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생들은 왜 그러지요?
도대체 수업시간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질문하면 아무 반응이 없어요~"
"맞아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요."
점심을 먹으면서 맞은편에 있는 교수가 입을 떼면서 대화를 이어간다. 나는 그새 참지 못하고 웃음을 활짝 지으면서 찬물을 붓는 소리를 했다.
"'요즘 애들~'이라고 하는 사람은 거의 꼰대라는 걸 아세요?"
지난 3년간 코로나로 인해 고등학교에서 비대면으로 수업한 탓인지 모르지만 사실 강의시간에 학생들의 반응이 없는 것은 맞다. 아마 코로나 팬데믹 3년간 교실에서 친구를 만나지 못하고 비대면으로 수업한 결과로 나타난 두드러진 현상이다. 학생들도 코로나 전염병의 피해자이다. 그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겨눌 이유가 없다. 불안한 청춘 시절에 마음은 들끓고 있겠지만 몸은 그렇게 심드렁하다. 아니, 별 생각이 없다. 이해가 간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솔직히 대학시절에 공부를 제대로 한 기억이 없다. 오랜만에 큰 마음먹고 학교 도서관으로 향하는 대학 정문에서 웅장하게 생겨먹은 탱크가 중무장한 군인들과 함께 정문에 떡하니 버티고 막고 있었다. 아예 학교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쿠데타에 성공한 후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한 때였다. 전국 대학에서 일어난 데모를 막기 위해 군부대를 동원하여 학교전체를 봉쇄하여 학생들의 출입을 막았던 것이다.
한 세대를 통칭하는 단어가 많다.
산업화 세대, 민주화 세대, 386 세대, X 세대, Z 세대, N포 세대 등이 있다. 나는 베이비붐 세대(1955년 ~ 1963년)에 속한다. 어떤 한 세대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각 세대별로 꼬리표를 붙여 범주화하는 것을 나는 싫어한다. 나도 모르게 그 집단 속으로 빨려드는 유쾌하지 않은 느낌이 든다. 베이비붐 세대란 꼬리표에는 단지 ‘출생률 급성장’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베이비부머는 6.25 전후의 궁핍함 속에서 자라 공통의 경험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 또한 개인별로 아주 다양한 경험을 한 인격체들이다. 우린 어떤 특징들이 있을까?
베이비부머는 노부모를 부양하고 동시에 결혼을 늦게 하는 성인자녀까지 돌보는 '더블케어'를 해야 한다. 한국 경제가 급속하게 성장하는 시기에는 나이가 들면 당연히 결혼하고 독립하는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저성장과 함께 미취업 청년이 많다. 경제적으로 독립을 못하니 결혼까지 늦춘다. 때문에 부모와 함께 사는 나이 든 자녀가 많다. 운 좋게 결혼한 자녀라도 부부가 맞벌이를 하면 어린 손주까지 양육해야 하는 '트리플 케어'까지 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갈수록 수명은 길어져 병든 노부모까지 간병하면서 자신의 건강은 돌볼 시간이 없어 늘 불안하다.
그렇다고 베이비부머 자신의 노후는 자식에게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다.
베이비 부머들은 1990년에서 2000년 초 사이 몇 차례 지나간 주식광풍으로 인해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모아둔 종잣돈을 잃었다. 그나마 고이 모아논 비자금마저 자녀 대학 학비와 결혼 자금으로 기꺼이 보태주었다. 유일하게 기댈 곳은 공적 연금이지만 그것으로 노후설계를 하기는 턱없이 부족이다. 생의 유일한 자산인 아파트를 이용해 역모기지로 연금식으로 받으려 하면 자식들 눈치까지 봐야 한다. 나의 재무상태를 자식에게 알리고 독립을 시켜야 하는데 자신의 힘든 상황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베이버 부머의 남성들은 전통적으로 감정표현을 절제한다. 강인한 남성성에 집착하고 그것이 학습되고 내면화되었기 때문에 내적 고민과 갈등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게 미숙하다. 친구와 가족들과 의논하면서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어떻게 되든 스스로 해결하고자 애쓴다. 자신 속에 있는 부드러운 여성성을 밀어내면서 균형 있는 인격체로 거듭나기를 외면한다. 가족 간의 대화를 어렵게 생각하고 소외감과 불안감에 시달린다. 특히 은퇴를 앞두거나 은퇴한 중년 남성의 경우에는 가족과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더욱 심리적 갈등과 경제적 부담을 안고 살아간다. 게다가 자신의 그런 내적 감정의 표현마저 서툴다.
