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시렵니까.
또다시 찾아온 목화레터입니다.
요즘 장마 시즌이어서 덥고 습해서 제가 주로 하는 취미인 산책을 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어떻게 하면 이 더위를 이겨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네요. 더위를 이겨낸다기에는 쉽게 무너져서 곤란합니다. 제가 더위를 진짜 잘 먹어요. 그래서 어제도 밥을 한 끼 해 먹는다고 정말 힘겨운 밥 짓기-먹기-설거지-마무리를 거쳐서 땀범벅이 되었습니다. 결국 에어컨을 틀어놓았는데요. 어제 날씨는 언제였냐는 듯이 비가 줄기차게 오네요. 이 장마 속에도 목화레터는 계속됩니다. 아자!
오늘은 저번 회와 같이 100일 글쓰기 2탄입니다.
당분간 이러한 단편선을 지속할 수도 있고, 다른 방안을 찾을 수도 있겠습니다.
대부분의 꿈 내용이 허황하고 망상적인 내용을 많이 꾼다.
그런데 가끔은 굉장히 인상 깊어서 일상을 보내다, 발걸음을 한 번씩 멈추게 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어제는 하얀 강아지 꿈꾸었다.
하얀 강아지의 장례식을 치르는 내용이었는데, 마치 내가 그 강아지와 평생을 함께하고 보내는 내용 같았다.
강아지는 아주 부드러운 흰 털을 가진 사모예드와 진돗개의 믹스종이었고, 나를 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가끔 강아지를 보면 표정을 짓는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게 정말 웃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향해 입꼬리를 올리고 있을 때 나는 환한 감정과 맑은 분위기를 느낀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모두 모여서 그 강아지를 위해 웃고, 울고, 마시고, 떠나보내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식으로 인상 깊은 꿈이 있으면 꽤 상세히 기억하는 편이다.
하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꿈도 존재한다. 가끔 생각이 넘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가위에 눌리거나 꿈에 압도될 때가 있다.
꿈의 내용에 눈물을 흘리거나 꿈에서 헤어나가지 못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작품에 집중을 너무 과하게 해서 주인공이나 조연이 나와서 이야기를 보여주거나, 죽은 할아버지가 꿈에서 나타나서 무언가를 준다든지 하는 상징적으로 꿈꿀 때가 있다.
결론적으로 나는 내 꿈을 상당히 많이 기억하는 편이다. 그 꿈으로 인해 일상생활의 감정의 시작이 영향받을 때도 있다. 기억을 정리하면서 나타나는 꿈이란 나에게 많은 부분을 시사한다. 내가 나에게 간과하고 있었던 세밀한 감정선과 이야기들을 이미지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여름날의 꿈들은 대부분 습하고 텁텁한 내용이었으나, 요즘은 맑은 물처럼 즐거운 이야기들로 가득 차고 있다. 여름의 이야기들이 더 웃음이 많은 꿈들로 차올랐으면 한다. 봄도, 가을도, 겨울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꿈도 살짝 미소가 지어지는 나날들이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요즘에 시야가 흐릿해지는 경우가 많아, 자주 편두통을 느끼고는 했다.
어지럽다고,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느끼던 탓에 안과를 방문했다.
하지만 나는 시력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사람들이 쉬쉬하던 ‘감정을 색깔로 보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는 집안의 유전 탓이다.
어디서부터 비롯된 걸까 물으니, 아주 멀고 먼 선조께서 이런 경우가 아주 정확히 똑같이 생겼다고 했다.
“이걸 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라고 묻자, 엄마는 말했다.
“마음으로 보는 일이니, 너는 눈을 가려야. 하는 게 아니라 머리를 가리는 모자를 써서 마음을 눌러야 해.”
실제로 모자를 쓰니 (정확히는 머리에 압박을 느끼니) 색깔이 더 혼란스럽게 느껴졌다.
사람들 곁에 늘 오로라가 있는 듯했다. 정확히는 사람들 손끝에서 작은 색깔 방울들이 왔다 갔다 했다.
나는 관찰을 통해 주로 부정적인 감정은 오렌지색이고, 슬픈 감정은 보라색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쁘고 쾌활한 감정은 초록색이나 푸른색이다.
사람들이 흔히 표현하는 사랑의 감정도 푸른색 계열이어서, 나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바다를 보았다.
감정의 바다를 보는 건 기쁜 일이었다. 나는 일이 없을 때,
혹은 점심을 먹고 가볍게 산책할 때 사람들 각자의 바다를 보는 것을 즐겨 했다.
나에게도 바다가 생긴다면, 그 색은 정확히 어떤 푸른색일지 기대가 되었다.
사람은 딱히 없었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자 나에게도 옅은 하늘색이 흘러나왔다.
그러다 내 옆자리에 나를 보면 푸른색으로 물결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생긴 걸 나는 눈치채고 말았다.
하루에 한 번 기억이 초기화되는 사람은 나와 거의 비슷하다.
정확히는 조금씩 다른데, 바로 나는 자기 전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오늘은 ‘하루에 한 번’을 ‘자기 전 기억이’로 바꿔서 글을 적어보고자 한다.
자기 전에 전화 혹은 대화를 하는 사람들은 매우 가까운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가족, 연인, 친한 친구 등 매우 가깝다.
그래서 나는 자기 직전 이야기를 할 때 미묘하게 대화의 톤과 말투가 바뀐다.
높낮이가 좀 더 생기고,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그거 아닌데?’ 하던 말투가 ‘그랬으면 좋겠어.’와 같은 뉘앙스로 바뀌게 된다.
다정하고 포근포근한 말투랄까.
따라서 나와 교제하던 연인이나 호감을 느끼던 사람들은 그 순간을 좋아했다.
내가 조금 더 경계를 허무는 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순간은 사실 약을 먹고 잠에 드는 순간이기 때문에, 일정 부분 기억이 휘발된다.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표면적인 것들만 드문드문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내가 자신을 자기 전 기억이 초기화되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사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비몽사몽 하여 기억이 나지 않을 때 그 모든 순간과 상황과 대화가 제대로 기억날 리 없다.
그렇기에 내가 그 순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약점을 상대방에게 말해주면
상대방은 그 시간에 나에게 좀 더 말하고 싶었던 진심을 말하곤 한다.
어떻게 보면 내가 기억을 잘하지 못한다는 단점을 역이용해서 상대방에게서 진심을 듣게끔 한다.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진심을 들으면, 나는 아무래도 따뜻하고 몽글한 말들을 많이 듣다 보니 기분 좋게 잠에 들 수 있다.
모든 것을 기억하지는 못해도 상대방이 나에게 얼마나 정성스러운 마음가짐으로 나를 대하는지를 알 수 있다.
가끔 기억이 어느 정도 나는 것도 있지만, 꼭 중요한 말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능글맞게 다 기억이 나면서 상대방의 애정을 확인하는 척하고 싶지만, 실제로 불가하다.
어쩌면 낭만적인 일 같기도 하다.
그저 당신의 따뜻한 말을 좀 더 오래 듣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