라 하나... 드려요? 김 영감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말없이 고개만 저었다. 그럼 기구를 써보세요. 이건 말했다시피 무료 서비스에요. 기구는 지름 4cm에 길이 15cm 정도 되는 원통형 물건이다. 아래엔 구멍이 나 있고 위쪽엔 펌프가 달렸다. 구멍에 물건을 넣고 펌프질을 하면 된다. 비아그라는 아무래도 화학 약이다 보니 몸에도 무리가 간대요. 비아그라 먹고 저세상 가신 양반도 여럿이던데. 호호. 우리 나이엔 역시 아날로그로. 그쵸? 긴장을 풀겠다고 던진 농담인데 김 영감의 얼굴이 오히려 구겨졌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아보기 힘들었다.

귀빈장에 들어온 지 40분이 지나서야 겨우 일이 끝났다. 기구를 썼는데도 평소보다 시간이 두 배 이상 걸렸다. 복희의 왼팔 떨림이 더욱 격해졌다. 팔다리가 갈수록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아들이 출소할 때까지 이제 딱 1년만 버티면 되는데... 아들 생각을 하다가 또 눈물이 날까봐 복희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김 영감은 벌러덩 누운 채 입을 벌리고는 멍하니 천장을 보고 있었다. TV 축구 중계를 보면 연장전까지 다 뛴 선수들이 꼭 저렇게 누워있더라만. 복희는 한심한 표정을 애써 지우며 김 영감의 손을 잡아끌었다. 인제 그만 일어나세요. 나가셔야죠. 김 영감에게 5만원짜리를 받고 만원을 거슬러줬다. 3만원 아녀? 분명 아까 귀빈장으로 출발할 때 4만원이라고 했건만 김 영감은 딴소리를 했다. 왜 이러세요. 아까 제가 오는 길에 분명 4만원이라고 말씀드렸는데. 김 영감은 금세 풀죽은 표정이 됐다.

지갑에 4만원을 넣고 보니 김 영감은 그새 표정이 다시 살아나 복희를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김 영감의 얼굴을 들여다보다 문득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복희는 지갑을 열어 만원을 꺼낸 뒤 김 영감에게 건넸다. 영감님, 오늘은 처음이니까 특별히 할인해드릴게요. 김 영감의 얼굴이 어두운 방에 켜놓은 전구처럼 환해졌다. 빛나는 전구로 가까이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김 영감의 눈이 가자미처럼 복희 쪽을 향했다. 초선이라고 들어보셨죠? 갸우뚱하는 김 영감의 고개. 모르나 보네. 복희는 지갑에서 3만원을 더 꺼내든 뒤 초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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