좋은 걸 “좋아”,
사랑스러울 때 "사랑해",
미안할 때 “미안해”,
싫은 걸 “싫다”,
힘들 때 "힘들어"라고 말을 못 하고 자신의 감정을 억누른다.
이 현상은 어린 시절, 교실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권위주의 정권에 대항하여 저항했지만 권위주의 교육방식에는 스스로 물들어 내면화되어 버렸다. 치열한 경쟁 속에 자신도 함께 매몰되어 버렸다. 교실에서 자기 의견을 표현하면 다른 학생들로부터 놀림감을 받지 않을지 불편하다. 선생님한테 혼이 날지도 모른다. 엉뚱한 질문을 한다고 야단맞을까 두렵다. 어느 시대에도 왕따는 있었으니까.
더구나 가정에서도 부모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솔직한 감정표현이 어색하다. 어린 시절에 보지 못하고 들어보지 못하면 성장하여도 당연히 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자식이 성적을 잘 받아왔으면 “잘했어!”라는 칭찬도 못한다. 그 대신 “방심하지 말고 더 잘해~!”라고 오히려 더 다그친다. 부모 역할을 자신의 부모로부터 제대로 배우고 학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부모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어릴 때 보고 들은 방식 그대로 자식을 대한다. 자신의 감정을 자녀에게 잘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은 가족과 의사소통이 어렵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하여 본인뿐만 아니라 자녀의 삶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베이비부머는 그렇게 자신을 표현할 기회를 갖지 못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지금은 실직과 은퇴라는 또 다른 낯선 환경과 마주하게 된다. 이제는 편안하게 쉴 마음으로 집에 있으면 자식들은 뿔뿔이 나가고 아내 역시 살갑게 대하지 않고 친구들 만나러 나가서 볼 수도 없다. 휑하니 홀로 있으면 ‘내가 뭘 위해 살아왔지?’라는 혼란이 온다. 정체성에 대한 상실감으로 인해 조그만 신체적 변화에도 불안하고 심지어 우울증, 공황장애 등의 심리적 병리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자기 회복탄력성이 낮은 은퇴 남성들은 중년기의 신체적 변화와 낯선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배우자와 갈등하다가 이혼까지 하게 되는 절망적인 상태가 된다. 설령 이혼은 하지 않더라도 거의 남보다 못한 부부 혹은 부모자식 관계로 남는다.
내가 태어난 해인 1959년은 한국 최초로 100만 명 이상이 태어난 해이다. 정확하게는 1,016,173명이다. 2022년 기준 현재 살아있는 수는 784,913명이니 약 22.8%에 해당되는 약 23만 명이 이런저런 이유로 사망했다. 난 77.2%에 속해있어 지금 이 글도 쓸 수 있다.
또 다른 출생 통계가 있다. 2022년에 태어난 아이는 249,090명이다. 60년 만에 출생수가 1/4로 줄었다. 우리는 뭘 해도 이렇게 빠르고 급격하게 변한다.
초고속으로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속도가 너무 빠르다. 2018년 말 기준 1955~63년생인 베이비붐 세대의 인구는 약 727만 6311명으로 전체 인구의 14.5%를 차지한다. 2025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1,000만 명(20.6%)이 넘어서면서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 것이 확실하다. 초고속으로 7년 만에 고령사회에서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빨라도 너무 빠르다.
