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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해 먹고살지?

내 삶의 주인으로 살기 위한 출발점

by 엄재균

또 한 학기가 마무리되어 간다.

그동안 쌓여둔 과제물을 채점하고 기말고사를 치르면서 종강을 앞두고 있다.


대학에 있으면 시작과 끝이 더 자주 있음을 느낀다. 기업체나 공공기관에서는 연간 계획을 수립하고 11월 말 즈음이 되면 사업 결산하고 12월에 차기 연도 사업계획을 수립하면서 마무리한다. 물론 월별, 분기별로 계획 대비 실적을 평가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시작과 끝’이 일 년에 한 번이다. 대학은 그 기간을 두 번 거친다. 1학기와 2학기로 구분하고 중간에 쉼의 시간인 방학도 함께 주어진다. 사실 네 차례의 ‘시작과 끝’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기에 상대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더 느리게 느낀다. 기업에서는 ‘어느덧 1년이지만, 학교에서는 벌써 한 학기를 마치는구나’라고 느끼기에 시간 흐름에 대한 감각이 조금은 다르다. 물론 마감이 매일 돌아오는 기자들도 있지만...

이번 학기도 코로나19로 인해 이론 강의는 비대면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학생들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모니터로 보는 것과 같은 공간에서 얼굴을 마주 보면서 만나는 것은 너무 다르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과제 채점을 하면서 학생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이번 학기에는 산업공학에서 공학도에게 경제성을 가르치는 과목인 ‘경제성공학’이라는 수업을 진행했다. 공학도가 아무리 우수한 기능의 기술을 가진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여도 경제성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없다면 그 기술과 서비스는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공학에도 필요하지만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현실에서 투자를 할 때 금리와 주식과 채권 수익률과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 더구나 실생활에서 전세를 월세로 전환할 때의 수익률 차이, 혹은 장사를 시작할 때 매출 계획과 손익분기 분석 등과 같이 경제적 사고방식에 대한 훈련은 현실 생활에서도 꼭 필요하다. 철학을 철학과 학생들만 들어야 할 필요가 없듯이 경제도 경제학과 학생만이 들을 이유가 없다. 철학과 경제는 학과를 떠나 누구나 배워야 할 소양이다.

돈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속성인 구매력과 수익력뿐만 아니라 현금흐름의 시간적 가치에 따라 수익률을 계산하고 사업성을 분석 및 평가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목적이다. 결국 산업현장에서 일어나는 대안을 평가하고 선택할 때 경제적인 관점에서 판단하기 위해 돈의 가치로 평가하는 사고 훈련이다. 선택에는 항상 기회비용이 따르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경제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은 산업공학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지식이고 삶의 방식이다.



최근에 밀린 과제물을 채점하였다.

과제물 주제 중의 하나가 ‘왜 배우는가? 그리고 어떻게 배울 것인가?’라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학생으로서 자신을 한 번쯤 돌아보면서 왜 공부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배울 것인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하는 것이 과제의 목적이었다.


채점을 하면서 어느 학생이 솔직하게 쓴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학점을 따기 위해 그리고 남들이 하니까”라는 글부터 시작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구구절절 얘기하면서 “짧은 인생이기에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기 위해 배우고... (중략) 삶에 대한 열정을 다시 품을 수 있는 과제이다”라고 깜찍하고 진중한 생각을 담은 글도 있다. 그 가운데 내 눈에 확 들어오는 다른 학생의 글이 있다.


“친구들과 만나면 자주 하는 대화가 ‘뭐 해 먹고살지?’라는 주제”라고 하였다. 그렇구나, 나는 그 시절에 생각하지 못했던 고민을 요즘 학생들은 일찍이 철이 들어 고민하고 있다. 물론 복학생이긴 하지만 생각이 진지하다.

채점을 하다가 문득 예전 학창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나 역시 아무 생각 없이 남들이 가니까 대학에 들어왔고 남들 따라 공부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그 누구도 얘기해 주는 선배도 교수도 없었다. 이미 다른 글에도 썼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마치면서 현실의 코앞에 닥쳐서야 고민했다.

당시 나 스스로 고민했던 질문이 “뭐 해 먹고살지?”였다. 이 학생이 던진 질문과 똑같았다. 이 질문에서 시작하여 삶의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 결국은 배운다는 것은 질문을 하기 위한 과정이고 훈련이다. 아직도 교실에서는 예전과 다름없이 질문하는 학생들이 드물다. 나는 학생들에게 무조건 외우지 말고 읽고 쓰고 토론하는 과제를 자주 연습하게 한다. 이론 강의를 짧게 하고는 Zoom을 이용하여 소그룹 모임을 만들어 조별로 토론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잠깐씩 소그룹에 들어가면 학생들끼리는 활발하게 잘도 얘기하고 토론한다. 교수가 없으니 오히려 더 활기차고 주도적으로 학습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토론한 결과를 조별로 발표한다.


다른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의 발표는 서툴다.

파워포인트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키워드를 적어 발표하게 하니 조금은 힘들어한다. 파워포인트를 쓰면 그 내용을 그대로 읽는 경우가 많아 본인이 이해하지 않고 그 내용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리고 발표에 대한 실패가 두렵기 때문에 파워포인트에 의존하게 된다. 요즈음 기업에서도 발표할 때 파워포인트를 사용하지 못하는 회사가 많다. 화려한 그래픽을 만드느라 시간만 허비하고 정작 내용은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소통에 방해가 된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중요한 줄거리를 그림으로 그려 머리에 떠올리는 훈련을 하면 발표를 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공감을 받을 수 있다.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뭐 해 먹고살지?”


배움은 결국 이 학생이 던진 질문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이 질문은 자신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려는 의지이고 그 첫걸음이다. 학생의 질문에 박수를 보낸다.

사실 교수는 ‘왜 그리고 어떻게 배울 것인가’라는 기본적인 문제의식을 학생들에게 전달할 수만 있다면 그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다음은 학생들 몫이다. 학생들이 왜 배우는지를 알게 된다면 어떻게는 스스로 터득할 수 있다. 누가 강요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학습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지적으로 발전할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이 질문이 꼭 학습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도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로 생각의 폭과 깊이를 확장할 수 있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결국은 ‘왜?’라는 질문은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출구를 찾기 위해 나오는 것이 아닐까?

뭐 해 먹고살지?

왜 배우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우리가 살면서 놓치지 말아야 질문이다.



[Photo by The 77 Human Needs System on Unslp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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