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h mag Hunde Aber Ich mag keine Hunde ohne Halsband.”
빈한한 독일어 솜씨로 직역하자면, “나는 개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목줄이 없는 개는 좋아하지 않아요.”
오늘 독일어 수업 시간에 ‘나는 ~를 좋아합니다’유의 문장을 쓰고 말했다. 역시 세계 공통의 법칙에 따라 시계 방향으로 카자부터 각자 노트에 쓴 문장을 읽었다. 개에 관한 이 문장은 클레어의 것인데, 자신이 읽고 난 문장이 가져온 파급효과에 그녀는 크게 놀라며 두리번거렸다. 그녀가 읽은 문장을 천천히 되뇌며 해석을 마친 후에 하나둘씩 의견을 더하기 시작했다.
“맞아. 나도 그거 이해 안 되더라. 너무 위험하잖아.” 샤넌이 먼저 이 대화를 열었다. 그리고 언제나 지나치게 뜨거운 마사도 가만 있을 리 없었다. “그러니까. 어제도 집에 가는데 이만한(양손을 커다란 나무 둘레만큼으로 벌리며) 개가 주인 보다 앞장서서 성큼성큼 내 쪽으로 오더라니까. 얼마나 놀랐는데.”
“으음… 교육이 중요하겠죠.”
라인하드는 잡담인지 토론인지, 아무튼 독일어는 아닌 이 대화들이 흐르는 방향에 혼이 나간 듯 고개를 움직이다가 겨우 끼어들 틈을 찾았다.
“우리도 교육이 덜 된 강아지를 그대로 풀어두지는 않아요. 그러다가 어느 정도 주인과 일종의 연습을 마친 강아지는 목줄 없이도 길을 익히거나 산책을 즐길 수 있어요. 그들에게 자유로움을 주는 거죠.”
“그 판단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니콜로의 물음에 라인하드가 천천히 답하기 시작했다.
“여러분이 당황하는 건 나도 이해해요. 어제까지 괜찮았던 강아지도 내일은 다른 환경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심지어 저는 살면서 6번이나 목줄 없는 강아지에게 물려봤어요.”
서울의 집 앞으로 걸어 나가면 10km가 조금 못 되는 하천이 흐른다. 그 옆에 경쟁하듯 멋대로 자라난 풀이 있고, 반대편에는 일반적인 약수터의 것과 같은 운동 기구가 있다. 과하게 덥거나 추울 때가 아니면 사이로 난 산책로로 저녁마다 산책을 했다. 산책 그대로의 좋은 기운을 받기도 했지만, 주인과 산책 나온 반려견을 보는 건 아주 소소한 행운을 발견한 것처럼 덤으로 느껴졌다. 강아지들은 주인의 의지에 따라 짧거나 긴 목줄을 메고 조금은 급하게 걸었다. 주인의 통제 아래, 풀이나 흙냄새를 맡기도 하고 영역 표시를 하거나 나를 어서 안으라는 식의 보채기도 했다.
그에 반해 베를린의 강아지는 어딘가 독립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나와 때를 가리지 않고 귀여운 강아지 영상을 주고받는 한 선배는 ‘국견성’같은 게 아니냐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베를린에서 촐랑거리는 강아지의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우리 지금 어디 가는지 나도 알아. 나 좀 빨리 걷고 싶은데, 이따가 거기서 만날까’라고 하는 것처럼 주인보다 몇 발자국은 앞에서 걸어갔다. 다른 강아지나 사람을 만나도 특별히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독일 병정 같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단순히 얌전한 것 이상의 모습이었다. 얼마나 철저하게 교육이 되어 있으면 저게 가능할까. 내게는 아주 경이로운 풍경이었다.
그런데 교육이 ‘충동적이고 갑작스러운 상황을 모두 막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 번은 마트에 갔는데 보더콜리 한 마리가 마트 앞에서 우두커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지없이 목줄은 없었다. 주인이 아닌 사람들이 나오고 들어가면서 마트의 유리문은 수없이 열렸다 닫혔다. 그 와중에 미동 없이 의젓하게 자리를 지키는 보더콜리가 신기해서 나는 몇 번이나 그 아이를 쳐다보곤 했다. 그런가 하면 놀렌도르프 역에 있는 파머스 마켓에 갔다가 다시 역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U반을 타려고 올라가는데 한 편에서 강아지가 컹컹거리면서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 강아지는 U반 근처의 대형 마트 앞에 서 있었는데 자동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울음소리가 “왜 안 나와. 나 무섭단 말이야!”처럼 들려서 나는 몇 번이나 강아지를 보면서 계단을 올랐다.
교육으로 외로움이란 감정을 견디도록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리고 마침 그 순간에 목줄을 하지 않았다면 위험한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닐까. 라인하드를 물었다던 6마리의 강아지들은 평소에는 잘 걷다가도 어제 주인이 혼자 내버려 둔 것 때문에 분풀이로 그를 물어버렸을지도 모르지.
그제는 베를린 몰에 들었다가 교육이란 어쩌면 받는 대상이 아니라 가르치는 상대가 편하려고 마련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Idee’라는 DIY용품이나 인테리어 아이템을 파는 상점에 들렀다가 나오는데 골든래트리버 한 마리가 쇼핑몰을 돌아다녔다. 실은 돌아다닌다는 표현이 좀 무색할 정도로 매장 하나가 시작되고 끝나는 여덟 걸음 정도를 걷다가 주저앉곤 했다. 래트리버가 들어가는 매장을 보니 미용실에서 기르는 아이 같았다. 대견스럽게도 도구 박스를 둘러 엎거나 손님에게 가서 치대는 행동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천성도 의젓하겠지만 교육도 그만큼 한몫했구나. 하지만 이 아이도 이렇게 같은 날이 반복된다면 교육에 저항하는 순간도 생기지 않을까.
여러모로 개를 기른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겠구나.
베를린에 오니 흠모하는 견종인 보더콜리 또는 그와 섞인 강아지들을 자주 봐서 좋네요. 오늘 배웠으니 한 번 활용해봅니다. 강아지는 Hund, 고양이는 Katz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