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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들렌 - 잃어버린 향기를 찾아서

최고의 맛을 보여 주세요

by 엄재균

집안에 레몬 향기가 가득했다.

부엌으로 가니 딸이 레몬 껍질을 강판에 간다. 제스트라 불리는 성긴 가루로 만든다.

“뭘 해?”

“마들렌 만들려고요” 대답한다.

딸은 거의 2년을 제과 클래스를 다녔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학교 직장도 관두고 자기가 하고 싶은 파티시에가 되겠다고 학원을 다녔다. 아카데미에서 배운 것을 집에서 실습하는 중이었다.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껍질을 깐 레몬으로는 즙을 만든다. 집안에 온통 레몬 냄새다.

오랜만에 맡는 상큼 생큼한 냄새다.

달걀, 설탕, 베이킹파우더, 밀가루, 우유, 버터를 넣고 레몬향을 더해 가운데가 볼록 튀어나온 가리비 조개 모양이다. 예쁘게도 생겼다.


가장자리 부분은 옅은 갈색이고 중간에는 노란 레몬색으로 살짝 솟아나 있다.

겉은 설탕을 씌웠는지 매끈하면서 얼음조각처럼 약간은 불투명하다.

오븐에서 마들렌이 나왔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상큼한 레몬향을 맡으며 마들렌을 맛보았다.

눈을 살짝 감고 한입 베어 먹었다.

겉은 바삭한데 속은 촉촉하고 부드러웠으며 마지막 느낌은 달콤했다. 상큼한 레몬향이 온몸으로 퍼졌다. 이런 맛과 향기는 처음 경험한다. 새로운 세상을 처음 경험한 느낌이었다. 어릴 적, 한여름에 작은 통에 들고 다니면서 파는 아이스케이크라고 부르는 얼음과자를 처음 맛보았을 때 느꼈던 전혀 새로운 세상을 맛보았던 감정이었다. “아~이~스 깨키~!” 외침과 함께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남는다. 그것은 신세계였다. 첫 경험은 언제나 강렬하게 기억 속에 새겨진다.


지금껏 제과점에서 만든 마들렌을 많이 먹었지만 이같이 독특한 식감과 향기를 느낄 수 없었다. 손으로 만들고 금방 구워 나와서일까? 사랑하는 딸이 만들어서일까? 어쨌든 향과 식감이 전혀 다르다. 고급한 느낌이다. 딸 덕분에 잃어버린 향기도 찾을 수 있겠다.


몇 년 전, 나는 독감을 심하게 앓고 난 후부터 후각기능이 떨어졌다. 처음에는 즐기던 커피 향기도 맡을 수가 없었다. 향기를 맡을 수 없으니 커피뿐만 아니라 모든 음식의 맛을 즐길 수가 없다. 지금은 나아지기는 했지만 예전 같지는 않다. 향은 음식 맛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않는다. 지나간 기억과 함께 추억의 감정까지도 불러낸다. 후각이 기억을 불러내는 것을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한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유래했다. 책을 사놓고는 몇 장을 넘기다 포기하고 ‘언제 가는 꼭 읽을 거야’라고 다짐하고 있는 책이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마르셀은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냄새를 맡으면서 불현듯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마들렌 향기를 맡으면서 오랜 기억을 되살린다.


나에게도 식감과 음식 향에 대한 특별한 경험이 있다. 일본 도쿄를 방문할 때 초청 기업의 회장이 직접 안내한 150년 역사를 가진 어묵을 파는 오미카세 가게를 갔다. 도쿄 특급호텔에 있는 요릿집이었다. 가게 입구부터 150년 전통을 자랑하듯 예사롭지 않게 생긴 정문을 들어가면서 단정하게 꾸민 전형적인 일본 정원을 거치며 가게로 들어간다. 도쿄의 고급 식문화를 물씬 느낄 수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어묵요리가 별거 있겠나 싶으면서 가게 안 대형 원탁 자리에 앉았다. 요리사는 가운데 있으면서 직접 어묵요리를 해서 테이블 위로 금방 튀기고 삶은 어묵을 올렸다. 처음 입에 넣어 씹으면서 바싹거리는 식감과 함께 삼킬 때의 오묘한 향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식감과 향기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사카이 회장은 한국 역사에 대해서도 해박하여 식사 후 긴자 거리에 있는 칵테일바로 자리를 옮겨 술을 마시면서 한국과 일본 역사를 얘기하면서 일본의 과오를 스스럼없이 얘기하곤 했다. 나와는 약 20년 차이 나는 연배였지만 한국에서 온 손님에 대한 예우가 정중했다. 지금도 한국에서 어묵을 먹을 때면 지금은 고인이 된 사카이 회장과 그 장소를 기억에 떠올리면서 흐뭇한 추억에 잠긴다.