한국의 베이비부머는 산업화, 도시화로 급변하던 한국사회의 역동성으로 인해 이전 세대와 차별적인 삶을 살았다. 이 세대에서 고학력자의 급증은 베이비부머의 인적자원의 성장을 의미하지만, 또한 경제적 차별도 함께 진행되었다. 베이비부머에게 삶은 전쟁과 같았다. 가족을 편히 먹여 살려야 한다는 짐을 어깨에 무겁게 지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기득권층으로 진입했으나 아직도 부모를 봉양하고 자식을 부양해야 하는 이중의 짐을 지게 되었다.
한창 일할 나이인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명예퇴직’이라는 결코 명예롭지 않은 꼬리표를 달고 회사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나 역시 회사가 부도나서 그나마 말이라도 그럴싸한 ‘명퇴’가 아닌 강제로 퇴사를 당했다.
우리는 평균수명이 늘어난 부모를 끝까지 공양해야 하지만 자식들에게 자신의 부양책임을 떠넘기지 않는 최초의 세대이다. 아버지로서 자식으로서의 삶의 무게를 던지고 '나 자신을 위해' 살고 싶지만 그 짐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자신의 노후는 자식도 국가도 아닌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외로운 세대이다. 턱없이 부족한 연금으로 인해 퇴직하여 쉬고 싶어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계속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은퇴를 하고 싶어도 못한다.
시선을 달리하여 청년세대는 베이비붐 세대를 어떻게 바라볼까? 베이비붐 세대들은 ‘꿀만 빨아먹은 세대’라고 비난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로서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 베이비붐 세대는 대체로 공동체 의식이 부족하고 오직 자신과 가족만을 위한다는 것이다. 이건 맞는 말이다. 베이비부머는 자신은 오로지 가족을 위해 일만 하는 ‘회사인간’이기를 기꺼이 감내했다. 그러나 정작 가족들과는 더 소원해진다. 대화할 시간도 감정을 소통할 시간도 없이 회사에서 생존해야 했기 때문이다. 자식과 오랜만에 대화를 할라치면 자신들의 경험치만 내세우면서 '하면 된다..!'라는 낡은 사고방식을 자식에게 강요한다. "우리 세대는 너희보다 훨씬 더 어려웠지만 노력하면 되는데 너는 왜 그 모양 그 꼴이냐?"라는 투로 자식을 몰아치는 순간 부자간의 대화는 단절되고 갈등만 깊어간다.
사실 베이비 부머들은 사고 싶은 것, 놀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참고 오로지 자신과 자식의 성공을 위해 일개미처럼 일만 한 죄밖에 없는데 가족으로부터 소외가 되고 돈 벌어오는 하숙생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억울한 느낌이 든다.
베이비붐 세대는 부모를 봉양하고 결혼하지 못하는 자녀를 돌봐야 하는 '중간에 낀 세대'이다. 세대 갈등대신에 서로 위로를 해도 부족한 시간이다. 우리
모두는 사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이 세상에 던져졌고 그것이 축복이자 고통의 시작이다.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생이 끝나는 날까지 모든 슬픔과 고통을 끌어안고 살아가야 할 운명이다. 청년이나 장년, 노년 할 것 없이 모두 시지프스 신화에서 돌을 밀어 올리고 산을 올라가는 인간 존재의 숙명이다. 청년들도 힘든 시간을 보내지만 베이비부머들 역시 고단한 시대를 보냈고 지금도 어려움을 겪는 동년배가 많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하고 있다. 각자의 삶은 나름대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이 시간,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이다. 이제는 은퇴를 하고도 20년~30년간을 살아야 하는 운명이다. 공공보건과 의학의 발전으로 수명이 늘어난 것이 결코 축복만 될 수 없다. 베이비부머는 그 긴 세월을 건강하게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 700만 베이비부머는 그 어느 세대도 가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시간과 공간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더 위태롭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평균수명이 83.6세이다. 건강수명은 73.1세이다. 건강수명은 평균수명에서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해 활동하지 못한 기간을 뺸 기간이다. 단순히 오래 살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건강하게 활동하면서 살아가는지가 당연히 더 중요하겠다. 평균수명과 비교하면 약 10년간을 여러 가지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해 고통을 받으면서 삶을 마무리한다는 의미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베이비붐 세대는 40대 ~ 50대에 축적한 자산을 인출하면서 살아야 할 운명이다. 자산뿐만 아니다. 건강도 마찬가지다. 젊은 시절에 저축한 근육, 건강을 연금처럼 빼먹으면서 살아가야 한다. 20대는 실패를 거듭하면서 무엇이든 도전하고, 30대를 넘기면 이제 삶의 방향성이 결정되고, 40~50대는 그 방향으로 쭈욱 나간다. 생애주기에서 삶의 방향을 정하는 30대가 가장 중요하다. 60대 이후, 축적한 자산이 없이 노년세대로 들어오면 불행해진다. 60대가 되면 대충 노년기의 그림이 그려진다. 베이비 부머는 고유한 속성은 아니지만 나름 그 시대를 상징하은 두드러진 특징을 갖고 있다.
