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웹툰 비질란테는 이 물음에서 출발합니다. 주인공 김지용은 경찰대학 학생으로 어린 시절 어머니가 폭행범에게 이유없이 폭행당해 살해당한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런 힘이 없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했던 것이 마음 속 깊은 상처로 자리잡은 김지용은, 범죄자들을 자신이 힘으로 처단하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리고 경찰 대학 휴가 때에 맞춰 자신의 계획들을 하나하나 실행해나가기 시작합니다.
김지용의 스토리를 다 알게 되면 그의 행동이 충분히 이해가 되고, 어떻게 보면 그가 하는 방식이 나름의 타당한 처벌의 수단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렇게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는 것은 작가가 인물 한 명의 스토리와 감정 묘사를 잘했다라는 증거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래서 오늘 포스팅에서는 비질란테 주요 인물들 중 김지용에 집중해서 하나하나 분석해볼까 하는데요. 김지용의 고민과 심리에 대해서 하나하나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할게요.
출처 비질란테 2화
1. 김지용의 콤플렉스 : 어렸을 적 어머니가 죽었던 사건
김지용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아무런 이유없이 폭행당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자신은 어렸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때 느꼈던 무기력감을 평생동안 마음 속에 간직하고 삽니다. 이후 경찰대에 진학하게 된 김지용은 법으로 심판할 수 없는 범죄자들을 자신이 직접 폭력으로 처단하기 시작합니다. 사회의 거악을 처단하고 자신이 잡혀들어러감으로써 현 법 체계의 모순점을 지적하겠다는 것이 김지용의 목표였는데요. 자기 자신을 파괴해가면서까지 범죄자들에게 복수를 하려는 그가 안쓰럽기도 하면서도, 과거에 느꼈던 상처가 얼마나 그에게 깊은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스토리 진행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출처 비질란테 1화
2. 김지용의 내면 심리 : 슈퍼에고의 모습을 한 이드
김지용은 부도덕을 절대 참지 못합니다. 초반에는 청소년과 여성은 범죄자더라도 때리지 않는다라는 자신만의 룰을 만들었지만, 특정 수위를 넘는 청소년 범죄자를 만나게 되자 바로 단죄합니다. 김지용에게 있어서 이런 행위는 정의를 위한 것이며, 자기 자신도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세상을 위해 어쩔 수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그는 자신의 나약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폭력이라는 수단을 이용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는 자신이 어렸을 때 느꼈던 무력감을 다시는 느끼지 않기 위해, 그리고 지금은 그 때와 다르다는 것을 매 순간 순간 확인하기 위해 폭력을 선택한 것일 뿐입니다. 어떻게 보면 비틀어진 선(善)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출처 비질란테 83화
3. 김지용의 고민 : 어떻게 하면 유의미하게 자신의 존재를 종결시킬까
표면적으로 김지용은 어떻게 범죄자를 어떻게 처단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은, 김지용은 늘 자신의 끝을 염두해두고 있습니다. 폭력이라는 수단을 택한 자신에게 스스로 벌을 내려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 결론까지가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스스로의 결말까지 정의롭게 결정지으려 하는구나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 오만한 생각이기도 하죠.
그는 이 사회의 구성원입니다. 구성원이 구성원에게 벌을 내리고 그것에 대한 심판도 자기 스스로 한다라는 건 이 사회 구성을 약속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느껴지는 행동입니다. 김지용의 논리가 맞다면, 도덕적으로 신실한 개인 혹은 정말로 능력있는 개인은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걸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부자에게 또는 능력이 출중한 사람에게 투표권을 두 장주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는 모두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사회에게 부여받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틀리고 내가 맞다, 내 마음대로 하겠다라고 생각한다면 처음부터 사회의 최소 보장 혜택을 받지 말았어야죠.
안타깝지만 주인공 김지용의 논리 속 모순은 해결되기 어렵습니다, 애시당초 자신이 범죄자를 처단한다는 주장 자체가 성립되기 어려운 현실에 우리는 살고 있으니깐요.
출처 yes24
4. 오이디푸스 : 내 운명은 내가 어떻게든 움켜쥐겠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왕비로 죽인다는 신탁을 받고 태어난 오이디푸스. 그는 일평생 자신의 저주스러운 운명을 피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신의 계획이었는지, 오히려 그렇게 저항하는 오이디푸스의 행동들 하나하나가 안타까운 결말로 향하는 과정 자체였죠. 결국 오이디푸스는 신탁대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왕비로 삼게 됩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직접 찌릅니다. 자신에게 내리는 벌만큼은 자신이 직접 내리고 싶었던 것이죠. 한 평생 자신의 의지로 운명을 개척하며 살아왔다고 믿었는데, 그것마저도 알고보니 운명의 손바닥 안이었다는 것에 오이디푸스는 너무나 분노했던 것입니다. 벌마저도 자신이 내리지 않는다면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자체를 느끼지 못한다라고 생각했었겠죠.
오이디푸스라는 작품은 개인이 주어진 운명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그리고 정해진 운명 안에서만 살아야 함을 자각할 때 과연 인간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비질란테의 주인공도 어린 시절 어머니를 지켜내지 못했을 때 오이디푸스처럼 강한 무기력감을 느꼈을겁니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외부의 힘에 굴복해서 자신이 쓸모없음을 느끼는 심정, 이 심정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없죠. 하지만 그 이후, 자신의 무기력함을 어떻게 극복하냐는 개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입니다.
무기력함을 오이디푸스처럼 자책으로 마무리 지을 것인지, 아니면 비질란테의 김지용처럼 폭력으로 해결할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제 3의 새로운 선택을 할 지. 새삼 김지용이라는 인물에게 있어 제 3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지네요, 그리고 그가 그런 선택을 했을때 과연 만족할 수 있을지. 어쩌면 실은, 김지용은 그 누구보다 폭력을 갈망한 존재가 아니었나라는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