음식에 대한 경험은 후각과 미각을 통해 온 몸으로 느낀다. 기억은 뇌의 장기기억에 남긴다. 그 음식을 먹을 때마다 해마에 저장된 장기기억을 불러낸다. 독일의 보흠 루르대학에서 후각을 지각하는 뇌피질이 기억중추인 해마의 정보 축적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 후각과 기억과의 관계를 확인한 것이다. 시각이나 청각을 통한 기억은 주로 단기 기억이라면 후각을 통한 기억은 장기기억이다. 또한 후각은 추억이 주는 감정적 느낌을 다른 감각에 비해 훨씬 더 잘 전달한다고 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처럼 마들렌 향기를 통해 불러 낼 기억은 나에게는 없다. 그런 강렬하고 오래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딸이 만든 레몬 글레이즈 마들렌 덕분에 이제는 세월이 흐르면 소환할 기억과 추억이 생겼다. 집에서 연습으로 만든 마들렌과 마치 금괴처럼 생긴 휘낭시에를 아내와 나는 시식하고 평가하면서 맛과 향기를 즐겼다. 딸이 결혼 전에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과정은 가족 모두가 마들렌, 휘낭시에와 각종 디저트 향과 맛을 함께 한 순간들이다. 학교라는 안정된 직장에서 나온 딸은 이제 경쟁이 치열한 디저트 쿠키 시장에 뛰어든다. 딸과 함께 가게를 구하기 위해 다닌 후 어렵게 가게를 구했다. 이제 임차인이 나가면 본격적으로 준비하여 디저트 가게를 오픈할 예정이다.


아내와 딸은 인테리어를 어떻게 꾸며야 하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코로나19가 지속되면서 외국에서 제과 제빵을 공부하던 사람들이 중도에 돌아오면서 최근에 강남을 중심으로 가게를 많이 오픈한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 디저트 케이크에 대한 문화가 일천하다. 중장년 세대는 식사 후 커피 마시는 정도의 문화는 있지만 디저트 케이크까지 넘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젊은 세대의 문화는 다르다. 유럽처럼 커피나 홍차와 함께 디저트 케이크를 함께 즐긴다. 특히 오후 느즈막 즈음이면 커피나 홍차와 함께 디저트 쿠키가 생각날 때가 있다. 영국과 홍콩에서는 “애프터눈 티”라고 불리는 식문화가 있다. 강남의 유명 제과점을 가면 젊은 청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디저트 케이크를 즐기려고 한다. 웬만한 레스토랑의 식사비용보다 비싸다.


5월이면 서판교에서 오픈할 계획이다.

사업자등록을 내면서 상호를 함께 고민하다가 최종적으로 딸과 사위는 “아***”로 결정했다. 이름이 조금 낯설기는 하지만 내가 먹은 마들렌과 휘낭시에 중에 최고의 맛과 향기가 있으니 문전성시를 이루지 않겠는가? 오해는 마시라. 딸이 만든 것이라고 편애한다는 편견은 잠시 접어두시라.


먹는장사는 맛이 최우선이다. 물론 서비스도 따라와야 하겠지.

맛은 최고를 지향한다.

그러니 잘 되지 않을까? 아니 잘 될 수밖에 없다.


젊은 청춘이 시작하는 사업에 함께 응원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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