경쟁,
성취,
명예,
용기,
의지,
극복,
경험,
지혜,
지식,
.... 등의 자본은 어느 정도 축적되었으나,
배려,
관용,
공감,
소통,
봉사,
휴식,
쉼,
.... 등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무슨 소리야..? 난 그렇지 않아..! “
“집단의 한 면만 보고 전체를 평가하는 ‘성급한 일반화 오류’다..! “ 어느 베이비부머의 항의하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본 시각에서 다소 거칠게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정서적 내재역량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맞다. 불행히도 내재역량은 단숨에 키워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들을 다시 충전할 방법은 없을까?
"끝이 좋으면 다 좋다"라는 말이 있다.
노년기를 잘 보내야 삶을 의미 있게 정리할 수 있다. 인생은 노년기를 어떻게 보낼 수 있는지에 따라 자신에 대한 삶의 평가가 달라진다. 일상의 삶에서 느끼는 행복한 순간을 인간이 어떻게 해석하는가를 행동실험으로 증명한 학자가 있다. 행동경제학이란 새로운 분야를 창시한 프린스턴대학의 다니엘 카네만 교수이다. 카네만 교수는 "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는 서로 다르다"라고 정의했다. 그의 실험에 의하면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 요소는 특징적인 강렬한 순간들과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보냈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
예를 들어, 일찍이 젊어서 돈을 벌어 마구 쓰다가 말년에 사업이 망해 끝이 좋지 않았다면 아무리 즐거운 경험이 많더라도 기억하는 자아는 마지막 어려웠던 순간만 남게 된다. 기억하는 자아는 생의 중간에 굴곡이 많더라도 끝이 좋으면 다 좋게 느낀다는 것이다.
인생에서 노년기가 중요한 이유이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은퇴가 시작되는 시점부터 삶의 만족도가 올라는 ‘U자형’ 곡선을 그린다. 특이하게도 우리나라는 은퇴 후부터 삶의 만족도가 급속하게 떨어지는 ‘L자형’을 그린다. 연금제도가 잘 갖춰진 선진국과 달리 우리는 은퇴 후의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지고 노부모 부양과 성인자녀까지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삶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젊을 때 아무리 행복했더라도 노년이 불행해지니 삶 전체가 불행한 것처럼 기억한다. 그래서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들은 젊을 때 아무리 좋은 경험이 많았어도 노년기가 힘들어지니 불행한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은 대체로 삶의 종착역에서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기억하고 있다.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기억을 재구성하는 방법이 있다.
