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레터 43화 직면

by 김목화

2025년 8월 24일 오후 4:36


2025년 8월에서 인사를 드립니다. 이 편지가 도착할 즈음이면 그곳은 벌써 9월이겠지요.

미리 여분을 쓸 때마다, 이것이 진정한 타임머신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고는 합니다.


오늘은 직면에 대하여 씁니다.

저는 10년 동안 심리 상담을 받고 있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께 상담의 목표에 관해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제 상담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저는 어떠한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서 상담을 받나요?”

“목화야. ‘적응’을 위해서란다. 네가 대학에 다닐 때는 졸업을 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적응을. 그리고 앞으로는 앞으로 생길 상황에 대한 적응을 위해서지.”


저는 ‘적응’이라는 단어를’ 제 방식대로 ‘직면’이라는 단어로 이해해 보았습니다. 지금을 예시로 들어보겠습니다. 친구들이 가끔 제가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 흥미롭게 혹은 호기심을 가지고 물어보고는 합니다.


예컨대 글이 줄줄 나오는 편이냐, 네가 쓰는 방법이 따로 있느냐 등등이요. 사실 글이 줄줄 나오기는 합니다만, 지금의 경우에는 글이 잘 써지지 않습니다. 현재 멋으로 한 네일아트가 뒤집어지게 거슬려서 잡아 뜯고 싶고, 더위가 불편하고 싫습니다. 글 내용이 잘 생각나지도 않고 원래 했던 의도와는 다르게 써질까 봐 걱정이 큽니다.


제가 생각한 직면은 여기서, 제가 글을 항상 잘 쓰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인정하고 자각하는 것입니다. 가끔 저는 웃긴 숏폼 콘텐츠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는데요. 회피형 전 애인에 대응하기 위한 시청자의 고민을 들어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그 유튜버는 ‘직면을 하는 사람을 소수이고, 직면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성공하지 못하니 그냥 냅두세요.’라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이 꽤 직관적이고 명쾌해서 목화레터 주제로 쓰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적응과 직면이 무슨 상관관계에 있냐면요.

제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직면할 줄 알아야 어떤 일이든 적응을 할 수 있습니다.

저도 이 시기와 상황에 적응하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다양한 것들을 인정하고 직면해야 했습니다. 가볍게 나열해 보도록 하죠.


-나를 사랑했던 사람이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뛰어날 자질을 갖추었지만, 모종의 이유로 회사나 다양한 면접관들이 나를 뽑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내가 성적으로 혹은 다른 의미로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외모, 성격, 말투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나를 싫어할 수 있다.

-나는 실패를 할 수 있다.

-나는 몸무게에 대한 콤플렉스로 폭식증에 걸린 적이 있으며, 이는 다시 반복될 수 있다.

-내가 하는 부차적인 고민들 때문에 실질적으로 이루어야 하는 메인 이벤트를 잘 수행하지 못할 수 있다.

-나는 완벽하지 않고 타인을 쉽게 재단한다.


온통 부정적인 것들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인 것들을 꽤 가감없이 나열하다 보니 문장이 길어졌습니다. 제가 요즘에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을 꽤나 열심히 보고 있는데요. 19세기에 나온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인간을 관통하는 문장들이 많아서 옮겨보겠습니다. 앞서 나온 문장들에 대한 답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군요.


P.137
모든 교제에는 많은 강제와 고충, 위험이 따름을 감안할 때 두 번째 이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우리의 모든 불행은 혼자 있을 수 없다는 데서 생긴다.”(성격론)라고 라브뤼예르가 말했다.

P. 145
나아가서 실제로 재앙이 닥쳤을 경우 가장 효과적인 위안이 되는 것은, 위안이 비록 질투와 같은 원천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우리의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을 바라보는 일이다.

P.146
모든 것을 철저히 심사숙고한 뒤에도 인간의 인식이 불충분함을 감안해, 조사와 예견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온갖 계산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상황이 여전히 생길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p.148 우리의 행복이나 불행과 관련한 모든 일에 상상력을 억제해야 한다. 무엇보다 공중누각을 쌓아서는 안 된다. 쌓아 올리자마자 한숨을 쉬면서 다시 허물어뜨리면 그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단순히 일어날 지도 모르는 재난을 눈앞에 떠올리며 미리 불안해하지 않아야한다.


저의 주장의 요지는 어떤 일이든 한 번쯤 맞닥뜨려보아야 자신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고, 이는 장기적으로 본인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일을 수행하지 못했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도 누군가에게는 매번 무언가를 끝까지 수행하지 못하는 이입니다. 선택은 다른 영역이고 어떠한 주제나 문제에 대해서 자신이 직면하거나 되돌아볼 필요성은 있다는 이야기죠.

사실 목화레터를 쓸 때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위안이나 발톱의 초승달 문양 정도의 기쁨이라면 된 것이겠죠.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다음 주에 다른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목화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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