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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개구리의 삶 (35)

아내의 취미

by 촌개구리

아내가 밥 먹는 것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집에서 화초를 키우는 것이다.


제주나 남도로 한달살이처럼 장기여행을 가자고 하면 그때마다 아내는 못 간다고 하며 나보고 혼자 다녀오라고 한다.


그 이유를 물으면 화초에 물 주는 것 때문이라고 하는데 참 난감하다. 간신히 동네에 사는 친구들 도움을 받아 떠난 적이 있을 정도로 화초 키우기에 진심이다.


언제부터 아내가 화초를 키우기 시작했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20여 년 전 베란다가 있는 큰 아파트에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거 같다.


그 후 베란다가 없는 작은 집으로 이곳저곳 이사할 때마다 화초를 많이 줄였다가 몇 개월 지나면 다시 고무줄처럼 늘어나기도 한다.


화초가 종류별로 늘다 보니 때에 맞춰 물을 주는 것이 중요한데 아내의 총명한 머리도 나이 들며 헷갈리는지 나한테 사무실에서 A4용지에 물 주기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오라는 지상명령이 떨어져 일 년 치 12장을 출력해 온 적이 있다.


이번 달 물 주기 체크리스트를 자세히 보니 18개의 화초이름 옆에 화초 특성에 맞게 5일, 7일, 10일 단위로 물을 주었다고 동그라미 치며 잘 관리하고 있다.


지금 사는 집은 베란다가 없고 거실이 작다 보니 창가에 2,3단으로 옹기종기 모여있지만 아내는 햇빛이 들어오면 햇빛을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이동시키고, 돌려주고 바람도 쐬어준다.


그러다 화초가 어느 정도 크면 분갈이도 하고 조그만 화초에도 지극정성을 다해 꽃을 피우게 하는데 옆에서 봐도 질투가 날 지경이다.


특히 아내는 꽃을 좋아하다 보니 겨울에도 향기로운 꽂을 피우는 화초 나무를 좋아한다. 꽃이 만개한 어느 날 꽃향기가 거실 가득 채울 때는 황홀할 정도다.


이렇게 화초를 키우며 꽃대가 올라올 때의 기쁨과 기다림 속에 꽃이 피면 하루에도 여러 번 이리저리 향기를 맡으며 행복감에 빠져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가끔 정성 들여 키운 소중한 화초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로 시집을 보내기도 하는데 아내만 독점하지 않고 나누는 것을 보면 아름다운 화초를 키우다 보니 사람 마음이 넓어지나 보다.


아내가 이처럼 좋아하는 취미를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베란다가 있는 집이나 전원주택에서 살아 볼 수 있게 도와주지 못하는 것이 남편으로서 미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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