좋은 경험과 나쁜 경험도 망각의 시간이 지나면 모두 좋은 것으로 변하게 된다. 과거에 겪은 나쁜 경험을 좋은 것으로 승화시키는 정화능력이 인간에게 있다. 아마 진화의 산물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만족되면 모든 빛바랜 과거의 경험도 아름답게 재구성되어 의미를 갖게 된다. 잊어버리고 싶은 것은 망각의 강으로 흘려보내고 나머지 기억은 아름답게 채색하여 재구성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기억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은 당시의 기억을 현재로 끌고 와 재구성하여 아름답게 만드는 작업이다. 잊혀가는 많은 기억 속에서 작은 단서를 찾아 기억을 살려 스토리텔링 형식의 기록으로 남기는 능력은 인간만이 가진 가장 놀라운 능력이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지금 현재가 과거의 삶보다 어떤 모양으로도 더 좋아야 한다. 현재의 삶이 과거보다 힘들다고 생각이 되면 모든 과거의 경험은 나쁜 기억으로 남는다. "그래서 내가 이 모양 이 꼴로 살아가지"라고 스스로 책망하고 후회하게 된다.
만약 지금 상황이 좋다면?
지나간 어려웠던 기억은 모두 '지금 이 좋은 상황으로 만들기 위한 시련의 기회'라고 하면서 자기 만족감과 함께 행복감을 느낀다. 인간은 기억도 선택적으로 하고 그 기억을 왜곡시킨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게 아니라 기억도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기억에서 제외시켜 버린다. 판단에만 확증편향이 있는 것이 아니다.
기억에도 확증편향을 갖는다.
이런 확증편향은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일어난다. 확증편향을 통해 가치관이 생기고 삶의 방향성을 찾는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의 상황이 과거보다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 나쁜 방향으로 가면 기억마저도 서서히 좌절하고 절망에 빠진다.
본능적인 확정편향에 의한 기억보다 더 나은 기억 방법이 있다. 과거의 기억을 의도적으로 되살려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글쓰기다. 글을 쓰면서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기억을 되살린다. 그것도 아름답게 채색까지 하고 나면 삶의 의미가 새록새록 다시 살아난다. 글쓰기는 과거를 불러내어 현재를 해석하고 미래를 설계한다. 인생을 한번 더 사는 셈이다.
글쓰기는 기억을 재구성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노년의 시간은 수명은 연장되었지만 고혈압, 당뇨, 퇴행성관절염 등의 만성질환으로 시달릴 것이다. 또한 노화로 인해 정신적인 외로움뿐만 아니라 치매라는 무서운 병과도 마주쳐야 하는 운명에 놓일 수도 있다. 내가 사랑하는 친구가 그 고통을 받고 있다.
2년 전쯤이었나?
20년 전에 미국 텍사스로 이민 간 군 후배이자 친구가 있다. 그는 ROTC 육군 장교였다. 육해공군이 합동작전을 벌이는 작전 훈련장에서 만난 것은 아니다. 3군 국군통합병원에서 만난 친구다.
늦은 나이지만 처가 쪽에서 이미 미국에서 자리를 잡고 있어 정착하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딸, 아들 모두 결혼하여 독립적으로 살고 있어 부부가 연금을 받으면서 이제는 편안하게 살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근데 재작년, 통화를 하다가 자신이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아직 초기라 괜찮을 거라고 했는데 최근에 페이스톡으로 연락하면서 '알츠하이머'로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외래진료를 받고 있으나 조금씩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알츠하이머병은 치료약이 없고 단지 증상을 지연시킬 수는 있다. 아주 똑똑하고 야무진 친구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지속적으로 나빠지고 있는 것 같았다. 얼굴은 여전히 웃지만 얘기 도중에도 금방 했던 말을 가끔 기억하지 못한다. 지금은 딸이 있는 보스턴으로 와서 알츠하이머로 유명하다는 종합병원에서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지난주 MRI 검사를 통해 조금씩 병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견을 의사로부터 설명 들었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약 일주일에 한 번은 페이스톡과 보이스톡으로 통화한다. 알츠하이머를 비롯한 치매환자는 가족과 친구로부터 많은 소통과 감정 교류가 증세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물론 증세가 회복되지는 않지만 약물과 함께 가족 및 친구와의 밀접한 대화를 통해 악화되는 속도를 늦출 수는 있다고 한다. 통화를 하면서 가끔 지난번 얘기를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안타깝다.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 존재가 서서히 사라지는 것과 같다. 자꾸 옛날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예전에 가족이 함께 정선에 놀러 갔다가 폭죽놀이를 한 기억, 간밤에 친구의 코 고는 소리에 한숨도 못 잤다는 얘기부터 시작해서 내가 수영을 가르쳐주다가 포기한 에피소드까지 한 시간 이상을 통화했다.
