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인 악당은 우리를 위로한다.

by 광자

1.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일까.

네이버 웹툰 비질란테, 악당 방 씨

요즘 웹툰들을 보면 선악이 점점 모호해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점점 뭐랄까, 웹툰 속 악당들이 '실은 나에게는 이런 사연이 있었어...'라는 식의 플롯 전재가 자주 보입니다. 그 연출 방식이 은연중에 드러나냐, 대놓고 언급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이제 대부분의 웹툰에서는 악당을 전형적인 악이 아닌 '충분히 이해 가능한' 악당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2. 악당에 대한 현실적인 묘사는 우리를 위로한다.

네이버 웹툰 신의 탑 칼라반


왜 이렇게 변화했을까요. 과거의 웹툰 또는 만화 혹은 영화들이 전형적인 선과 전형적인 악을 묘사한 것과 다르게 왜 요즘 제작되는 콘텐츠들은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할까요. 또 왜 악당의 속사정에 독자들이 공감하도록 제작되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이런 묘사들이 독자들을 위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3. 적당히 비틀린 소시민 주인공

네이버 웹툰 환상이 용

네이버 금요 웹툰 중에 환상의 용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웹툰은 주인공이 조금 꼬여있습니다. 만화 전공 교수인 주인공은 동료 교수 중 잘 나가는 황 교수를 눈꼴 시럽 게 여깁니다. 작품도 잘 나가고 서글서글하고, 무엇보다 심성까지 착한 이 인물을 보면서 주인공은 심사가 뒤틀리죠. 이런 주인공을 보고 사람들은, 충분히 그럴 법하다고 생각합니다. 댓글을 보면, 소시민이 느낄 법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이다라는 반응이 많습니다. 오히려 완전무결한 주인공보다 현실적이라는 반응도 있고요.


4. 재능이 없는 선수가 선택한 현실.

네이버 웹툰 더 복서

다른 웹툰을 살펴볼까요, 네이버 목요 웹툰 더 복서에는 존 테이커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주인공 유의 데뷔전 상대인데, 반칙을 일삼는 비겁한 복서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이 테이커에게도 사정은 있었죠, 원래 뒷골목에서 암울한 생활을 이어나가던 테이커는 나이 든 백발 남자 코치의 제안으로 우연한 계기로 복싱을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테이커는 재능이 없었고, 그저 엘리트 선수들의 데뷔용 샌드백 선수의 역할만 하게 됩니다. 그러다 한 경기에서 실수로 반칙을 써서 상대를 이기게 되는데, 협회에서도 그것을 용인해주게 됩니다. 협회에서 필요한 건 그런 돌발성 캐릭터였던 것이죠. 앞으로도 그렇게 더티 플레이를 하는 조건으로 경기 출전의 기회를 얻은 테이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게 됩니다.


만화에서는 복싱으로 묘사되었지만, 이는 재능 없는 사람들의 타협이라는 맥락에서 재해석한다면 꽤 많은 사황에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깐요.


5.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 그렇기에 아름답다.

네이버 웹툰 더 복서

우리 모두는 한순간 부끄러운 감정을 품은 적이 있습니다. 웹툰 환상의 용의 주인공 교수처럼 성격 좋고 공부도 잘하는 친구에게 질투심을 느끼며 배 아파한 적이 있고요, 웹툰 더 복서의 테이커가 한 것처럼 비겁한 현실 타협을 살면서 여러 번 한 적 있습니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방패 삼아 숨어있었지만, 사실 마음속으로 찔리는 것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순간, 웹툰 속 현실적인 악당들은 이런 우리들에게 안도감을 줍니다. 아 나만 이렇게 느낀 것이 아니고

나, 나만 비겁한 게 아니구나, 저런 쪽 팔리 감정을 다른 사람들도 느끼는구나 하면서 말입니다.


6. 이 우주 안에 완벽한 것은 없다.


예스 24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


잠깐 다른 책 이야기를 하나 할게요.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 라는 우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비문학 작품이 있습니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이 우주 안에 완벽한 대상이라는 것은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애당초 과학의 목적이 완벽한 대상을 연구하거나, 연구를 통해 완벽함을 도출해내는 것이 아니라고 책은 말합니다.


완벽하지 않은 것을 탐구하는 것, 그리고 그 완벽하지 않은 것의 변화 과정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 바로 과학인 것이죠. 이 우주 안에 사실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을 거예요,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구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주와 인간은 아름답습니다. 때로는 우주의 불규칙한 움직임이 기적을 불러일으키듯이,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 그리고 추한 모습들이 우리를 움직이게 합니다. 그런 부끄러운 모습들을 어떻게 대처할지 스스로 고민하고, 그 고민의 결과에 따라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고 다시 실패하는 과정 자체가 우리의 삶인 것이죠.


7. 악당은 그저 남들보다 시도를 많이 한 것일 뿐이다.


네이버 웹툰 더 복서


어쩌면 웹툰 속 악당은, 단지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이겨내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했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그 시도가 정의로운 시도이기보다는, 지극히 솔직했기에 극 중에서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 악당의 선택이 현실 상황에서는 적절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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