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레터 27화
네가 내게 남기고 간것들

by 김목화

2025년 5월 20일 오전 11:20

요즘 밥은 잘 드시고 계시나요?

작은 걱정과 인사로 이번 레터를 시작해 보려 합니다.

최근에 목화레터를 열심히 쓰지 않은 것은 아닌데, 글을 써야 하는 일이 많다 보니 저도 모르게 일처럼 썼던 것 같습니다. 일은 맞죠. 하지만 조금 더 정성스럽게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항상 한가득입니다. 오늘은 ‘네가 내게 남기고 간 것들’에 대해서 써보겠습니다. 무언가 아련한 이별 이야기 같다고요? 맞기도 하고 당신이 아마 90퍼센트 정도 확률로 생각할 연인에 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를 떠난 사람들에 대해서 써보려고 합니다.


요새 꿈자리가 사납습니다. 가위에 눌리기도 하고 일어나면 허우적대기에 바쁩니다. 다행히 오늘은 말끔한 컨디션으로 잠에서 깼습니다. 최근에 일이 잘되지 않고, 제가 지원한 것들에서 그다지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슬픔과 아쉬움과 많은 감정들이 물에 가라앉은 찌꺼기처럼 남아있었습니다. 그 찌꺼기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저는 간혹 눈물을 훔치고는 했어요. 친구는 ‘열심히 절망하기’를 해보라고 말했지만, ‘열심히 절망하기’조차 할 시간이 없어서 일이 다 끝나고 겨우 숨돌리듯이 절망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몸이 아파주어서 ‘조금 절망하기’는 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 절망하는 것조차 힘들더군요. 우는데 체력이 모자라서 헉헉-댔습니다.


그렇게 사나운 꿈자리와 잘되지 않은 일들이 한가득일 때, 저는 시나리오와 다른 글들을 다시 쓰면서 제 정신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번 레터에서도 언급했듯이, 주인공에 저를 일정 부분 의탁해서 쓰고 있는데, 쓰면서 간혹 눈물이 날 때가 있습니다. 정확히는 주인공에 대해서 생각할 때 눈물이 나고는 합니다. 이렇게 아직 보여주지 않는/못하는 글을 쓰면서 힐링하게 됩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주제에 맞는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저는 가위에 눌리고 악몽을 꾸고 정말 다이나믹하게 고통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언급한 시나리오 덕분에 제 시나리오 주인공이 꿈에 나타나 저를 옭아매는 것도 이제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시나리오든지 만화든지 제가 골몰하는 순간부터 제 삶에 찾아와 거의 지배하듯 일상이 됩니다. 최근 그래서 다양한 꿈들을 꿨지만, 기묘한 꿈이 있었습니다. 바로 돌아가신 제 할아버지가 나오는 꿈이었는데요. 저는 사실 할아버지와 별로 친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마지막 떠나신 모습을 보고 꽤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꿈속에서 저는 삶은 계란을 허우적대며 먹고 있었습니다. 마구마구 먹어서 목이 막힐 정도로요. 할아버지는 저에게 삶은 계란을 완전히 까서 준 것도 아니고 뭔가 안간힘을 다한 것처럼 계란의 윗부분만 겨우겨우 까서 저에게 주었습니다. 계란을 마구 먹는 저의 어깨를 툭툭 쳐서 계란을 건네주셨습니다. 저는 엄청나게 울면서 잠에서 깼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꿈에 나온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저는 가족 중 가장 친하지 않지만 가장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꿈이 도대체 무어냐는 생각을 자꾸 하다가 그날 밤에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날 밤은 ‘열심히 절망하기’의 밤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절망하다 못해 비관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필요 없을 지도 몰라. 나조차 나의 효용성과 효능감을 모르는걸. 만화를 그려봤자 뭐할까? 아무래도 나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매우 적고. 어쩌면 뭣 같은 그림을 보면서 사람들은 나를 비웃고 있을지도 몰라. 내가 쓴 글은 앞으로 잘될 리가 없을거야. 나도 내 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이 좋아할 리 없잖아. 그냥 이쯤에서 그만할까. 다. 그만하고 싶다.’라는 우울을 넘어선 절망이 제 몸에 줄줄줄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유서 23쪽 정도를 적고 있다가 할아버지가 나왔던 꿈이 생각이 났습니다. 아. 할아버지는 오늘 꿈에 왜 나왔는지 알겠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기에 너무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야. 그러니까 좀만 더 살아보자. 마구 울었습니다. 그리고 꿈에 나와준 할아버지에게 감사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제게 남기고 간 것은 무엇일까요? 할아버지의 유전자는 저에게 남겨져 있습니다. 저는 저이지만 저는 할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각자이지만 서로이기도 한 것처럼요. 오늘 하루 어떠셨나요? 오늘 하루 어떻게 될까요? 제가 당신께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이렇게 글로써 삶은 달걀 하나를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당신에게 손 한 움큼만한 행운이었으면 합니다.

이만 편지를 마칩니다.

이만 총총


목화 드림.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