통화 중에 갑자기 죽음의 시간이 멀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런 소리 하지 마.!"
"어차피 너나 나나 죽기는 마찬가지야, 언제인지는 아무도 몰라..!"
"아냐, 내가 더 빨리 하나님 만나러 갈 거 같아"
"....."
한국에 꼭 한번 오고 싶다고 한다.
"한국에 오면 내 집에서 지내"라고 했지만 마음은 짠했다.
말로만 들었던 치매가 남의 일이 아니었다.
또 다른 기억을 떠 올린다.
지난주 공군장교 총회 모임이 있었다.
대학 때 친한 친구와 함께 차를 타고 갔다. 차 안에서 친구의 굴곡 많은 삶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갔다. 다른 친구들의 소식도 들었지만 모두 나쁜 소식이다. 한 친구는 IMF때 부도가 나서 망하거나, 또 다른 친구는 사기를 당해서 파산했다는 소식과 함께 이혼한 후 미국 갔다가 다시 돌아왔으나 놀고 있다고 한다. 친구도 코로나 사태와 최근 불경기로 인해 많이 힘들어 보인다. 친구가 긴 하소연 끝에...
"살아보니 성격이 인생을 좌우하더라~"라고 한숨을 쉬면서 토로한다.
누구나 살면서 온갖 어려움과 시련을 겪지만 누구는 헤쳐나가고 다른 누군가는 중간에 꼬꾸라지고 만다. 결정적인 시기에 '욱'하는 충동적인 성격을 참지 못하고 들이박거나 직장을 박차고 나왔다고 했다. 행동이 반복되면 그 행동이 습관이 되면 그것이 결국 자신의 운명이 된다. 그럴 때 불운도 함께 뒤 따라온다. 지금 불행하면 과거의 모든 경험과 좋은 추억마저도 불행하게 기억될 뿐이다.
"사람은 바뀌지 않아"라는 말은
"성격은 바뀌지 않아"라는 말과 같다. 그러나 기억은 그때 상황에 따라 변한다.
금요일 오후, 지난 기억을 서로 나누다 보니 차가 막혀 시간이 더 걸리는 줄도 모르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행사장인 공군호텔 2층에 올라가니 접수하는 친구는 있는데 얼굴이 낯설었다. 접수대 팻말을 보니 공군학사장교 78기 40주년 기념..? 78기는 한 해 후배가수인데..?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눈에 익은 친구가 동기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맞은편 홀에서 공군학사장교 77기 정기 총회를 하는 것이다. 77기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7월 7일에 행사를 한다.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 벌써 몇몇 동기들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인사를 하고 들어오는 친구들을 보니 표정이 정말 제각각이다. 지팡이를 짚고 힘들게 들어오는 친구, 머리가 백발에 허리가 구부정하게 상노인처럼 오는 친구, 얼굴에 표정이 없는 친구, 가끔은 허리를 꼿꼿이 하고 웃으면서 인사하는 친구까지 정말 다양하다. 나이는 비슷하지만 상대의 얼굴을 보면 그 삶을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얼굴에 삶의 흔적이 보인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얘기를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동기들은 주로 57년 ~ 59년생이 대부분이다.
대학원을 마치고 늦게 입대한 경우에는 55, 56년생도 있다. 하지만 같이 고생하며 훈련받았기에 서로 말을 놓고 지낸다. 행정고시, 외무고시, 기술고시에 합격하고 장교로 임관하기 위해 온 경우도 꽤 있다.
처음 공군교육사령부가 있는 대전 훈련소에서 장교후보생으로 입교하는 순간이 기억난다. 이발소에서 장발의 머리칼을 빡빡 밀리고 거울을 봤을 때 그 썰렁하면서 서운한 느낌은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있다. 후보생들을 운동장에 집합시켰다. 훈육관들이 소몰이하듯 고함치는 소리에 속으로 '이제 죽었구나~" 싶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것은 말 그대로 무기력이었다. 4개월 반을 버티면서 훈련받았다.
연병장에서 함께 빡빡 기면서 훈련받고 난 후 식당에서 짠 밥을 먹을 때 그 포만감도 떠오른다. 교육사령부 창단기념일이라고 처음 받아본 삼립식품 크림빵이 기억난다. 그 달콤한 맛은 아직도 입가에 맴돈다. 당시 훈련을 빙자한 폭행과 폭력사건도 꽤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정신적 트라우마로 남았을 수도 있었다. 지금 즐거운 이 시간에 기억나는 41년 전, 군에서의 좋든 싫든 모든 경험들은 어느새 아름다운 그림으로 채색되어 추억거리 이야기로 기억된다. 끝 마무리가 좋았기 때문이다. 국군통합병원에서 내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꾼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오늘 공군호텔에 모인 동기들, 그 베이비 부머들은 누구도 한번 가보지 않는 신노년 세대로 진입하고 있다. 삶은 몸으로 경험한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일화기억으로 재구성된 스토리의 연속이라고 했다. 삶은 기억하는 이야기들의 집적물인 셈이다. 새로운 공간과 시간으로 들어가는 부머들, 나는 또 다른 색다른 경험을 몸으로 느끼면서 살고 싶다.
기억을 더듬어 가면 어떤 시간은 뭉텅이채로 건너뛰는 기간이 있다. 그 시간에는 특별하거나 새로운 경험은 없고 진부한 일상이기에 강렬한 일화기억으로 남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는 예전에 다 해본 것들이라 새로운 경험이 없으니 시간은 껑충껑충 뛰면서 빨리 지나간 것처럼 느낀다. 다만 여행의 기억은 오래 남는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기 때문일 게다.
여행을 많이 가고 싶다.
갑자기 내가 60 중반을 가고 있다는 느낌이 낯설게 다가온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생의 여행이 끝나는 시간도 오겠지. 그때 나는 무엇을 후회하고 무엇에 감사할까?
호주의 간호사 브로니 웨어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근무하면서 죽음을 앞에 둔 환자들에게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후회를 했다고 한다.
1. 남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삶이 아니라 나의 삶을 살았더라면,
2. 왜 그렇게 일만 열심히 했는지,
3.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더라면,
4. 친구들과 더 자주 연락할 것을,
5. 조금 더 나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었더라면...
나는 그 순간에 무슨 후회를 하고 있을까?
'즐거운 소풍을 마치고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시간'
이라고 감사하면서 가족들에게 얘기하면 좋겠다.
언제 들어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노래가 있다. 넬의 김종완이 부르는 <기억을 걷는 시간>을 계속 듣는다. 삶은 기억과 함께 기록을 통해 재구성된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 시간이다.
길가에 덩그러니 놓여진 저 의자 위에도
물을 마시러 무심코 집어든 유리잔 안에도
나를 보기 위해 마주한 그 거울 속에도
귓가에 살며시 내려앉은 음악 속에도 니가 있어
(중략)
그리움의 문을 열고 너의 기억이 날 찾아와
자꾸 눈시울이 붉어져
그리움의 문을 열고 너의 기억이 날 찾아와
자꾸만 가슴이 미어져..
<기억을 걷는 이 시간>도 지나간 삶과 다가 올 생에 대한 의미를 찾기 위함이 아닐까?
P.S.
제목에 있는 배경사진은 스승의 날 제자가 선물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